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건축 실패기
4. 마을발전기금
2017년 9월 14일 목요일, 맑음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있었다.
며칠 전 오픈 드라이빙으로 그을린 이마가 따가웠다. 은행 문을 나서며 도진에게 “밥 먹어야지?”라고 물었더니 “뭐 드시고 싶으세요?”라고 되물었다. “동태탕이나 먹자?”라고 대답하자 “예, 그럼 [피렌체하우스]에 주차하고 내려가셔야죠?”라고 말했다.
두 대의 벤츠가 인천 [피렌체하우스]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서류를 아지트에 올려놓은 후 식당으로 향했고, 식사 후 다시 올라와 향후 자금에 대해 회의했다.
“당장 골조 (오야지) 임 사장 계약금도 지급해야 합니다.”
인천 [피렌체하우스] 19세대를 담보로 대출받은 19억 원은 동진신협 건축자금 채무를 상환했고, 597,890,794원은 계좌에 남아 있었다. 도진이 그걸 알기에 지급을 요구했다.
“기다려라, 입금된 날 돈 쭉 빼가면 ‘아 이 친구가 돈이 없구나?’라고 생각할 거 아냐? 그러면 가오가 상하잖아. 그러니 여유 있는 척 하루 이틀 있다 움직여야지. 안 그래?”
“에이 형님, 바쁜데 들여다보겠어요?”
“아냐, 문화은행 송도지점은 한가해. 마치 여행사 같더라니까?”
“그래요? 그러면 들여다볼 수도 있겠는데요? 하! 하!! 알겠어요.”
“그러므로 오늘은 여기까지. 돈 쓰는 것은 내일 해도 늦지 않아.”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도진이 루이비통 가방 가슴에 엇비슷하게 메며 일어섰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자 스무 살 정도 되는 여자가 몸통을 묶은 개 여러 마리를 끌고 607호를 들락거리다 마주쳤다.
“여기 개를 키우면 안 되는데, 나 건축주입니다.”
여자가 “네.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뭐가 죄송하다는 것인지, 더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2017년 9월 15일 금요일, 맑음
노트북 가방을 열어 물품들을 제 위치에 놓고 자금 집행을 준비하다 개성신협 안 계장의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건설회사 이사회 회의록 대표자 및 이사 서명이 빠졌습니다.”
이때부터 몸 상태도 급격하게 나빠졌는데 허벅지 근육이 떨리고, 움직일 때마다 근육에 통증이 왔으며, 체온이 떨어지고 추위를 느꼈다. 대출이 실행되자 몸의 긴장이 풀어지며 오는 증상으로 판단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두 시까지 갈게요?”
비타민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했으나 몸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호박마차를 타고 은행으로 가 ‘이사회 결의서’를 받은 후 신우건설 김영식 대표와 통화했다. 영식이 “내일은 특별한 일정이 없습니다. 전 소장에게 보내면 서명해서 다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실수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용인 현장을 지휘 감독하던 준열이 일을 마치고 서류를 가지러 인천 [피렌체하우스]를 방문했다.
2017년 9월 16일 토요일, 맑음
자정이 못 된 시각에 눈을 떴다.
쌍화탕 하나를 마시고 다시 잠을 청했고 아침이 되었을 때는 52%쯤 충전된 상태였다. 12V 배터리의 경우 정상상태의 전압은 12.8V이다. 방전된 상태에서 다시 충전하면 사용이 가능하지만 11.8V 이하로 방전되면 배터리는 제 성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나의 몸과 정신도 완전 방전은 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현장소장 준열은 시공사 신우건설 김 대표를 만나 이사회 결의서에 자필서명을 받아 “오토바이 퀵으로 보냈습니다.”라고 전화했다. 이때 용인 현장은 도진이 지켰는데 지하 주차장 바닥에 기둥과 벽체를 세우는 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도진이 “공기를 단축하려면 펌프카를 두 대 써야 할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에, 내가 “펌프카 비용은?”이라고 되물었더니 “그건 우리가 내야죠?”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렇게 공기를 단축한다고 해서 얼마나 단축된다고 그러냐? 어차피 겨울 분양은 못 하는데 말이야.”라고 말하자, “그게 아니에요. 하루 이틀 늦어지는 게 나중에는 10일 20일 차이가 날 수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막연하게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고 시뮬레이션해서 실익이 있는지 판단 한 후 결정해야지. 작업속도도 무작정 인원을 투입하라고 해 비용 증가하면 그거 다 건축주가 지급해야 하는 거잖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성격이었다. 그러니 건축 작업 및 과정에 대해 참여하거나 추진하는 방식이 달랐고, 자금 집행도 도진은 선지급, 나는 후지급 형식이었다. 오늘도 골조공사비 일부를 “오늘 일단 4백 현금으로 줬습니다.”라는 보고를 들었다. 정상적인 결제는 월요일에 하기로 했다.
