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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Jul 27. 2024

"오빠! 집 하나 주라!"

[연재] 107. 이혼 83일 차

107. 이혼 83일 차          



“오빠! 집 하나 주라!”     


2014년 5월 22일 목요일 맑음     


  딸과 아침 식사를 위해 억지로 일어나야 했다. 

  심야에 두부김치를 과식한 것이 매우 후회되었다. 그렇다고 딸이 아버지의 그런 노력을 알아줄 리는 만무하다. 아이 방은 쓰레기더미 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갈수록 정리 정돈하지 않았다. “엄마가 청소해 줄까?”라는 말도 거부하고 있다. ‘공부 시간이 부족하다’라는 이유로 인성이 망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아빠가 사진을 찍고 심리치료를 받게 하겠단다'라고 겁박”하라고 했다.     


  “당신, 어제 뭐 한 거야? 아침에 씻는데 아파 죽는 줄 알았어.”

  “어제? 당신이 좋아하기에 열심히 밀어붙였지!”     


  그러면서 그가 살살 젖가슴을 만졌다.     


  “오늘은 안돼. 정말 안돼. 아프단 말이야.”     

  그러나 알몸으로 몸을 부비는데, 불끈 선 녀석이 그냥 수그러질 수 없었다. 여자가 “아파서 하기 싫은데, 하면 좋단 말이야.”라고 말하며 살신성인의 자세로 협조했다. 그렇게 질펀하게 아침의 정사를 벌인 후, 곱게 싸 준 나물들을 챙겨 잠실 빌딩으로 출발했다. 휴대폰엔 익숙한 전화번호와 사진이 와 있다. 동창 ㅇㅇ이었다.  

   

  “있잖아. 코스트, 거, 외국 할인 마트?”

  “코스트코?”

  “엉 그래, 거기에 아이스 물통을 만 몇천 원에 판다는데 너무 실용적이고 좋더라. 여기서는 구할 수가 없어서 부탁하려고.”     


  전화는 길어졌고 아들의 이야기로 옮겨갔다. 물론 그의 벤츠는 계속 직진 중이었다.  

    

  “중학생 아들이 집에 안 들어오고 그런다. 큰 애야 여자하고 살고 그래서 포기했는데 이 녀석만큼은 잡아주고 싶거든. 전화도 받지 않고 또 돈을 통 크게 펑펑 쓴다. 미치겠어. 날마다 피자와 치킨을 먹어 생활비도 엄청나게 들어!”     


  통화는 빌딩에 도착해서도, 채무자 박 사장이 기다리고 있어도 계속되었다. 그가 말했다. 

     

  “엄마들이 사내아이를 잘 못 키우는 이유는 하지 말라고 하기 때문이야. 또래들은 또래의 말만 들어. 그러니 ‘야, 얼마나 재미있는 친구들을 만나서 노느라 집에도 안 들어오냐?’라며 칭찬해라. 어차피 말 안 들을 거면 놀도록 내버려 둬. 다만 피해자가 있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만 해라. 예를 들어, ‘너는 아주 훌륭하게 될 놈인데 나중에 너한테 피해 입은 사람들이 악플 달고 댓글 달면 안 되니 그런 점만 조심해라’라고 하는 거지. 또 용돈도 자기가 관리할 만큼 쓰도록 하고 지갑을 보고 돈이 없으며 넣어주고 그래라. 그래야 나중에 사업도 하고 그러는 거야. 나는 아이들에게 한번 주면 백만 원씩 준다. 통 크게 키워. 그리고 돈 없으면 사실대로 ‘엄마는 이제 줄 돈이 없다.’라고 말해. 그러면 아들도 ‘돈을 벌 궁리’를 할 거다. 아이들은 부모가 어느 정도 돈이 있는 줄 알거든. 현실을 깨닫게 하려면 부모도 아이에게 정직해야 하는 거라고.”

  “야, 정말 많이 배운다. 어떻게 그리 잘 알아? 가끔 통화하자.”     


  그렇다고 그녀와 아들이 바뀐다는 보장은 없다. 그가 길고 긴 전화 통화를 마치자 마주 앉은 채무자가 말했다.     



  “사장님. 또 하나 배웁니다. 제 아는 주방 기구 사장님이 같은 고민을 했는데, 저도 그렇게 말씀드렸지요. 그분 아들도 자꾸 아버지 지갑을 손 대드랍니다. 그때 돈을 많이 주세요.라고 했더니 백만 원을 줬대요. 그리고 아버지 일하는 공장에 놀러 오라고 했데요. 며칠 후 아들이 13만 원을 쓰고 나머지 돈은 필요 없다고 돌려주더랍니다.”     


  욕망이란 것이 이루어질 수 없을 때 갈망하는 법이다. 돈을 쓰고 싶은데 못 써서 갈증이 난다. 아이들이 돈을 써 봐야 얼마를 쓰겠는가? 그러니 아이에게도 갈증을 해소할 만한 돈을 쓰도록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 그의 교육 방법이다.      


