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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Jul 17. 2024

"고모부 선물로 뭐 받고 싶으세요?"

[연재] 101. 이혼 77일 차

101. 이혼 77일 차       


   

“고모부 선물로 뭐 받고 싶으세요?”     


2014년 5월 16일 금요일 맑음     


  새벽을 모닝 섹스로 열었다. 

  아침도 함께 먹었다. 어제 사고를 낸 버스 기사가 ‘사고접수를 못 했다’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먼저 접수하기로 했다. 또, 은색 랭글러 루비콘도 팔기로 했으므로 주차장에서 끌어내 사진 찍었다. 그리고 렌트 한 벤츠 E 클래스 운전석에 앉았다. 모든 게 낯설었다. 주행거리는 9,000km였는데 멋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하고 같이 정비업소에 가자.”

  여자에게 볼보로 뒤따라오게 하고 길 건너 벤츠 정비소로 향했다. 정문에 도착하자 직원이 나와 발레 파킹을 도와준다. 안내 데스크로 가서 “사고접수를 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하며 제작증을 건넸다. 그런 후 다시 여자의 차를 타고 집으로 온 다음 렌트한 자동차를 타고 빌딩으로 향했다.     


 

  그를 반긴 것은 세탁된 세탁물이었다. 하루를 재웠으니 냄새가 날 것 같아 확인하고 빨래건조대를 꺼내 널었다. 잠시 후, 버스회사에서 사고 담당자가 전화했고 렌트 회사 직원과 딜러도 전화했다. 사고접수 번호는 몇 시간이 지난 후에 문자로 알려왔다. 관계자들에게 모두 전달했다. 수리 기간은 ‘4일 정도 걸린다’라는 정비업소의 연락도 받았다. 빨리 수리된다니 리스비는 많이 아낄 것 같았다.     

 

  송파구청 대부업 담당도 전화를 걸어왔다. “과태료 고지서 등기로 보냈습니다. 이의신청 안 하시면 20% 할인해서 40만 원만 납부하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이의 신청하지 않기를 바라는 목소리였는데, 그도 인정한 사실에 대해 이의신청할 만큼 뻔뻔하진 않다.      


  점심은 게스트하우스를 추진 중인 신 부장과 1층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신 부장이 호실별 관리표를 만들어왔는데 “소프트웨어는 지금 중요하지 않다.”라며 돌려주었다. 신 부장의 의견에 전부 동의할 수 없기에 더 두고 볼 것이었다.      


  ㅇㅇ은행 조 과장은 대출 자서에 필요한 서류 목록을 문자로 보내왔다. 그는 여자의 의견에 따라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거짓말 못하는 박 여사는 “글씨, 우체국과 농협에 한 6천(만원) 있는디 니 아부지에게 허락을 받아야제.”라고 고백했다. 그래서 저녁에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아버지가 “아들이 부자여도 받을 것은 받아야 제. 적금 깨서 손해 본 것까지 채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가 “당연히 그래야지요. 1부 이자 얹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는데, “보트도 팔았다”라는 말에 더 이상 사정을 묻지 않았다.     


  점심때가 지나 인터넷 중고차 매매 사이트에 랭글러 루비콘 매물 등록했다. 그는 못 하는 것이 너무 많지만 잘하는 것은, 바로 ‘결단 후 실행’이었다. 그에겐 지금 아무것도 귀한 것이 없다. 오직 이 난국을 타개할 이유만 있을 뿐이었다.      


  피곤이 몰려와 잠시 침대에서 눈을 붙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온전한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중 한 통의 전화는 학우 노 과장이었다. 동급생의 결혼식과 관련해 “축의금을 회비에서 10만 원 쓰고 나머지는 각자 하자고 하는데 어떠세요?”라고 물었다.    

 

  “10만 원 가지고 쓰겄냐? 천만 원은 해야지. 그렇게 해라.”     


  그렇게 대화를 끝내려 했으나, 노 과장이 “날씨 좋은데 어디 안 가세요?”라고 물었다. 이에, “할 일 없으면 술 마시러 오던지.”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 과장이 “회사 일찍 끝나면 갈게요.”라고 대답하더니, 퇴근 시간이 다 되어 “회는 다음에 먹으러 갈게요.”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허, 그냥 오면 술이나 먹자고 했는데 내가 술을 산다는 소리로 들렸구나.’     



  드럼 연습하고 옥상의 야외 테이블에 오일 스텐을 바르는 작업을 마저 끝냈다. 해가 석양으로 넘어갈 즈음 [노루표 페인트] 가게에서 오일 스텐 1리터를 샀다. 옥상의 목조 테이블이 때가 묻고 갈라지기 시작했기에 방수해 보려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옥상 바닥 방수 문제로 인조잔디를 걷어 놨기에 작업하기는 더없이 좋았다. 작업복을 갈아입고 테이블을 사포로 문지른 후 오일을 여러 번 발랐다. 그러니 작업이 지겨워지자 드럼 연습한 후 나머지 작업을 한 것이다.      


  드럼 연습을 하던 중에 막내 처남 딸의 전화를 받았다. “고모부 선물로 뭐 받고 싶으세요?”라고 묻기에 “요트”라고 대답했더니, “그건 너무 비싸요. 엄마 돈이 줄어들어요.”라고 말했다. 막내처남댁은 참으로 아이들을 현명하게 잘 키운다.      


  야외 테이블 오일스텐 작업을 마치고 샤워 후 깔루아에 드라이 진을 부어 칵테일을 만들고 냉장고에 있던 브로콜리도 익혔다. 브로콜리를 초장에 찍어 안주 삼고 달콤한 칵테일을 마시며 지친 육체와 영혼에 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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