2017년 9월 18일 월요일, 맑음
심야 라디오 방송도 끝났다.
공간을 채우려고 심수봉 노래를 틀었고 겨우 잠을 청했다. 일어났을 때는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정신은 피곤하고 몸에서는 땀이 날 정도로 열꽃이 피는데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런 날은 계속되고 있다.
책상 칸막이에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 사진을 붙여 놓은 안 계장에게 신우건설 이사회 결의서를 내밀며, “이것 좀 팩스 부탁해요.”라며 세대 열람 기록을 건넸다. 오매불망 기다릴 문화은행 송도지점 부점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어쩌면 당사자는 이미 대출해 줬으므로, 아니면 나의 인간성을 믿고 다른 업무에 열중할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그렇게 두 가지 일을 처리하고 세무서로 향했다.
골조공사비 14,991,125원. 상수도 세금 3,803,500원을 입금하고 체납된 전기 및 상하수도 요금을 납부하느라 통장의 잔고는 4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분양 중인 인천 [피렌체하우스] 일부 세대를 L.H 전세로 돌리기로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1세대 당 1억 원인 대출금을 일부 상환해야 계약이 진행되므로 얼마간의 현금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보이지 않게 응원하는 저축은행 김영준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구조건은 간단했다. 대출이 없는 205호와 504호 2개 세대를 담보로 개인이든 사업자든 최대한 대출이 많이 받는 것이었다. 영준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노력해서 좋은 상품 찾아내겠습니다.”
피곤이 몰려왔다. 서재에 있던 이클라이너 소파를 거실로 옮겼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유리창 너머 계양산으로 시선을 던졌다. 겨울 산과 봄, 여름을 거쳐 초록이 옅어지는 것을 느낀다. 거실 유리창 한쪽에 쪽창을 내고 나머지는 통유리를 끼우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2017년 9월 19일 화요일, 흐림
지독한 미세먼지로 하늘과 풍경이 뿌옇게 흐렸다.
흰색 린넨 슈트에 버리려다 걸어 놓은 넥타이를 꺼냈다. 아직도 팬티를 구매하지 않아 5백만 원이 고스란히 빨간 봉투에 담겨 있는 아침이었다.
호박마차를 70여 Km를 몰아 용인 현장에 도착했다. 컨테이너 사무실에는 도진과 박혁수 이장이 앉아 있었다. 며칠 전 도진이, “박혁수 이장이 말하는데요? 우리 현장이 세 마을을 거치는데 이장들이 마을 발전기금을 좀 내놓으라고 했다고 하네요?”라는 말을 했다기에, 운전하고 오는 동안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하다 그만 출구 차선을 놓쳐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실수를 했다.
“형님 어떻게 답을 줘야죠? 기다린다는데?”
“그래? 우선 니가 하와이나 나갔다 와라. 한 3개월. 건축업자라고 설레발치고 다니니 파리들이 꼬이는 거 아냐?”
“에이 그게 그렇게 안 돼요?”
도진이 펄쩍 뛰었다. 이런 두 동업자의 대화는 붉게 그을린 얼굴의 박혁수 이장에게는 불편한 자리였다. 그러함에도 나는 “여기는 박혁수 이장에게 맡기고 우리는 나타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냐?”라고 말했다. 도진이 “아이, 또 무슨 그런 말씀을~”이라고 막아섰다. 이에 내가 테이블에 왼손을 올려 두고 손등을 칼로 찍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소매치기를 하려고 해도 싸구려 도루코 면도날은 사야 하고, 사냥이라도 하려면 하다못해 죽창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그렇다면 뭔 돈을 요구하면 뭔가 있어야지? 세금 처리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러니 뭔 서류라도 내밀며 요구해야 하는 거 아냐?”
“여기는 그런 거 없어요?”
“그래? 그러면 라마다호텔로 오시라고 해. 그런 데서 만나 뭔가 대화해야지. 여기서 만나 대충 돈 내놓으라고 하고 돈 주면 그렇잖아?”
“그분들 거기까지 못 가요?”
“왜? 농사일로 바쁜가? 바쁜 사람들이! 박혁수 이장이 말 못하는 것 보니 요구하는 돈이 많은가 봐? 얼마를 달래요?”
