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벨로퍼 라이프
3. 구청장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 승소
2015년 3월 26일 목요일, 맑음
집배원을 만나 피고 염상섭을 대상으로 한 소송 ‘변론기일 통지서’를 받았다. 변론기일은 대법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대로 4월 15일 오전 11시였다. 경매를 진행할 때 그토록 송달이 안 되던 뻔뻔한 채무자를 피고석에 앉히게 된 것이다.
인천 구청장을 상대로 한 ‘건축주 명의 변경’ 행정소송도 답변서가 도착하면 신동화 행정사에게 보내주기로 했고, 토지를 매수하겠다고 ‘합의서’를 쓴 김영오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소장 초고도 법률사무소 사무원 선무가 작성해 이메일로 보내왔다. 일부 사실관계를 확인·수정해 메일로 다시 보냈다. 서서히 경제전쟁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물론 승리는 나의 것이 확실했다.
2015년 4월 15일 수요일, 흐림
남부지원에서 있을 11시 재판은 하루의 시간을 애매하게 만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니 출근하듯 법원으로 가서 주차하고 아침도 먹으며, 방송대 시험 대비 공부를 하겠다고 서둘렀다.
처음 꺼내 입은 셔츠의 빳빳한 각이 몸을 긴장하게 했다. 그래서 어쩌면 사건보다 이런 불편함이 피곤을 만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머리카락을 2:8 가르마로 정돈하고 셔츠에 커프스, 팔목에 롤렉스 시계까지 찼다. 법원 구내식당에서 4천 원짜리 밥을 먹는 행색치고는 요란했다.
식사를 마치고 ‘문화산업과 문화기획’ 교과서 1장을 탐독하다 몸이 추워져서 호박마차로 돌아왔다. 이때 충식이 “재판 몇 호실입니까?”라고 문자를 보내왔기에 전화를 걸었다. 들려오는 주변 소음으로 보아 두 사람이 자동차로 이동 중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재판 시작 25분 전. 화장실도 갈 겸 호박마차에서 내려 3층으로 향했다. 내가 복도 끝에서 피고 염상섭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오랜만입니다!”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염상섭은 늘 그렇듯 깔끔한 슈트 차림으로 “시간이 남아서 나갔다 오려고요.”라고 말하고 법정 밖으로 나갔다.
나는 충식과 함께 302호 법정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피고 염상섭과 임진태가 피고 대기석에 앉았다. 재판장은 여자 판사로 수더분한 인상에 눈웃음까지 띠며 차분하게 재판을 진행했다. 앞 사건은 산재보험과 관련한 소송이었다.
“2015가단 11769호 사건, 원고 김경만, 피고 염상섭.”
재판장의 사건 진행에 대답하며 일어서 법대 앞으로 나갔다.
“당사자이십니까?”
재판장이 놀라는 듯 물었는데, 두 사람의 행색이 변호사로 보일 만큼 반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되자 피고 염상섭의 변론으로 그 환상은 깨졌다.
재판장이 “피고는 답변서를 내지 않았어요? 그런 경우 의제자백으로 간주합니다. 그런데 지금 내시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했다. 피고 염상섭은 자신의 처지를 적은 답변서를 법정에서 제출했는데, 그것도 달랑 한 부였다. 피고는 재판장의 구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돈을 빌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 갚아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간단하지 않은 사건입니다.”라며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이에 재판장이 “뒤에 재판이 많이 밀려 있습니다. 피고가 하실 말씀이 많은 듯하니 조정을 잡아 볼게요. 뛰어난 조정위원들이 계시니 시간을 가지고 차분하게 하실 말씀 있으면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조정기일에 다시 만나야 할 터였다.
재판을 끝내고 법정을 나서자 피고가 충식에게 “3천만 원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야겠고…” 어쩌고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이에 충식이 염상섭의 뒤통수에 대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지금 법정에서 할 소린가요?”라고 말했다. 염상섭은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2015년 4월 21일 화요일, 맑음
샤워를 마치고 피고 염상섭이 제출한 준비서면에 대한 답변서를 작성했다. 염상섭은 빌린 원금 중 3천5백만 원을 원고인 나의 대리인 충식에게 주었다며, 원금이 줄어들었으니 이자도 줄어들어 8백여만 원의 채무만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즉 충식이 사건 중간에 개입해 얼마의 돈을 횡령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충식에게 대리인의 자격을 부여하거나 위임한 사실이 없으므로 답변서에는 그 사실을 명확히 적었다. 또한 몇 장의 증거를 첨부했고, 기존에 제출한 증거목록도 새롭게 정리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염상섭이 ‘채무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는 점이었다. 바지로 참가한 전쟁터에서 어느새 주인의식이 싹튼 모양이었다. 4장 분량의 답변서를 3부 출력해 우체국으로 달려가 남부지방법원으로 등기우편을 보냈다.
대한저축은행에 보낼 ‘낙찰 잔금대출 상환계획서’도 작성했다. ‘상환계획서’라는 것이 별것 아닌 듯 보여도, 채무 상태를 드러내고 구라 섞인 변제계획을 밝히는 문서라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담담하게 작성했는데, 다른 은행과 달리 대한저축은행은 이러저러 찌질한 서류를 많이 요구한다. 채무자로서 성실하게 작성하고 관련 자료를 첨부해 메일로 전송했다.
2015년 4월 29일 수요일, 온종일 비
샤워하다 말고 아들 솔 군이 건네준 전화기를 받았다.
부산의 신동화 행정사가 “선생님, 행정심판위원회 결과 알아보셨어요?”라고 물었다.
“아뇨. 바빠서 못 알아보았는데요?”
신동화 행정사는 “선생님 의견대로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뭐요? 이야! 멋집니다. 이야! 이게 무슨 일입니까? 사실 딱 떨어지는 사안은 아니라 약간 의심하긴 했습니다만, 이렇게 승소하니 정말 기쁘네요. 큰일 하셨습니다. 정말 기쁩니다.”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와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오늘 같은 날엔 술 한잔해야지요. 서울 오시면 꼭 전화 주십시오. 이야! 정말 멋집니다. 최곱니다!”
나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알몸을 흔들며 마음껏 소리를 질렀다.
‘건축주 명의 변경신청’을 거부한 구청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승소했으므로 내 이름으로 건축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대한저축은행이 잠실 피렌체 빌딩을 담보로 잡은 것도 해제할 수 있게 되었고, 잘만 건축한다면 10억 원의 분양 수익을 바라볼 수 있는 첫 단추를 끼운 셈이었다. 그러니 어찌 환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린아이처럼 마음껏 환호했다. 또 하나의 무기를 득템한 것이다.
아들 솔 군이 “무슨 일이에요?”라고 놀라며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설명을 듣더니 “그렇게 중요한 거군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베란다에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https://youtu.be/ONMN8DIeo0A?list=PL7IGv76tfCC-Jm61zoh5QjWutLomb0v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