  박 사장은 특별한 내용이 없는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 박 사장의 원룸도 경매 진행 중이고, 담보제공자의 원룸도 경매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러니 담보제공자는 박 사장을 ‘사기’로 엮을 생각도 하는 듯 보였다. 이에 그가 “우리 모두 북부 지방검찰청에서 모여야겠구먼.”이라고 말했다.      


  담보제공자가 5억이란 돈을 받지 못했으니 쉽사리 포기는 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든 풀려고 할 것이고, 그땐 근저당권자인 그도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출두할 것은 자명했다. 몇억을 벌려면 그만큼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오늘의 미팅은 그것을 확인하는 자리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토요일일 우리 결혼기념일이래. 그러니 못 만나겠다.”

  목포에 사는 고향 친구 옥이에게 전화를 걸어 그렇게 말했다. 서울에서 있는 친척 결혼식 참석을 위해 오는 길에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만날 수 없다고 하니 “그럼 하루 먼저 올라갈까? 그래서 건물도 좀 보고 그러려고.”라고 읍조리 듯 말하며 “뭔 사업을 해야 돈이 될까?”라고 덧붙였다.      


  옥이는 전화 통화를 하면 사업이나 돈 이야기를 했다. 남편의 퇴직 이후가 불안해서 그런 것 같았다. 게다가 주식에 손을 대서 억대의 손실 중인 것도 이유인 듯했다. 그가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이제 해 먹을 것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에, 옥이가 “사채는 어때?”라고 되물었다. “사채도 같지. 나도 죄다 경매로 넣어 배당으로 이자를 받을 형편이야. 왜?”라고 되물었더니 “너에게 투자하면 뭘로 보증할래?”라고 되물었다.     


  세상에. 옥이는 그에게 투자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내 몸이 보증이지.”라고 말하자 “나야 그렇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게 생각 안 하잖아.”라고 말했다. 이에, 그가 “이자는 1부야. 담보는 이 빌딩에 근저당을 설정하면 되고.”라고 말했다. 옥이가 “올라가면 잠잘 곳은 있어? 고시원에서 재우려고?”라고 물었다.      


  “허, 원룸이 있어. 이불이랑 베개도 있으니까 걱정 마라.”

  “알았어. 애기와 이야기해 보고.”     


  그러므로 그는 옥이 모녀가 혹시 1박을 할 수도 있기에 옥상에 널어놓은 이불을 401호 원룸 이불장에 챙겨두었다.      



  점심은 토스트로 해결하고 오후에 컵라면 하나를 더 먹었다. 

  오후엔 블로그의 글을 소설의 내용으로 쓰기 위해 퍼오는 노력을 했고, ‘코스트코 회원권이 있다’라는 방송 대 공ㅇㅇ 학우에게 “가는 길에 물통 하나 사 오세요.”라며 사진을 전달했다. 그러자 “오늘 학생회 운영위원회 있는데 안 오실래요?”라고 물었다. 대답은 “내 머리도 아픈데 안 갈랍니다.”였다.    

  

  학생회와는 일정 정도 거리를 두기로 했기에 그리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ㅇ 감독이 문제였다. 병원비도 없다는 놈이 시나리오를 쓸 애들을 만나느라 활동비를 썼다는 것이다. 정 감독을 아는 놈들은, 하나같이 도와주지 못한다는 것을 안 것도 이때였다. 인맥 관리가 안 된다는 것이다. 죄다 쓰레기들로 둘러싸였다는, 진흙탕 구덩이에 빠졌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겠다는 신 부장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상당히 말을 앞세우는 사람이기에, 여행사 대표들에게 실익도 없이 세미나 공간을 대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한번 다잡아 주기는 했지만,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명함이 필요하다고 해서 200장을 주문했다. 긴급전화에 그의 전화번호를 표시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아니한 이유는 명함을 어디다 쓸지 모르기 때문에 그랬다.   


   

  고 사장으로부터 소개받은 거문고 병창도 “오빠, 집 하나 주라.”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시간 강사로 버티며 스승이라는 교수들 시다바리 하느라 죽어나는 모양이었다. 스승이 어디를 가면 운전해 모시고 가고 노래를 부르라 하면 노래를 부르는 창기 노릇 비슷한 것 말이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주말에는 아르바이트해야지.”라고 한 것도, 행사를 뛰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러니 스승은 기획사 사장이고 제자들은 가수인 셈이었다. 그러면서도 정교수나 대회 대통령상을 버릴 수 없기에 전망도 없는 짓거리를 해야 하고, 퇴근하면서 지친 영혼을 충전하느라 그에게 문자나 전화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이런 행위는 그가 극도로 싫어하는 행위다.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서 이득을 취하는 부류를 그는 제일 경멸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의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으면서 밑밥을 던진다고 판단했다. 나이 든 암컷들은 대략 그러하다.      


  저녁나절에 드럼을 잠시 두들기고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뉴스에서는, ‘백령도 해상에서 북한 해군이 우리 해군에게 포탄을 두 발 발사했고 우리 측은 다섯 발을 응사했다’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국무총리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임명했는데 이 양반이 또 한 검찰했는지 야당이 난리다. 조속히 비정상이 정상으로 되돌아오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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