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04. 이혼 80일 차
104. 이혼 80일 차
이혼남인데 주례를 서 달라고?
2014년 5월 19일 월요일 맑음
생일을 핑계로 긴 휴가를 보낸 듯한 아침을 맞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닥친 일들을 처리해 나가야 한다. 문을 열자마자 옥상 방수 점검하러 온 부부와 마주쳤다. 일전에 보수를 한 곳에서는 기포가 발생해 완벽한 방수가 되지 않았다. 오늘 그곳들을 찾아내 보수를 하는 일을 했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것도 그 시간이었다.
“나 여기 농협에 왔다. 전화 바꿔줄게.”
안양 빌딩 공사비가 부족해 부모님에게 부탁했었다. 그런 이유로, 노모는 아침이 되자마자 농협으로 가서 아들에게 돈을 보내고 있다. 아픈 다리 절뚝거리며 우체국의 적금까지 털어 거금 6천만 원을 송금했다. 아주 귀하고 소중한 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고시원 내부 청소도 했다. 게스트하우스 진행은 신 부장의 입술로만 진행되고 있다. 신 부장은 오늘도 ‘내일 여행사 대표를 만나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모든 일에는 어느 정도 위험과 손실이 있으니 말이다.
아침은 라면을 끓여 먹었고 점심은 [내 고향식당]에서 매운 갈비찜을 먹었는데, 늦은 점심이라 저녁까지 먹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 식사 후 블로그의 글을 옮겨 내려받다가 밀려오는 졸음에 누운 것이 밤이 되었다.
시흥시 도창동 토지 매매 양도소득세 1,600만 원 중 1천만 원과 주민세 160만 원을 납부했다. 양도세는 신협에서도 납부가 가능해 그렇게 했고, 주민세는 우체국에서 납부를 했다. 납부 기한이 연말까지였지만 이자 몇 푼 붙는 것도 아니기에 그리했다.
또 대부 과태료 40만 원도 온라인으로 납부했고, 204호 입주자에게 현금영수증도 발행했다. ㅇㅇ은행 조 과장도 전화를 걸어와 공사비 대출자서를 독촉했다. “요즘 바빴다. 내일까지 서류를 해 줄게.”라고 말하자, “이번에 대출받으세요. 그래야 다음에도(대출받기) 편하잖아요.”라고 떡밥을 던졌다.
이번에 약간의 바가지를 당하면 다음에 대출이 편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런 조건이면 사업하기 썩 좋은 조건은 아니기에 자력으로 헤쳐 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유동성의 위기를 막아보고자 자서는 할 생각이다. 정말로 돈이 막힐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
토요일엔 고향 친구 옥이가 결혼식 참석을 위해 딸아이와 ‘서울에 가는데, 네 얼굴도 보러 가려고’라고 방문 일정을 알렸다. 그날은, 방송대 커플의 결혼식 날로, 주례를 서기로 약속했기에 저녁에 방문하도록 했다.
방송대 커플인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앞두고 “형님이 주례를 서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이에, “내가 주례 경력은 이미 있지, 그런데 지금은 이혼 진행 중이잖아? 그래서 주례를 설 수는 없어. 내가 주례하면 혼인 기간은 20년밖에 보증 못 해!”라고 거절했었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백년해로할 거니, 그냥 형님이 서 주세요. 모르는 사람의 주례사를 듣고 싶지 않아요.”라고 부탁하기에 그렇게 해 주기로 했었다.
저녁 시간에는 블로그에 생일 이야기를 적었다.
- 남비과라 족장 [슬픈 눈동자]와 트리플엑스(그의 닉네임)
브라질의 마리노스 강 하구의 고원지대에 남비콰라족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는데, 우기 때는 남자들이 활을 가지고 종일 사냥을 하거나 나뭇가지, 종려나무 잎으로 오두막을 세우는 등의 활동을 하고, 건기 때는 여자들이 무리로 나뉘어 유랑생활을 하며 초원지대의 애벌레 거미, 메뚜기, 설치류, 뱀, 도마뱀 등을 사냥하거나 나무나 풀의 뿌리와 열매를 채집해 생계를 해결한다.
