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벨로퍼 라이프
5. 건축주 명의 변경
2015년 6월 16일 화요일, 맑음
황토색 바지에 흰색 차이나셔츠를 입고 리갈 구두를 신었다.
내가 의상에 신경을 쓰는 것은 전투가 있다는 뜻이다.
“부아아악---”
벤츠 SLK 로드스터의 주행모드를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때마다 작은 체구의 빨간 로드스터 광폭 타이어는 거칠게 지면을 말아 감으며 앞으로 튕겨 나갔고, 인천 구청에 도착했을 때는 9시가 조금 못 된 시각이었다.
공무원들은 중동 호흡기 질환 메르스의 영향으로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나는 ‘계속 마스크를 써야 한다면 눈 화장만 하면 될 것 같다’라는 별로 영양가 없는 상상을 하며 공무원에게 “아직 전산이 열리지 않은 거죠?”라고 물었다. 공무원이 “무슨 일로 오셨는데요?”라고 되물었다.
“건축주 명의 변경 신청서 접수입니다.”
이에 공무원이 “주세요.”라고 서류를 받았는데 자기 일에 매우 능동적이거나, 아니면 내가 너무 잘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서류를 받아 든 공무원은 건축과로 내선전화를 거는가 싶더니, 접수도장을 찍어주고 “4층 건축과로 가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만난 건축 담당 공무원은 삼십 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푸른색 상, 하의를 입었고 셔츠에는 나뭇잎 부스러기 같은 게 묻어 있었다.
원형 의자를 끌어당겨 내 앞으로 내밀며 “이리로 앉으시죠?”라고 말하고 “전에 오셨던 분인가요?”라고 덧붙였다. 내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서류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전형적인 느림보 공무원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볼록한 뱃살이 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은 “네. 됐습니다.”라는 공무원의 말에 끊겼다. “수고하십시오.”라고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오면서 벗었던 선글라스를 다시 썼다. 오른손목에 찬 롤렉스 데이저스트 시계는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파티나 해야겠다!’
헤어스프레이와 왁스가 거의 다 떨어져서 이마트를 가려고 했는데 핑계를 하나 더 만들었다. 이마트에 도착해, 카트를 끌어내고 헤어스프레이와 라면, 골뱅이, 옥수수콘도 집어넣고, 광어회와 인도산 ‘흰머리 새우’도 추가했다. 금액은 10만 원이 조금 넘었다.
잠시 후 안양 피렌체하우스 옥상에는 김건모의 ‘핑계’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파티가 시작되었다. 화이트 와인만 있었으면 완벽했을 텐데, 그 외에 더 바랄 것은 없었다. 오디오 볼륨을 최대로 올려도, 마음껏 소리를 질러도 누구 하나 방해하지 않을 공간. 꿈의 공간에서 멋진 안주와 더불어 레드 와인 한 병을 다 마셨을 때는 취기가 완연했다.
‘그래, 건축하지 뭐!’
취기가 오르자 용기가 생겼다. 인천 토지에 도시형 생활주택 및 오피스텔 35세대를 건축하기로 마음먹었다. 운명 앞에서 뒷걸음질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2015년 6월 17일 수요일, 맑음
갖고 싶거나 하고 싶었던 일이 이뤄지는 것은 행복하다.
일어나자마자 책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햇살이 인조 잔디를 달구기 시작했다. 책을 조금 더 읽을 생각에 파라솔을 펼쳤다. 뿌듯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국제자산신탁 직원의 전화를 받은 때도 이때였다.
인천 토지는 국제자산신탁에 신탁되어 있다. 그래서 건축 담당 공무원이 전화를 걸어와 “건축주 명의를 변경하려면 국제신탁의 동의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었다. 내가 “신탁이야 담보를 지키려 하니 동의서를 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요? 그러나 지금 서류를 받을 수 없으니, 일단 사본을 팩스로 받고 원본은 우편으로 받으면 안 되겠습니까? 시간이 돈이라서요.”라고 되물었고, 잠시 후, 건축 담당 공무원이 팩스로 받은 신탁 계약서는 무려 14장이나 되었다.
내용을 읽은 공무원이 몇 가지 조항을 들어 ‘신탁회사 동의서’도 요구했다. 나는 마음이 바빴으므로 건축과 공무원에게 먼저 팩스로 보내고 원본은 우편으로 보내자고 조율하고, 채권자인 대한저축은행 조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조 과장, 신탁회사 담당자에게 동의서 좀 보내달라고 해?”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국제자산신탁회사의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확인하는 중이었다.
2015년 6월 23일 화요일, 맑음
부자가 되는 새로운 아침을 맞았다.
그러나 건축주 명의 변경 허가 공문은 받지 못했다. 구청 건축과에 전화를 걸어 “언제쯤 공문이 도착합니까?”라고 물었더니, “오늘 보낼 예정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좋은 날 되세요!”
전화를 끊고 대한저축은행 조과장에게 “오늘 공문을 보낸다고 하니 늦어도 목요일에는 받아볼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문자를 보냈다. 대한저축은행에서도 경매로 낙찰받은 토지의 건축주 명의 변경을 진행하는 나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자칫하면 “결손 충당금 4억 원이 왔다 갔다 한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2015년 6월 25일 목요일, 오후에 비
깔끔한 5층 대리석 건물 안양 피렌체하우스 우편함에는 도시가스 요금 고지서 등 몇 개의 우편물이 있었다. 그중에 제일 반가운 것은 인천 구청에서 보낸 ‘건축관계자 변경 신고 수리’에 대한 공문이었다.
“귀하께서 신청하신 우리 구 동 34-59 외 5필지 상의 건축관계자(건축주) 변경 신고에 대하여 건축법 시행규칙 제11조 규정에 의거 처리하고 붙임과 같이 신고필증을 교부하오며, 건축물 사용승인 전 광역교통시설부담금 및 하수 원인자부담금 등을 납부하시기 바랍니다.”
4장으로 구성된 공문을 받기 위해 6개월간, 3천6백만 원의 대출이자를 지출했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앞으로 달리는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건축된다면 큰 이득은 없지만 10억 원 정도 수익을 낼 수 있기에 빨리 치고 빠지기로 했다.
대한저축은행 조 과장도 “사진으로 먼저 보내주세요. 담보 분리 작업해야 하니까요?”라고 부탁했기에 아들 솔 군에게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내게 했다. 그렇게 인천 토지와 공동담보로 엮인 피렌체 빌딩에 설정한 근저당권도 해지되게 되었다. 대출받을 때 ‘건축주 명의 변경이 되면 공동담보는 풀어준다’라는 특약을 했기 때문이었다.
https://youtu.be/SRYBCKzQhe0?list=PL7IGv76tfCC-Jm61zoh5QjWutLomb0v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