외할머니
3주째 제대로 못 먹고 있다. 코로나 후유증 때문이다. 격리하던 일주일 동안 별로 아프지 않았다. 근육통만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하루 약 먹으니 금세 가라앉았다. 그런데 격리 후 닷새 지나고부터 무슨 일인지 인후통과 기침으로 고생하고 있다. 치료약을 계속 먹으니 입이 쓰고 식욕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입맛 없는 게 뭔가 싶을 정도로 왕성한 식욕이었고, 무엇이든 잘 먹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덜 먹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밥그릇을 작은 것으로 바꾸고, 숟가락도 작은 것을 사용했다. 적게 먹으려고. 그런데 그 달던 입맛이 딱 떨어지고 말았다.
열흘 가까이 누룽지만 끓여 간신히 먹었다. 약을 먹기 위해서다. 빈속에 먹을 수 없으니. 이제 누룽지도 진력이 나서 먹기가 싫었다. 어느 때는 아침에 끓여서 하루 종일 불어 터진 것은 먹었다. 어차피 입맛이 없으니 몇 숟가락 떠먹고 약을 먹었다. 옆에서 성화하는 사람이 없으니 더 안 먹는 것 같긴 하다.
누룽지가 진력나 새롭게 먹기 시작한 게 홍시다. 홍시를 생각해낸 것은 단맛 때문이었다. 모든 걸 쓰게 느끼는데, 홍시는 본래 단 것이니. 더구나 말랑말랑해서 먹기도 좋을 것 같았다. 마트에 가서 대봉 감 한 박스를 샀다. 반 가까이 말랑하게 익어 있었다. 그것을 매일 끼니마다 하나씩 먹었다. 그 후에 밥 조금 먹고 약을 먹었다. 예전에 먹었던 홍시 맛과 이번에 산 홍시 맛이 달랐다. 달지 않았다. 그냥 먹을 만한 정도였다. 그것도 입이 쓰기 때문인 듯했다. 홍시가 달지 않을 리 있으랴.
어릴 때 겨울방학을 맞아 외가에 가면, 외할머니는 광에서 홍시를 꺼내 오셨다. 그리고 꽁꽁 언 홍시를 화롯가에 얹어 녹여주셨다. 그 시원하고 다디단 홍시 맛. 따뜻한 화롯가에 앉아 맛있게 먹던 그날. 몸이 아프거나 외로우면 맛있게 먹던 음식이 생각난다고 하던가. 그래서 홍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홍시를 먹으며 거의 잊다시피 했던 외할머니 생각을 했다. 나를 보면 눈물 먼저 보이던 외할머니. 어릴 적엔 그게 이해되지 않았다. 더구나 철이 들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셔서 이해하고 말고 할 시간도 없었다. 내가 한 것이라곤 돌아가시기 전 3개월 동안 간병해드린 것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중학교를 마친 후 진학하지 못한 나는 무력감과 우울감에 시달렸다. 그때 외할머니는 병이 깊었다. 외할아버지가 병간호를 하고 계시다기에 내가 간병을 자청했다. 어머니와 외삼촌은 기특해했지만 나는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 하나 때문에 결정한 일이었다. 어디론가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외가에 가서 살림을 도맡다시피 하며 외할머니 병간호를 했다. 최선을 다했다. 할머니 옆에서 자며 수족처럼 돌봐드렸다. 매일 죽을 쑤어드리고 씻겨 드렸다. 생전 해보지 않던 일인데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친척들은 나의 정성스러운 모습에 감동했고, 칭찬이 자자했다. 그 일도 실은 내가 살기 위해 한 일이었다. 할머니에 대한 효심이 아니었다.
일단 집을 떠나 왔다는 게, 그리고 열중할 일이 있다는 게, 당시 시달리던 무력감과 우울감에서 나를 구원해주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마음이 힘들고 괴로우면 몸을 혹사시키는 버릇이 생긴 게. 그 후 몸살을 된통 앓더라도 말이다. 할머니 간병을 하면서 삶에 대한 의욕을 찾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할머니 간병을 하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홍시를 두 상자 째 먹고 있다. 이제 조금씩 단맛을 느낄 수 있는 걸 보니, 몸이 낫고 있는가 보다. 비타민이 풍부한 홍시는 감기와 면역력 강화 등 효능이 많다고 한다. 그런 효능보다 일단 입에 맞으니까 먹었을 뿐인데. 아무튼 달달한 홍시로 입맛을 찾아가고 있으니 내게는 약이 된 것 같다.
하루 이틀만 지나면 완쾌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조짐이 보인다. 이제 건강을 회복하면 더 조심해야 하리라. 무리하지 말고, 과신하지 말고, 겸손하게 몸과 마음을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살아야 하리라. 아기들이 아프고 나면 자란다더니, 늙어도 아프고 나면 더 성숙해지나 보다.
홍시와 함께 떠오르는 할머니의 허스키한 목소리, 자그마한 체구, 부지런한 움직임, 언 홍시를 녹여먹던 화롯가, 외가 뒤란에 서 있던 큰 감나무 세 그루. 이제 기억 속에서 아른거리는 그리운 순간들과 함께, 아프면서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