남비콰라족은 가족이 경제활동의 단위이며 생산과 소비는 가족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외부와는 소규모 물물 거래만 있을 뿐이다. 이들의 경제활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생존을 위해 식량을 구하는 일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픈 눈동자]는 남비콰라족의 족장이다. 남비콰라족은 다수결로 족장을 선출하며 세습되지는 않는다. 이들은 족장을 ‘우일리칸테’라고 불렀는데 ‘통일하는 사람’, ‘결속시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족장은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조율하고 통일하며, 모두의 의견을 들어주는 관대함을 가져야 한다. 족장은 특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원들에게 베푸는 관대함을 보여줌으로써 위세와 지위를 인정받는다.
수년 전 영프린스호가 엔진 고장으로 태평양을 표류하는 일이 있었다. 선장인 트리플엑스는 남비콰라족 족장에게 야전삽, 발전식 라디오, 몇 벌의 셔츠를 감사의 표시로 주었다. 다음날, 그 선물들은 모두 주민들에게 분배되어 있었다. 이렇듯 족장은 모든 것을 다 내어놓아야 하는 지위로, 심지어 자신에게 할당된 몫까지도 주민들이 가져갔다.
“독화살을 만들어주세요.”
족장은 위험한 독화살 만들기도 솔선수범해서 해야 하고, 노래와 춤을 춰서 부족들이 단조로운 일상생활을 잊도록 해주는 의무도 있다. 트리플엑스가 말했다.
“슬픈 눈동자여, 내가 보기에 당신은 족장이라곤 하지만 부족민들보다 더 위험하고, 험한 일을 하며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삶을 살고 있소. 특권도 없이 봉사만 하는데 무엇 때문에 족장을 하는 거요? 나 같으면 그만두겠소?”
그러자 족장인 슬픈 눈동자가 말했다.
“그건 트리플엑스 선장의 말이 맞소. 족장은 많은 의무를 가지고 있소. 그래서 우리 부족은 족장이라는 직책의 무거운 부담에 대한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소모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위로의 의미로 두 명 이상의 부인을 둘 수 있소. 어떻소?”
그러자 트리플엑스가 외쳤다.
“나도 족장이 되고 싶소.”
[슬픈 눈동자]는 종려나무 그늘에 앉아 피렌체로부터 날아온 편지를 읽어갔다. 트리플엑스가 엔진 수리를 마치고 떠난 지 수개월이 지난 후였다. 부족원들이 경외하는 표정으로 족장을 바라보았다. 남비콰라족은 글씨를 쓸 줄 모르고 그림을 그릴 줄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슬픈 눈동자]는 편지를 읽고 있다.
이것은 [슬픈 눈동자]의 연출이다. [슬픈 눈동자] 또한 글을 읽을 줄 모르지만 글을 아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족장으로의 권위를 세우고 그를 잘 따르게 하려는 의도였다. 족장은 편지 내용과 무관하게 “음, 트리플엑스 선장의 생일이 다가왔군.”이라고, 친구의 생일이 다가왔음을 알았다. 이어, 네 명의 부인들에게 길 떠날 채비를 하라고 말했다.
야자나무 잎사귀로 엮은 원두막에서 카누를 꺼내 강가로 옮겼다. 카누에는 잔치에 쓸 돼지 곱창 200kg, 야자수 열매 72개를 실었고 네 명의 부인이 차례로 올라탔다. 그리고 이들은 종려나무를 깎아 만든 노를 저어 태평양으로 향했다. 하얀 산호초 위로 카누 한 대가 미끄러져 나아갔다.
생일잔치는 피렌체홀에서 진행되었다. 첫 번째 부인이 만든 요리는 테이블 위에 뷔페식으로 진열되었다. 주로 산에서 채집한 나물이었고, 두 번째 부인의 요리는, 돼지 곱창으로 깻잎이 적당히 들어가 있었다. 나머지 부인들은 노래와 춤으로 선장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고, 선장의 조카들은 ‘겨울왕국’의 엘사 드레스를 입고 ‘렛잇고’를 불러젖혔다. 그렇게 한참 여흥을 즐기던 중에 여덟 살배기 조카가 선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고모부, 고모부는 어떻게 집이 이렇게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