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건축 실패기
3. 바닥 기초 콘크리트 타설
2017년 9월 6일 수요일, 비
어떻게 집에 왔고 어떻게 잠을 잤는지는 기억이 없다.
아일랜드식 식탁 위에는 마시다 만 캔 맥주가 하나 세워져 있고, 서재 아카시아 원목 책상 위에는 용인 현장 파일 두 개와 납세증명서 등 서류, 롤렉스 서브마리너 시계 등이 놓여 있었다.
하늘은 흐렸다. 옷장을 열어 흰색 린넨 슈트를 꺼내 입고 책상 위에 있던 것들을 가죽 가방에 쓸어 담았는데, 카메라 등 많았다.
잠시 후, 호박마차가 안양 피렌체하우스에 도착했다. 주차장은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펜트하우스에서 내려오는 아들에게 “이거 배즙인데 마셔라.”라며 비닐봉지를 건넸다. 아들이 조수석에 오르며 “긴바지가 짧아서 반바지 입었어요?”라고 말했다. 오후 2시 용인 현장 사무실에서 철근, 레미콘 업체들과 계약을 하기로 되어 있기에“사진 찍을 거니 옷도 잘 입고.”라는 말 때문이었다.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용인 현장은 깔아놓은 잡석 위로 시멘트를 붓는 ‘버림작업’을 했고, 그 위로 먹줄을 튀겨 건물의 기초를 잡고 있었다. 인부들은 젊었다. 가까이 가서 말소리를 들어보니 모두 중국인들이었고 오야지 임 씨만 한국 사람이었다. 임 씨 얼굴엔 밴드가 붙어 있었다. 현장소장 준열이 ‘현장 사무실 입구 나무 발판이 흔들리며 넘어져 이빨 두 개가 부러지고 얼굴도 찰과상을 입었다’라고 알려줬다. 내가 “어허, 얼굴로 작업할 와꾸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네.”라고 농담했다.
2시가 조금 넘어 철근업체와 레미콘 업체 대표를 만났다. 철근 납품업체 사장이 “언제 또 여기에 하셨습니까?”라고 인사를 건넸는데, 모두 인천 피렌체하우스 건축현장에 납품한 업체들이었다. 때문에, 별다른 검증작업은 필요 없었다.
닥터백에서 돌돌 말린 빨간 가죽 필통을 꺼내 펼치고 만년필 하나를 선택했다. 옆자리엔 도진이 자리했다. 그렇게 계약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빗방울은 여전히 그런 식이었다. 인부들이 먹줄을 따라 첫 폼을 세우기 시작했다. 내가 셀카봉에 스마트폰을 끼우고 파노라마 촬영을 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서 이 순간을 기록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2017년 9월 9일 토요일, 맑음
용인 건축 현장은 흙 속에 있던 바위 하나가 엘리베이터가 설치될 구멍으로 굴러 들어갔다. 크기가 워낙 커 장비로 들어낼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브레카로 깨 인력으로 꺼내느라 34만 원 비용이 들었다. 또한 레미콘을 외상 납품하기로 한 중간 도매상과 공급업체 삼표산업의 거래가 틀어지면서 현금으로 구매해야 했으므로 3천4백만 원을 지출했다. 도진이 “형님이 돈 있는 줄 귀신같이 아는데요?”라고 어깨를 으쓱했다.
이 모든 움직임은 도진이 관리했는데, 레미콘 중간 도매상의 폭리도 드러났다. 중간 도매상은 건축 중인 피렌체하우스 부지를 담보로 삼표산업으로부터 레미콘을 공급받아 지급하려고 했다. 그러나 삼표산업은 ‘부지의 대출이 너무 많다’라는 것을 이유로 다른 담보물을 요구했고 이에 응하지 못하자 ‘그러면 레미콘을 공급할 수 없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자 중간 업자는 도진에게 ‘현금을 준비할 수 있느냐?’고 간을 봤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현금을 준비할 거면 내가 직접 거래하지, 안 그래요?”
