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08. 이혼 84일 차
108. 이혼 84일 차
내일은 스물한 번째 결혼기념일
2014년 5월 23일 금요일 맑음
그가 빌딩 지하에 놀이공간을 만들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드럼 치는 공간이다. 아무 때나 놀고 싶을 때 놀고자 만든 공간이다. 또 고시원 입주자들을 위한 만남의 공간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었다. 홀로 외로이 살아가는 이들이 타인과 소통하는 공간 말이다.
“치맥데이 합니다. 23일(불금)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맥주는 각자.”
작은 쪽지를 만들어 각 방문에 붙였다. 3층은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겠다’라는 생각에 입주자를 받지 않아 6개 호실이 공실이다. 그러니 총입주자는 11명이다. 행사를 기획하면서 몇 명이 참석할 것인지 생각해 봤다. 너 댓 명이 참석할 것으로 판단하고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목포의 친구 옥이가 ‘오후에 출발한다’라고 해서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가 제일 힘들어하는 것이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것이다. 예약인원도 없고, 온다 간다 결정이 없는 행사는 참으로 피곤하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새마을 시장]으로 향했다.
“후라이드 3마리 튀겨 주세요.”
“족발 두 개 포장해 주세요.”
“김밥 이거 다 주세요.”
시장을 걸어가며 필요한 음식을 주문했다. 술은 204호 아가씨가 증정했고, 또 각자 가지고 오라고 했으니 이것으로 충분할 듯싶었다. 홀로 테이블을 세팅하고 빈 접시와 컵도 준비했으며, 영상을 위해 프로젝트를 켜 텔레비전 화면도 나오게 했다. 물론, 과정을 모두 사진으로 남겼다.
그는 두 시간 동안 소주와 맥주를 마셨다. 고시원 입주자들을 위한 모임은 그렇게 폭파되었고, 목포 친구 또한 ‘오늘 출발하지 못했다’라는 문자를 보탰다. 다들 사정이 있는 것은 이해하나, 이게 뭔 설레발인가 싶었다. 다시 치우기 시작했다. 남은 김밥과 족발은 냉장고에 넣고 치킨은 펜트하우스로 가지고 올라왔다. 어쩌면 그가 입주자들을 너무 측은지심으로 바라본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었다. 물적 우월감인가? 아니면 오지랖인가? 아마 이 물음은 밤새 자신에게 던질 질문일 것이었다.
샤워하고 노트북을 켰다. 오늘의 이야기는 어떻게든 정리해야 한다. 생일날도 그랬다. 그래서 다짐한다. 앞으로 유료 예약자가 없는 행사는 진행하지 않겠다는 것을. 스스로 나서서 간절하게 원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 말이다. 다시 한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생각나는 날이었다.
“형님, 내일 1시 30분까지만 오시면 예식장에서 메이크업해 줄 거예요. 스킨만 하고 오세요.”
오전에 내일의 신부가 전화했고, 여자도 “CGV 20:20 예약”이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내일은, 생애 두 번째 주례를 보고 스물한 번째 결혼기념일을 기념해 저녁 식사와 영화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