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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Jul 15. 2024

"당신 생일잔치 준비물을 사느라..."

[연재] 100. 이혼 76일 차

100. 이혼 76일 차          



“당신 생일잔치 준비물을 사느라...”    

 

2014년 5월 15일 목요일 맑음      


  아침을 먹지 않고 지하철을 이용해 빌딩으로 돌아왔다. 

  어제 먹은 곱창이 대장에서 삭으며 발생한 고약한 방귀 냄새가 지하철 칸을 오염시켰다. 사람이란 게 다 이렇게 냄새 풍기고 사는 거다. 어느 여름날 1호선의 냄새는 또 어땠던가?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다.    

 

  빌딩으로 출근한 그를 제일 먼저 괴롭힌 사람은 신 부장이었다. “사장님, 제가 어제 두 가지 일을 했습니다. 하나는 우리나라 여행사 대표 25명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분들이 국내 여행 코스를 준비 중인데 모임 장소를 제공해 주고 게스트하우스를 프레젠테이션하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는 홍대 인디밴드와 통화를 했습니다. 이들에게 공연장소를 제공하고 자리를 잡으면 비용을 추후에 받겠다는 조건입니다. 이 밴드가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밴드거든요.”라고 말했다. 이에 그가 “음, 일단 신부 장이 앞에서 작업해. 흥행 여부는 나중에 판단하자고.”라고 말하고 건너편에 앉은 사내를 향해 “이번에는 박 사장이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말했다.      



  박 사장이 “사장님, 은행에서 6억 정도 대출이 나옵니다. 그러면 1억 정도는 (전 소유자) 아주머니와 전세보증금 돌려주는데 쓰고, 5억은 사장님 채무를 상환할 테니 경매를 취하시켜 주십시오. 제가 (전 소유자) 아주머니와 같이 (건축) 사업을 해 볼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그가 말했다.     

 

  “박 사장, 박 사장과 아줌마가 한 편이지 나와 박 사장이 한 편이 아니야. 뭔 말이냐 하면,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제안해야지. 아주머니가 어떻게든 전세 세입자를 내보내고 철거하도록 해서 (은행 대출이) 6억이 나온다면 그 6억을 나에게 주고 나머지 금액은 대출 후순위로 설정해서 일단 (건축) 사업을 하도록 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이야.”     


  박 사장은 말이 없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를 설득하려 하지 마. 사채업자가 근저당설정을 움직이는 법은 없어. 그러니 아줌마더러 움직이라고 해. 물론 아줌마는 절대 박 사장 말을 듣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그런 여자는 똥을 쥐고도 똥인지 모르거든. 즉 다 잃는다는 것을 절대 모른단 말이야. 그러니 당신이 설득하겠어? 이만 돌아가.”    


      

  사무실로 돌아와 [야촌주택] 공사대금 중 1억 원을 보냈다. 이 돈은 재산분할을 하면서 여자에게 보낸 돈인데, 그가 힘들다고 하자 다시 보내온 것이다. 여자는 이제 그의 마음을 사려고 한다. 어쨌거나 감동은 아니지만 고맙게 생각하고 받았다.      


  1층 상가 임대료가 입금되었기에 세금계산서를 발급했고 안양 공사비 환급금 수정신고를 위해 받은 환급금 중 일부를 다시 납부하기 위해 통장을 챙겨 은행으로 향했다. 670만 원 정도를 세금으로 납부했다.           


  ㅇㅇ은행의 조 과장이 전화를 걸어와 “대출 자서 하러 오세요.”라고 말했다. 이에, “조 과장, 그거 대출받지 않으련다. 빌딩 대출 대환이나 알아봐.”라고 말했다. 조 과장이 “왜요? 이거 받아 놓으면 괜찮은데요. 마이너스로 잡는 효과가 있거든요.”라고 되물었는데, 연 11%, 취급수수료 1%, 빌딩 준공 후에는 6.5%의 이자였다. 꼼꼼히 적어가던 그가 “그러면 받는 것으로 하지요.”라고 번복했다.     


     

  오후 다섯 시가 되어 스승의 날 사은회 장소인 여의도로 갈 채비를 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전화 통화로 6시가 다 되어 빌딩을 출발했다. 그러니 올림픽 도로를 이용해 바로 여의도로 가려고 종합운동장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기다렸다.     


  “어어-어”     

  시내버스가 좀 바짝 붙는다 싶었는데 백미러를 밀고 곧장 교차로를 벗어났다. 그가 운전석에 놓아둔 카메라를 들어 도망가는 버스를 사진 찍었다. 그리고 기어를 ‘D'로 당기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앞서던 버스가 느낌을 알았는지 저속주행을 했고 그가 진행을 막아 세웠다.    

  

  “닫지 않은 줄 알았는데 닿았나 보네요.”      

  50대의 기사가 운전석에서 내리며 말했다. 그가 “백미러 닿았을 때 섰으면 좋았을 텐데 이게, 뭐예요?”라고 투덜거렸다. 버스 기사가 “수리비는 얼마나 나올까요? 50만 원정도 나오면 지급할 수 있는데요. 또 시말서 써야 하겠네요.”라고 말했다. 그가 “시말서 쓰는 게 더 싸게 먹힐 겁니다. 버스 공제조합에 사고 접수하세요. 연락처 주시고요.”라고 말하며 가해자인 버스 기사의 휴대폰으로 전화하게 했다. 그리고 명함을 건네며 “사고 접수번호 나오면 문자로 알려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니 사은회 일정은 망쳤다.     


 

  다행히 벤츠 서비스 센터는 아파트 건너편인지라 집으로 향하는데, 운전석 백미러가 부서진 탓에 직진만 해야 했다. 사고 소식을 접한 벤츠 딜러가 “새 차 망가져서 가슴이 아프시겠어요. 렌터카 바로 보내드릴게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었다. 솜털 같은 흠집도 없는 자동차가 망가졌는데도 자동차보다 기사 아저씨의 처지가 마음에 걸렸다. 예전 같으면 “5천 킬로도 안 탄 차를 이렇게 망가뜨렸어?”라고 큰소리 칠 법도 한데 말이다. 아마 20년 전, 그가 만난 검은 세단의 차주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았다. 


    

  여자가 전화를 걸어올 때도 이때였다. “당신 생일잔치 준비물을 사느라 시장에 왔어. 홍어도 좀 사 가는데.”라고 말했다. 이에 “막걸리를 사 갈게.”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홍어 안주에 막걸리를 마시다가 ‘리스 차량이 도착했다’라기에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키가 크고 멀쑥하게 생긴 청년이 인사했는데, 옆에는 흰색 벤츠 E220이 서 있었다. 그가 “E클래스네?”라고 말하자 청년이 “네. 여기에 사인해 주셔야 합니다. 운전면허증도 보여주시고요.”라고 말했다. 이에 그가 서명하다가 흠칫 놀랐다.      


  “이게 뭐야. 렌트비가 1일 30만 원이야?”     

  1일 렌트비는 30만 원이고, 그가 운전하다 접촉 사고라도 내면 대물 20만 원 한도, 대인 50만 원 한도 내의 금액을 지불한다는 계약서였다. 그가 다시 한번 버스 기사의 안위를 생각했다.      


  ‘처음에 벤츠인지도 모르던데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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