그런 이유로 도진은 거래 경험이 있는 영업과장에게 직접 전화해 ‘업자 납품단가에 직접 공급’받기로 했다. 내가 초도물량 금액을 신우건설 계좌로 입금했다. 이는, 전체 레미콘 물량으로 보면 약 1천2백만 원 절감 효과가 있었다. 도진이 “형님, 우리 태그호이어 시계 한 개씩은 아꼈어요. 우리 이러다 대박 나는 거 아니에요?”라고 좋아했다.
“그래? 나도 이번 고비만 넘어가면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고했다.”
“네. 형님도 쉬세요.”
할리데이비슨 V형 2기통 로시난테의 심장을 깨웠다.
“두두두두—당당 ---두두두두-----”
청라지구를 지나 인천 해운여객터미널까지 달렸다.
2017년 9월 11일 월요일, 비
개성신협 대출을 진행할 법무사 직원이 용인 건축자금 대출 서명을 위해 전화했다.
“대표님, 건설사 이사회 결의서를 메일로 보냈는데 아직 열어보지 않으셔서 전화...”
“그래요? 지금 바로 확인해 볼게요?”
대답한 후, 내려받은 ‘이사회 결의서’를 프린트하고 신우건설 대표 영식에게 전화를 걸어 “이사회 이사 개인 인감증명서 및 개인 인감도장 날인이 필요하네요?”라고 말했다. 영식이 “아, 이사 한 분이 삼척에 계시는데, 일단 자료를 메일로 보내 보세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네. 그러면 법무사 연락처와 함께 보내 드리겠습니다. 목요일 자서입니다?”라고 말하고 메일로 관련 파일을 첨부해 전송했다.
용인 현장은 오전 빗방울로 레미콘 타설이 미뤄졌다. 덕분에 전 소장은 피렌체 빌딩 배관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도진은 “전 소장이 좀 달리진 것 같아요. 늦게 출근한답니다.”라며 근황을 보고했다. 이에 “야, 전기, 설비업자 다 짤리고, 레미콘 업체도 사달이 나서, 너 같으면 신바람이 나겠냐? 그걸 티 내는 전 소장도 철이 없는 거지. 곧 포지셔닝하고 일 잘할 거야. 골조 끝나고 파티 한 번 하자.”라고 말했다. 도진이 “저는 너무 때려 도망칠까 걱정돼서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 하! 전 소장은 못 도망가. 가정적이잖아. 또 아내를 좋아하면서 무서워해! 아내가 술도 잘하고 성격도 괄괄해. 나 실망시켰단 이야기 들으면 남편 끌고 올 거야. 걱정 마!”
“헤헤, 그러면 다행이고요.”
몇 년째 입은 빤스는 달고 달아 망사처럼 엷어졌다. 현금을 5백만 원 정도 인출해 가을 셔츠도 몇 장 살 겸 금고에서 통장을 꺼냈다. 그러나 은행 마감 시간이 촉박하기에 그만두고 침대에 누웠다. 잠시 눈을 붙이고 드럼학원이나 다녀오기로 했다.
2017년 9월 12일 화요일, 맑음
“쏴-아--”
독거노인 냄새를 없애기 위해, 성공한 부자의 냄새를 만들기 위해 화장실도 청소하고, 몸뚱이도 이태리타월로 박박 씻은 후 보디로션을 바르고 페라리 향수까지 뿌렸다. 일상의 나태함이 떨어져 나갔다.
“부으으으응-”
하늘색 재킷에 코발트 블루 코사지를 붙이고 빨간 스포츠카 심장을 깨웠다. 구매한 지 4년을 지난 벤츠 SLK 로드스터 계기판에는 “정기 점검 17일이 지났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나타났다. 돈이 없어서 엔진 오일 교환이나 소모품 점검을 못 하고 있다.
주유소에서 8만 원 주유한 후 자동세차기로 들어갔다. 먼지에 가려 있던 이탈리안 레드가 되살아났다. 당연히 지붕도 열었다. 가을의 햇살이 실내로 가득 들어왔다.
