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05. 이혼 81일 차
105. 이혼 81일 차
연극이 끝난 후
2014년 5월 20일 화요일 맑음
“연극이 끝난 후 객석에 홀로 앉아, 텅 빈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그룹 샤프가 부른 ‘연극이 끝난 후’라는 노래다. 오늘 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가사다. 술과 영화를 같이 하던 사람들은 11시가 되자 다들 자기 집으로 갔다. 홀로 남은 그만 텅 빈 무대를 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외로움이 뼛속까지 사무쳤다.
새벽에 일어났다. 어렵게 정신을 추스르고 생일파티로 밀린 2일간의 일기를 쓰고 블로그 포스팅까지 썼다. 그런 후 아침도 먹고 프린트 용지도 구매할 겸 거리로 나섰다. 출근길 사람들과 마주했다. 저 멀리서 이어폰을 꽂고 출근하는 신협 김 과장을 만날 때도 이때였다. 손 인사만 하고 헤어졌는데, 빌딩을 담보로 후순위 대출을 신청했다가 감정 가격이 낙찰가로 나오는 바람에 모양 빠졌던 일이 엊그제다.
[파리바게트] 빵집에 들어가 빵과 신선한 야가 말린 빵을 샀다. 4개가 들어있었는데 5천 원이었다. 프린트 용지는 문방구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아서 구매하지 못했고 동사무소에서 인감증명을 발급받고 오는 길에 구매했다.
ㅇㅇ은행에 대출 신청 자서를 결심하고 온라인으로 국세와 지방세 완납증명서와 주민등록 등, 초본을 발급받았다. 지방세 납부내역을 보니 작년 1년 동안 1억 7천만 원을 납부했다.
토요일에 있을 결혼식 주례사도 완성했다. 그러나 정작 게스트하우스에 필요한 사업내용들은 하지 못했다. 오늘도 신 부장은 또 다른 남자를 데리고 왔다. 남자가 “제가 배 엔진을 수리하는 엔지니어입니다. 지금은 그만두었지만, 현대 엔진을 낚싯배나 어선에 얹어주는 일을 했지요. 지금 저는 제주도에서 낚시어선 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이곳은 어촌계장까지 일곱 개가 도장을 받아야 사업이 가능한데 그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배는 뭘로 하려고요?”라고 되물었더니 “조디악 콤비 보트입니다. 길이가 17미터라서 파도 너울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모양이 빠지지 않아요?”
“아닙니다. 낚시꾼들은 오로지 손맛을 원하기에 충분히 승산 있습니다. 이 사업을 시작으로 펜션까지 하면 괜찮은 아이템입니다.”
“펜션까지 한다면 약 7억쯤 들 텐데 같이 투자한다면 그대가 3억 5천은 있어야 하는데 가능합니까?”
“저야 그렇게 못하지요. 당장에는 배만 사서 운영해 볼까 합니다.”
“배는 얼마 하나요?”
“3천5백만 원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저것 해서 약 5천이면 시작하겠네요?”
“그렇습니다. 그 돈만 투자하면 다달이 입금 가능하다고 봅니다.”
나이 마흔 다 되어 꿈이라는 제주도에서 낚싯배를 하려고 하는 남자는 눈이 쫙 찢어진 다부진 몸이었다. 그런데 5천만 원이 없다. 이런 인생들을 신 부장은 끌어들이고 있다. 그가 신 부장에 대한 채널을 다시 점검하기로 했다.
먼 훗날, 대한민국 포르노 합법화 깃발의 씨앗인 P.World 멤버 중 이ㅇㅇ, 허ㅇ 학우가 빌딩으로 왔다. 오후에 코바 영상기자재 전을 관람하고 교통안전 공모전에 응모할 영상의 일부를 촬영하기 위함이다.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고 택시를 이용해 삼성동 국제무역센터로 향했다.
