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건축 실패기
14. 건축 및 토목 공사 계약
2017년 8월 14일 월요일, 흐리고 오후 비
저 멀리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새벽까지 마신 술이 해독이 덜 된 듯했다. 서재 아카시아 원목 책상 위에 놓인 롤렉스 데이저스트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샤워 후, 불어오는 바람의 온도를 느꼈다.
‘슈트를 입기 좋다’
옷장에 걸린 흰색 린넨 슈트를 꺼냈고 금고에 있던 롤렉스 서브마리너도 그랬다. 시계의 날짜는 1에 멈춰 있었다.
“디리리리......”
날짜를 13으로 맞추고 시침을 돌려 14일이 되게 한 후 시간도 맞추었다. 9시 45분이었다.
빨간 벤츠 SLK 로드스터가 개성신협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동업자 도진이 은행으로 들어오는 나를 발견하고 인사를 했다.
“늦으셔!”
나도 “멀리서 시간 맞춰 왔네?”라고 대답했다. 안 계장은 오늘도 비타민 음료를 내밀며 대출서류 작성을 시작했다. 두 채무자는 나란히 앉아 준비서류와 필기구, 도장을 꺼내 놓고 “대출금은 각각 2억7천만 원이고요. 금리는 5%, 중도상환수수료는 0.5%이며 건축자금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1.5%입니다.”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같은 서류에 필답시험을 보듯이 서명해 나갔다. 펜은 당연히 몽블랑 마이스터튁 149 만년필이었다.
“두 분 모두 인감도장이 사각이시네요?”
도장을 받아 날인하던 안 계장의 말에 도진이 “형님이 원조시고 저는 따라쟁이”라고 대답하자 “하하하, 특이하십니다.”라고 웃었다. 대출 집행은 목요일 오전 10시에 하기로 했다. 안 계장이 주차장까지 배웅했다.
“식사나 하고 가실래요?”
도진의 말에 “그러자, 지금 화장실이 급하다.”라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러나 동태탕 식당은 휴가였다. 내 속이 불편한 것을 안 도진이 “죽 드세요.”라고 권유해 본죽으로 가 전복죽을 시켰다. 어젯밤 소주와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이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중년의 사내를 태운 스포츠카는 경인고속도로를 벗어나 올림픽대로로 진입했다. 이때 동진신협 현 팀장이 전화를 걸어와 “취급수수료 1.5% 하시면 되겠어요?”라고 조율해 왔다.
“아니, 1%.”
내 요구조건은 변함없었다. 현 팀장이 “그럼 사장님, 목요일 회의 들어가니 그때 답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도진의 조언대로 이제는 서명할 때가 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용인 건축 공사비도 문제였다. 토목 공사 및 전기와 설비 공사비가 과다하다는 것이 나와 도진의 견해였다. 그러나 현장소장 준열은 ‘적당한 공사비를 줘야 한다’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기에 조율이 필요했다.
“토목 공사 끝내고 그때 다시 작업하자!”
나는 동업자 도진과 전화로 그런 결론을 내렸다. 내린 비로 멈춘 토목 공사가 관건이므로 끝나고, 골조공사 시작 전 업자 견적을 받기로 했다.
2017년 8월 15일 화요일, 폭우
보일러 연통을 때리는 빗소리는 감성을 불러일으켰으나 아침이 되자 폭우로 변했다. 안방 창문으로 들려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형님 뭐 하세요?”
일찍 일어난 탓에 타이머를 맞추고 잠을 청했으나 도진이 방해했다. 이어, “공사비 말이에요, 전기를 평당 18만 원하면”이라고 말하자, 듣기를 멈추고 말했다.
“너는 곁가지에 너무 신경을 쓰는구나. 그럴 거면 뭐 하러 소장을 써? 그렇지 않아도 통화했었는데, 문짝 등 디테일하게 물어보는 게 스트레스 받는 거 같더라. 우린 건축주야, 건축주는 얼마에 건물을 지을지 그 예산만 책정하면 되는 거야. 그 가격에 업자를 맞추고 못 맞추고 하는 것은 전 소장이 할 역할이고. 품성이 단가를 후려치지 못하니 우리가 가격을 제시하고 전 소장이 다시 업자들에게 제시해서 동의하는 업자들이 공사하게 하는 거지?”
수시로 걱정이 되는 도진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인천 피렌체하우스 미분양 세대 등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기에, 용인 건축은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2017년 8월 16일 수요일, 오전 맑음 오후 흐리고 비
가을바람과 가을 하늘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빨간 벤츠 SLK 로드스터는 올림픽대로를 거쳐 외곽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해 신우건설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보다 40분이나 늦었다. 전 소장이 손을 흔들며 빈 주차 공간을 안내했다.