타바트 선글라스로 햇살을 참아가며 달렸다. 봄 햇빛은 딸에게, 가을 햇빛은 며느리에게 받도록 한다는 말이 있다더니 오픈 스포츠카 위로 떨어지는 햇살은 뜨거웠다. 그러함에도 ‘우울증 예방을 위해 비타민 D를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꿋꿋하게 버텼으나,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마사지 팩으로 피부 열기를 식히는 것이었다.
인천에서 용인까지 이어진 고속도로는 ‘휴게소’가 없다. 어젯밤 마신 술 때문인지 속이 불편했고, 급기야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고속도로까지 정체였다. 그러니 ‘낡아빠진 팬티를 버리겠다’라며 9시에 은행에서 현금 5백만 원을 인출했으나 그것은 추후 문제였다. 벤츠 천연가죽 시트에 똥을 지릴 판이었다. 안전벨트를 느슨하게 하거나 괄약근에 힘을 주면서 용인 고속도로 요금소에 도착했다. 번개의 속도로 오른쪽에 있는 고속도로 관리공사 건물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시간 제약이 없는 삶은 배변의 자유를 가져왔기에 가끔 겪는 고통이었다. 배변 훈련이 필요했다.
“형님, 어디쯤 오셨어요? 우리 밥 먹으러 내려왔으니 오세요?”
용인 시내에 들어설 무렵 도진의 전화를 받았다. ‘대박식당’ 뒤편 공터에 주차하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황금색 반사 코팅 선글라스를 쓴 도진이 오른손을 들었다. 옆자리엔 하 과장, 맞은편엔 박혁수 이장, 전 소장이 앉아 있었다. 나도 식판 하나를 챙겨 들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레미콘 공급은, 원활하다 못해 몇 대의 레미콘이 줄지어 대기했다. 1천 평이 넘는 대지 위에 세워질 4개 동의 빌라 건축물 바닥 기초 콘크리트 타설이 시작된 것이다. 골조 오야지 임 씨가 펌프카와 연결된 호스를 직접 잡고 시멘트를 철근 사이로 쏴댔다.
나는 쌓아 올린 거푸집 위로 올라가 기록 사진을 찍었다. 가슴 저 밑에서 끓어오르는 벅찬 기운을 느낄 때도 이때였다. 지구 표면에 새로운 흔적이 생겨나는 순간이었고, 건축 공정의 절반을 지나고 있었다. 바닥 기초만 완성되면 기둥과 벽체를 세우며 위로 솟아 올라가기 때문이다. 돈 한 푼 없이 여기까지 왔고 천군만마 같은 대출이 일어나, 후공정도 문제없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었다. 욕심도 비우고 마음도 내려놓고 운명을 기다린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도진과 근처 신축 빌라들을 둘러보고 커피숍을 거쳐 현장으로 돌아왔다. 내가 하 과장에게 물었다.
“건축 현장 언제부터 했어?”
“스무 살 때부터 했는데 현장이 망해 다른 일도 하다 다시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렇군, 어쩐지 별로 있을 필요가 없는데 쓴다 싶었어?”
이에, “맞아요. 헤! 헤!”하고 웃더니 “네? 저 말씀이세요?”라고 되물었다. 옆에 있던 두 사람도 함께 웃었다.
현장 컨테이너 사무실 창문으로 보니 아래에 세워질 2개 동의 기초 콘크리트 타설이 끝나가고 있었다. 골조 인부들은 내일 타설할 나머지 2개 동의 폼 작업 및 철근 엮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현장소장 준열에게 “차 막히기 전에 갈 테니, 아, 저기 폼 쌓아 놓은 거 위험하니 아예 밀어서 넘어뜨려 놔.”라고 당부하고 빨간 스포츠카에 올랐다.
https://youtu.be/mQSgTc20VmQ?si=jQWgHbDKXe7epX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