[KOBA 2014]. 올해로 24회를 맞는 국제방송, 음향. 조명기기전이다. 그는 이미 정 감독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았었는데 출발할 때 챙겨놓고 담지 않았다. 결국 1만 원을 주고 입장권을 끊어야 했다. 전시회는 말 그대로 영상에 필요한 기자재와 소프트웨어 전시전이었다. 엄청난 디스플레이 화면은 “10억 원 정도 합니다.”라거나, 편집하기 좋은 장비는 “3천6백만 원입니다.”라고 했다. 또 소니의 4K 프로젝터를 체험관에서 보는 순간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것’에 놀랐는데 “3천만 원입니다.”라고 했다. 그러함에도 눈도 꿈쩍하지 않고 가격을 묻는 그를 보고, 같이 간 일행은 “하여간 뻥은-”이라고 혀를 찼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자연광으로 찌질 한 동영상을 찍는 삼류이지만, 언젠가는 에로영화로 대박 터트려 이런 장비를 한 방에 구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욕망을 꿈꾸면 이루어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COBA 2014] 전시회를 보고 느낀 소감은 한 줄로 정리가 되었다. 소프트웨어와 장비의 질이 영상을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스토리란 스토리는 죄다 끄집어냈다. 그러니 남는 것은 영상이었고, 영상도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얼마든지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전시회에서 재ㅇ이와 다른 학우 한 명이 결합했고 택시를 이용해 빌딩으로 돌아왔다. 그런 후, 모두 순댓국 한 그릇하고 벤츠 E250을 타고 한강 고수부지로 이동했다. 오늘 찍은 씬은 유엔사무총장이 세계평화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마주 오는 차량의 강한 헤드라이트 불빛에 시력을 잃고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부분이다. 사무총장역을 이ㅇㅇ 학우가 맡았고 그는, 캐논 5D mark3로 촬영을 맡았다. ㅇㅇ의 감독 아래 재ㅇ이 스크립터를 쳤다. 몇 번의 이동과 차량 운행으로 원하는 영상을 다 얻었고, 전복 장면은 카메라 흔들림으로 처리했다. 나머지 미진한 부분은 편집에서 다루기로 했다.
“소주 한잔하자.”
그가 노트북을 연결하는 사이 일행은 회를 사러 갔다. 단합을 위한 술잔을 기울이며 나머지 시나리오 부분을 짰다. 사고를 알리는 텔레비전 영상에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 이미지를 넣기로 했으나 ‘공모전 성격상 문제가 될 내용은 탈락시킨다’라는 ㅇㅇ학우의 제안에 더빙으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나운서역이 문제였다.
“여자는 이뻐야 해!”
이구동성이다. 그도 “영화와 술집 여자는 무조건 이뻐야지. 근데 누구 없을까?”라고 좌중을 훑었다. 하지만 P.World 멤버 자체가 노쇠한 연령이라 퍼뜩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함에도 한 명이 생각났다. 스무 살까지 자기가 주워온 딸인 줄 알고 스스로 외롭게 자란 ㅇㅇ 말이다. 전화를 받지 않더니 얼마 후에 전화를 걸어와 “저 종각에서 술 마셔요.”라고 말했다.
“단편영화 출연해라. 아나운서 배역이다.”
“음, 그래요? 좋아요. 대신 퇴근 시간 이후여야 해요.”
아나운서가 섭외되었다는 말에 또 한잔. 이렇게 밤이 기울었고 11시가 되자 약속이나 한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의 애마 벤츠 SLK 로드스터도 ‘수리가 다 되었다’라고 했다. “내일 아침에 인수하러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더니 “버스공제조합에서 과실이 있을 수도 있는 사건이라고 합니다. 어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했다.
“재판해야겠군요. 저에게 사진이랑 모두 있습니다. 사고 현장까지 이탈한 버스가 말이 많군요.”
해경도 해체되는데, 버스공제조합이나 화물, 택시 등 조합도 사실 필요가 없는 조직이다. 이것들도 해체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퇴직 공무원들의 자리가 이런 식으로 엄청나게 많이 있다. [총포 화약 안전협회]도 그런 조직 중 하나이고.
일행이 돌아가고 테이블을 치웠다. 냉장고의 맥주 두 병을 들고 펜트하우스(옥탑방)로 올라왔다. 그런 후, 밤을 지세울 기세로 술을 마셨지만 졸음은 어쩌지 못했다. 무대의 휘장이 쓸쓸하게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