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행운의 사나이

#디벨로퍼 라이프

by 김경만

2. 행운의 사나이


2015년 2월 25일 수요일, 흐림


부산에서 활동하는 행정사 신동화의 전화를 받은 시각은 오후 6시 무렵이었다.


“선생님 미안합니다. 계속 상담이 있어서요.”


내가 “블로그 포스팅은 직접 하십니까?”라고 되물었더니, “그럼요. 다른 사람은 믿을 수가 없어서요. 그래서 직접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하긴 그래요. 잘못 포스팅을 하면 문제가 되니 직접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라고 동의하자, “네. 그리고 선생님의 저서 [부동산 경매비법]을 읽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행정소송에 대해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어서 그리 크게,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하여 건축주 명의 변경을 위한 행정소송은 신동화 행정사가 진행하게 되었다.



2015년 3월 2일 월요일, 맑음


옷장을 열어 새로 산 옷들을 걸었다.

깃이 노랗게 변색 된 와이셔츠와 통이 넓은 바지 등은 대형비닐봉지에 담았다. 내일 피렌체에 가는 길에 와이셔츠를 다섯 장 정도 맞추기로 했는데, 벌써 옷값으로 40만 원을 지출했고 셔츠까지 한다면 70만 원 정도 지출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옷값은 부산의 신동화 행정사에게 지불하도록 하기로 했다. 그러니 당연히 옷을 사고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았는데, 마침 이메일로 PDF로 만들어진 수임 계약서 파일을 보내왔다.


“수임료 말입니다. *백이던데 *백에 해주세요?”


전화를 걸어 말했더니 신동화 행정사가 “아이고, 저도 직원들이 있어서 어렵습니다. *백*십이면 몰라도 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함에도 “그래도 제가 프리미엄이 있는 사람인데, 변호사도 *백*십에 합니다. 이번은 *백에 해, 주시죠?”라고 주장했다.


“그러시다면 일시불로 주시는 조건입니다?”


신동화 행정사의 말에 “그럼요. 바로 송금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니, 1백만 원어치 옷을 산다고 해도 전혀 아까울 것은 아니었다. 또한, 신동화 행정사도 행정소송을 승리로 이끈다면 자신의 역량이 입증되기 때문에 전혀 손해를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2015년 3월 15일 일요일, 맑음


신동화 행정사가 건축주 명의 변경 행정소송 소장을 작성한 모양이었다.

메일을 열어 주장을 확인하고 ‘청구인’과 ‘피청구인’을 혼돈한 곳 등 두어 곳을 지적해 붉은 글씨로 표시해 다시 메일로 보냈다. 이에, 전화를 걸어와 “내일 익일 특급으로 접수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도 주장이 긍정적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운’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는 알 수는 없었다. 강인한 정신의 나도 어느새 ‘운’을 믿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래, 성공과 실패는 운이다. 다만 열심히 전진할 뿐이다!’



2015년 3월 18일 수요일, 오후에 비


인생의 강,

시저가 루비콘강을 건너며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했듯이, 나도 자신의 강을 건너기 위해 선택한 호박마차는 오랜만에 거친 배기음을 토해내며 인천지방법원으로 향했다.


몇 시간 전, 늦잠에서 일어나 침침한 눈을 부릅뜨고 돋보기안경에 의지하며 인천지방법원 경매계에 전화를 걸어 “경매계죠? 인도명령 결정이 나고 상대방에게 송달이 되었는데, 지금쯤 송달 확정 증명 발급이 가능할 것 같아 전화했습니다.”라고 물었었다. 경매계장이 “이 사건은 보존계로 넘어가 있습니다. 전화번호를 알려드릴게요.”라고 말하며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인도명령은 송달만 되면 족하므로 확정 증명은 필요 없습니다.”


한때는 부동산경매의 전설이던 나도 이빨 빠진 호랑이 마냥 이런 일도 허우적댔다. 보존계 직원의 말을 들었을 때, 15일을 기다린 것이 매우 아까웠다. 인도명령 결정문이 상대방에게 송달이 되는 것과 동시에 ‘강제집행’이 가능했으나, 나는 판결문처럼 송달 확정 증명 기간인 2주의 도과 기간이 있는 줄 알고 기다린 것이다.

