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만 Jul 30. 2024

두 번째 주례사

[연재] 109. 이혼 85일 차

109. 이혼 85일 차   


       

두 번째 주례사     


2014년 5월 24일 토요일 맑음      


  “주례도 21년 전 오늘 신랑이었습니다. 그러니 앞의 신랑 신부와 결혼기념일이 같네요. 그 또한 소소한 인연이라고 생각됩니다. 21년 전 신랑도 주례 선생님의 주례사를 들었지만, 경황이 없었기에 뭔 말씀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주례사를 복습할 기회가 오더라고요. 그런 경험을 담아 후일 사랑이 식을 만할 때 오늘의 주례사를 기억하고 더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침부터 주례사를 몇 번이고 읽어보며 음률과 끊어 읽을 곳을 표시했고, 시간이 되자 감청색 여름 양복을 꺼내 입었다. 예식장은 남부터미널 국제전자센터 13층이었다.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올라갔다.      


  메이크업을 하는 곳에는 두 명의 중년 여성이 분칠하고 있었다. “2시 주례입니다. 메이크업 좀 부탁합니다.”라고 말했다. 무뚝뚝한 표정의 어린 여성이 자리를 안내하더니 화장 솜에 스킨 같은 것을 부어 얼굴에 찍었다. 그리고 기계적으로 몇 가지 화장품을 발랐다. 검은 얼굴이 점점 혈색 좋은 모습으로 변해갔다. 마술이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눈썹도 그리고 입술에도 뭘 바른다. 기분이 좋아졌다.      


  사회자는 신랑의 친구로 영화 쪽 일하는 듯했는데, 매우 재치가 있었다. 그도 주례 선생님 의자에 앉아 식의 진행을 기다렸다. 이윽고 혼인 서약, 성혼선언문 낭독 등 그가 등장할 차례가 되었다.   

  

  “와- 와--”


  귀염둥이 학우들이 난리를 친다. 형식적인 주례사는 하고 싶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강의형식의 주례사도 할 수 없으므로 고민을 많이 했다. 또, 원고를 읽다가 신랑 신부, 하객들에게 눈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함에도 “잘하셨어요.”라는 소리가 나왔다. 생의 두 번째 주례사를 했다.      


  피로연은 뷔페식이 아닌 테이블 세팅 형식이어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기 좋았다. 결국 스터디 운영진이 모두 모인 관계로 운영진 회의까지 진행했다. “첫째는 스터디 수첩을 만들기 위해 데이터를 모집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용산 가족공원 야유회 팀장을 나누는 것이고, 세 번째는 뒤풀이입니다.”라고 안건을 상정했고, 결론도 도출했다.     


  주차된 자동차를 타고 [국제전자센터]를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아들이 전화를 걸어와 “아빠, 오늘이 결혼기념일이야. 그래서 전화했어.”라고 말했다. 이에 그가 “이런 일정까지 신경을 써 주는 것은 좋은데, 네 인생도 신경을 써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네. 알아요. 그리고 6월엔 휴가를 나가요.”라고 말하고 “열흘 정도~”라고 덧붙였다. 그가 “그러면 시골에도 다녀오너라.”라고 말했다.      


  집에 오니 여자는 어두운 주방 식탁에 앉아 젓갈 한 가지 놓고 밥을 먹고 있었다.


  “제대로 좀 먹어라. 그게 뭐냐?”

  “배가 고파서... 결혼식 주례는 잘했어?”

  “그렇지 뭐. 이제는 이런 부탁은 거절해야겠어. 스트레스가 심해.”     


  사실이다. 책도 써야 하고, 시나리오 작업도 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부탁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오늘이 21년 결혼기념일이라고 하니 하객들이 와~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자가 결혼사진을 보며 “저 사람 봐. 22년째야.”라고 말했다. 그가 “그래? 오래 살았네.”라고 말하며 양복을 벗더니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피로감에 바로 잠들었다.     

 

  “몇 시야?”

  7시가 조금 못 되었다. 강남 CGV영화 예약이 8시 20분인지라 외출을 서둘렀다. 여자가 “차를 타고 가야지?”라고 물었다. “그러자. 벤츠 타고 가지.”라고 대답했다. 극장에 도착했으나 영화 시작까지는 30분 정도 남았기에 함께 [육쌈냉면]을 먹었다. 그리고 극장에 들어섰다. 영화는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다. 줄거리는 초인적 능력인 돌연변이 인간을 두려워해 죽이려는 인간들과 대결과 화해를 하는 과정이다. 주인공은 50년 전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 현재를 바꾸려고 활동한다. 엑스맨은 단순한 줄거리의 한계를 현란한 하이퍼 리얼리즘의 극치로 상쇄했다.  

    

  ‘내가 과거로 가서 현재를 바꿀 무엇이 있을까?’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현재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의 여행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말이다. 결론은 ‘없다’였다. 지금의 내가, 지금 여기가 좋기에 과거로 돌아가 무엇을 바꾸고 싶지 않다고 생각되자 스스로 뿌듯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중얼거리고, 박장대소하는 그는 주변에 민폐다. 그러므로 ‘개인 영화관 놔두고 이거 또 눈치를 보다니.’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흥수산]에 들러 오징어와 우럭회를 포장했다. 그런 후, 독서실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딸도 불렀다. 그렇게 회와 시원한 소맥 한 잔으로 스물한 번째 결혼기념일을 자축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