내가 박혁수 이장을 보며 묻자 “(이장단이 )말을 안 해요.”라고 얼버무렸다. 이에 내가 “세 개 마을이니 백만 원씩 3백이면 될까요?”라고 말했다. 박혁수 이장이 “에이, 그럴려면 그냥 뭉개!”라고 말했다.
“그렇죠? 공짜 돈은 처음에는 적은 돈도 고마운데 나중에 가면 바닷물처럼 먹어도 먹어도 목마르지요. 아마 이장들이 그럴 것입니다. 공장 짓고 하는 데서 뜯어낸 경험과 금액이 많아 욕구를 충족시키기는 힘들어요. 다른 사람들에겐 얼마나 뜯어냈답니까?”
도진이 끼어들며 “요 밑 요양원은 3천, 원룸은 1천5백 줬대요.”라고 대답했다.
“그랬군. 많이도 줬네. 그러니 버릇이 나빠졌지. 요양원이야 마을 사람들이 소비자들이니 마케팅 차원에서 그렇다고 치고, 빌라 여기서 뭐 뜯어먹을 게 있다고! 박 이장님, 내가 말입니다. 1994년도에 980만 원을 가지고 상경했습니다. 그해 아버지가 양파 농사로 번 돈 5백만 원과 현금 480만 원이었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서울 와서 보증금 5백에 월세 20만 원짜리 반지하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천만 원이라는 돈은 목숨 같은 단위여서 쉽게 내놓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린넨 슈트에 파란 타바트 선글라스를 쓰고 낮고 느리며 똑똑한 말투로 또박또박 날을 세웠다.
“형님 또 그 얘기. 열 번도 넘게 듣네!”
도진이 엄살을 피웠으나 박혁수 이장에게도 건축주의 성향을 알릴 필요가 있기에 그렇게 했다.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로 올라갔다. 지하층 천정까지 철근 배근이 끝났고 거푸집을 세우는 작업이 한창이었으나, 목수 한 팀이 더 들어와도 될 정도로 나머지 현장은 한가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읽은 도진이 “임 사장이 목수팀을 못 데려오는데요?”라고 말했는데, 자신도 아예 등산화까지 신고 현장을 누볐다.
“영화판하고 같은 거지. 다들 다른 현장 물고 있는데 노는 팀이 있을 리가 없잖아? 저기 봐라. 리더는 한 사람이고 나머지는 시키는 대로 일하지. 사람만 많다고 효율이 오르는 게 아니야. 결국, 오야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들도 모두 다른 현장에서 일하기에 데려오고 싶어도 못 오는 거야. 또 자체 인맥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고.”
현장에 오면 즐거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으나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도진에게 스마트폰을 꺼내 건네며 “어깨 걸고 뒤에서 한 장 찍어라. 오버 더 숄더라고 하는데.”라고 앵글을 설명했다. 그런 후 도진도 한 장 찍어주었다. 이때, 도진이 “형님이 건축에는 재미를 못 느끼시는 거 같아요. 정적인 영화나 그런 거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멀리서 골조 임 사장과 전 소장이 스티로폼을 옮기는 모습을 바라보며 “응, 맞아. 한 번 해봤잖아. 그래서 재미가 없다. 또 계절 탓도 있는 거 같고 몸도 좋지 않고. 나, 갈란다.”라고 말했다. 다시 도진이 “레미콘을 안 주려고 하는데요?”라고 말했다. 레미콘 중간 납품업자의 농간으로 관계가 청산되고 삼표 레미콘에서 직접 납품받는데 자꾸 압력을 넣는 모양이었다.
“참 쓰레기 새끼네, 어려서 그런가? 인간사 적을 만들어 뭐 좋을 게 있다고~”
인천 사건 같았으면 벌써 전화해 “너 거기 있어. 아주 끝장내 버릴 거야.”라며 군화를 찾아 신고 호박마차를 몰고 가고도 남았는데, 남의 일처럼 말했다. 도진이 업자의 명함을 찾더니 부드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맡겨 둬도 될 것 같아서 호박마차에 올랐다. 통화하던 도진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고속도로는 정체되었다. 마트에 들렸다. 광어회 한 접시와 소주 1병을 집었다. 도진도 박혁수 이장과 인계동의 한 술집에 마주 앉아 대작하고 있을 시각이었다.
샤워 후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전사는 350ml 유리잔에 맥주를 따라 한 모금 마시더니 소주를 부었다.
취하고 싶었다.
https://youtu.be/ixn_DrP7FjE?si=RT1NPjadTV88_k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