사무실로 올라갔더니 먼저 도착한 도진이 공사계약서를 만들어 놓았는데, 두 명의 건축주이므로 2부씩 출력한 후 인감도장을 찍었다.
공사명 : 용인 다세대 신축공사
착공 년월일 : 2017년 08월 01일
준공 년월일 : 2018년 04월 30일
계약 금액 : 일금 십구억원정(1,900,000,000)
“잠깐만! 인감도장이 바뀌었네.”
도진의 계약서에 나의 인감도장이 날인되는 것을 보고 중지시켰다.
“어허허허~ 어제 나란히 개성신협 대출자서를 했을 때 바뀌었나보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나의 사각 인감도장이 좋아 도진도 그대로 만들었기에 생긴 혼란이었다. 도진이 “어차피 내 주소도 바뀌었기에 다시 출력하죠?”라고 말했다. 그렇게 계약서에 인감 날인하고 “사진 찍으셔야죠?”라는 전 소장의 말에 카메라를 건넸다. 세 사람이 사무실 문을 뒤로하고 나란히 섰다.
토목 공사계약서도 작성해야 했다. 하지만 토목 공사의 내역과 범위가 불분명하므로 공정별로 계약서를 나누기로 마음먹고 말했다.
“이건 건물 전체 토목 공사 계약서네요? 지금은 토사 반출 및 바닥 평탄화 작업까지 실비를 포함한 내용으로 계약하고, 나머지 부분은 골조 후 다시 계약하는 것으로 하시죠?”
물론 이 부분도 도진과 미리 전화 통화를 해 의견을 조율한 상태였다.
“어쨌든 한 걸음 떼었으니 점심이나 드시러 가시죠? 대표님 신라호텔 가나요?”
나의 농담에 신우건설 대표 영식이 “당연히 가야 하는데 바빠서요.”라며 웃었다. 토목 공사 대표도 “여의도에 약속이 있습니다.”라며 먼저 일어섰다.
일행은 동태탕에 자리를 잡았다. 맞은편엔 보험 영업을 하는 사람들인지, 화장을 짙게 한 여자들 서너 명과 남자 한 명이 업무 관련 이야기하며 식사하고 있었다. 내가 “스테이크 먹는 줄 알고 흰옷을 입었는데 난감하네요?”라고 농담하며 점원에게 앞치마를 달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신우건설 여직원을 포함해 모두 흰색 옷을 입어 “저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빨간 벤츠 SLK 로드스터는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함께 움직인 친구 오 군이 “야, 너의 삶은 뭐, 영화 찍는 거 같아. 몇십억에~ 자신감 있어 좋다.”라고 말했다.
“그러냐? 근데 돈이란 게 사실 웃기는 거야. 28억을 대출받았는데 난 그 돈의 실체를 본 적이 없어. 그냥 통장에 찍히고 매월 이자를 요구하지. 그래서 화폐가 허구라는 생각도 해”
이때였다. 나도 모르게 “그러고 보니, 너도 돈, 은행에 넣어 놓지 말고 서울에 아파트 하나 사 놔라”라고 질문인지 답인지 모를 말을 했다. 이에, 친구 오 군이 “아파트는 이제 끝물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부동산 투자에 끝물이 어디 있어? 대한민국이 그래도 세계 10대 경제 대국 중 하나야. 그런 면에서 보면 서울의 집값은 아직도 싼 편이야. 그러니 전세 끼고 하나 사 둬. 나중에 얘들에게 줘도 되고?”
“얘들에게 주긴 싫은데?”
“그럼 팔아도 되고. 서울 아파트값은 안 떨어져. 떨어지면 내가 사 줄게!”
“그럼 어디다?”
“서울 아무 곳도 상관없어. 근데 어디가 좋을지는 나도 알아봐야겠다.”
그러는 사이 용산역이 보였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저기 횡단보도에 내려 줄 테니 건너가?”
“그래, 잘 가라!”
더벅머리 총각 같은 스타일의 친구가 빨간 스포츠카 조수석 문을 열고 내렸다. 그리고 몇 달 후 나의 도움으로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있는 아파트 한 채를 전세 끼고 매수했다. 그 후 아파트 가격은 두 배가 되었다.
https://youtu.be/WhtUp7TAeJk?list=PL7IGv76tfCC-VozwgHFXueaG6cr1hJYc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