옷장을 열어 7년 전 경매 전장을 누비던 시절, 아우들과 단체로 맞춘 차이나 정장을 꺼냈다. 이미 닳을 대로 닳아 버렸지만 그래도 오늘은 입어야 할 것 같았다.

백화점 식당으로 가서 ‘알탕’으로 허기를 달래고 인천지방법원으로 향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빗방울이 한 방울씩 앞 유리에 부닥쳤다.


법원에 도착해 인천 토지 유치권자라고 주장하는 김영오 일당을 쓸어버리는 강제집행 신청서를 작성하고, 창구에 “송달증명 및 집행문을 신청합니다.”라는 말로 접수했다. 그리고 이어, ‘집행관실’로 가서 강제집행 신청서를 작성했다. 이쁘장한 여직원이 “피신청인이 법인이어서 법인 등기부 등본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곧바로 등기과에 들러, 법인 등기부 등본을 발급받아 첨부했더니 “토지가 일곱 개여서 수수료가 일곱 배 나옵니다.”라고 안내했다. 내가 “할 수 없죠.”라고 대답했는데, 3백 평이 넘는 토지 중 어디는 집행하고, 어디는 집행을 안 할 수 없기에 그렇게 말했다. 여직원이 “예납금을 은행에 넣으시고 돌아가시면 1주일에서 열흘 사이에 담당자가 전화할 것입니다. 연락이 없으면 전화 주시고요.”라고 말했다. 강제집행 예납금은 638,050원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납부하고 쟁점 토지가 있는 인천으로 향했다. 그 사이 빗방울은 상당히 굵어졌다.

호박마차는 잠시 후 인천 낙찰토지에 다다랐다. 나는 안양 낙찰 물건에 입성할 때처럼 큰소리로 “인천! 한번 친해져 보자!!”라고 외치고 캐논 5D Mark 3 카메라로 현장을 찍으려다 놀랐다. ‘유치권이 있다’라고 알리는 내용물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곤란한 일이었다. 집행관이 강제집행을 하러 나왔을 때, 점유자를 알 수 있는 우편물이나 현수막 등이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깨끗한 상태라면 집행은 할 수 없게 된다. 그걸 알기에 잠시 난감했으나, “흠, 그렇다면 강제집행을 취소하고 그냥 문을 따면 되겠네.”라고 혼잣말하며 근처 부동산 중개사무소 ‘한빛’으로 향했다.

여 중개사가 처음에는 못 알아보더니 몇 마디 대화를 나누자 “아, 김정일 닮은 신 분이시구나. 그런데 훨씬 젊어지셨네?”라고 알아보고, “요즘 아파트값이 2, 3천 올라서 빌라 지으면 1억4천은 부담 없이 팔려요. 잘 된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들 모두 떠났어요. 사무실도 뺐고요?”라고 말했다.

시행 사업한다며 기세등등하던 노인네들이 제풀에 지쳐 떠난 모양이었다. 중개사의 말을 들으며 몇 달 전, D 건축 김 사장이 시장조사를 하고 “사장님, 1억2천에 날리면 3억 떨어집니다.”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35세대를 1채당 1억2천만 원에 분양하면 3억이 남는다고 말했는데, 여 중개사는 ‘1억 4천만 원에도 분양이 된다’라고 하니 35세대 곱하기 2천만 원이면 7억 원이었다.

10억 원의 수익을 바라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이는 전적으로 시간의 힘이었다. 주변 아파트값이 올랐기에 빌라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것이었다. 생각을 끊은 사람은 중개사였다.

“이 동네 마지막으로 지은 빌라가 2001년에 지은 것이라서 잘 팔릴 것입니다.”


불행이 어깨동무하고 오듯, 행운 또한 그랬다. 안양 피렌체하우스로 향하는 호박마차 안에서 또, 한번 크게 외쳤다.


“김경만! 넌 역시 행운의 사나이야. 죽자는 마음으로 싸우니 사는구나. 그래 한번 10억 벌어보자!!”



https://youtu.be/ijhaCs8WHcs?list=PL7IGv76tfCC-Jm61zoh5QjWutLomb0vsy


V24A2457.JPG
V24A2458.JPG
V24A3352.JPG
경매비법.jpg
극한직업 건물주 전면 표지 (1).jpg
꼬마빌딩 건축 전면 표지.jpg


매거진의 이전글제2장 희망 1. 행정소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