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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Mar 29. 2024

아내의 자동차보험

[연재] 50. 이혼 26일 차

50. 이혼 26일 차, 아내의 자동차보험         


 

2014년 3월 26일 수요일 맑음      


  그가 강 교수를 만난 것은 10년 전이었다. 

  민사집행법과 경매 스터디 모임에서 만났는데, ‘샘내천보’라는 닉네임을 썼었다. 한자성어도 아니기에 “닉네임이 왜 샘내천보야?”라고 물었더니 샘내라는 마을에 있는 빌라를 두 채 낙찰받아놓고 팔리지 않아서 고통을 받고 있기에 ‘그렇게 지었다’라고 말했다.      


  생긴 것은 머슴 놈처럼 우락부락하지만 마음 씀씀이나 말소리는 여성스러웠고 특히 긍정적인 성격은 강산이 변할 시간에도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들은 창원에서 방산업체를 운영하는 L군과 더불어 부동산경매 판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는데, 승리하거나 유흥하거나 패배의 현장에도 늘 그랬다.      


  “형님, 오늘은 어디로 가셔?”     


  얼마 전 강 교수의 아버지는 위 절제 수술로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병문안을 가려는 차에 “땡땡이치고 형님 뵈러 갑니다.”라며 전화했는데, 아버지는 미야리에 터전을 잡고 청소부를 하며 아이들을 키워냈다.      

  그는 아내와의 이혼이며 근린빌딩 운영이며 사채업자들과의 전쟁을 말해줬고 그럴 때마다 강 교수는 폭소를 터트리며 거실 타일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기 직전이었다.      


  “형님, 오후에 어디 가셔?”

  “아니, 오늘은 계획이 없다.”     


  오후 늦게 방송대 스터디 외에는 일정이 없는 관계로 그리 대답했다. 그랬더니 강 교수가 가방을 열어 동그란 술병을 꺼냈다.      


  SUNTORY WHISKY 'HIBIKI'  17 Years Old     


  “17년산이면 맥주에 타 먹는 거다.”     


  냉장고를 열어 얼음을 꺼내 스트레이트로 한 잔씩 마셨다. 이 술만큼 되지는 않았지만 좋은 추억을 함께 한 사람과 술잔을 부딪치니 햇살조차 사랑스러워 보였다. 옥상 인조 잔디를 밟으며 걸을 땐 건너편 빌딩 원룸에 사는 그녀가 보였다. 금발의 외국인으로 나시 티를 입어 하얀 가슴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녀는 우리의 거시기 크기를 알고 있을 테니 쳐다봐야 쪽팔린다.”     


  눈길을 던진 강 교수에게 그가 일침 했는데, 점심때가 훌쩍 지났다.      


  아침은 삼양라면에 식은 밥 한 덩어리를 말아 먹었었다. 그가 초밥뷔페 ‘천국의 한 점’으로 앞장섰다. 늦은 점심시간이라 홀은 한산했다.      


  [무빙 디자인]이 지하실 공사 계약을 위해 도착했다. 그가 강 교수와 인사를 시켰다. 공사비는 2천5백만 원이다.  인터넷 뱅킹으로 2천만 원을 송금했다. 나머지 5백만 원은 공사가 끝나면 받기로 했다. 인테리어는 목수와 전기 기술자들이 와서 기초 목공작업 및 전기배선을 깔아놓았고 조명 스위치도 죄다 찾아 놓았다.  

   

  같은 시각, 베드로는 인천에 있었다. 두 사람은 아침 일찍 인천 설계사무소를 들러 설계도를 받아올 계획이었는데 술에 약한 전 소장이 빌딩으로 늦게 도착한 바람에 출발이 늦어졌다. 베드로로부터 걸려 온 전화는 “사장님, 올라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였다.     


  볼보 자동차 보험을 가입했다. 62만 원 정도 되었는데 사업자 직불카드로 결제했고 주행거리는 내일 안산지방법원으로 배당받으러 가는 길에 아파트에 들러서 사진을 찍을 생각이다. 아내가 자동차 운전 경력을 인정받으려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보험사로 전화해 ‘종피보험자 가입경력 인정 제도’를 받으라고 했다.      


  아내도 이제 자신의 이름으로 보험을 들어야 하므로 그렇게 해 주기로 했다. 긴급출동은 연 5회로 되어 있으며 긴급출동 전화번호도 기록해 두었다.      


  306호 ‘Y대 동문 방 선생’이라는 여자는 두 번째 편지를 편지함에 넣어두었다. ‘광고에는 토스트기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라는 첫 질문에서 파악했듯이 자폐적 성격으로 냉장고에 있던 달걀, 김, 먹다 만 와인, 머리끈, 화장지 등등 버린 쓰레기 목록을 나열하며 ‘계약서엔 3일 동안 보관 후 처리한다고 써있는데 이틀 만에 왔으니 돌려달라’라고 했다.      


  첫 편지보다 더 많은 목록이 적혀 있었다. 이에 라면을 먹던 그가 여러 번에 걸쳐 문자를 보냈는데, 자칭 ‘Y대 동문 방 선생’은 휴대폰도 정지된 상태였기에 편지로 자기의 주장을 적어 우편함에 넣었으나 문자 수신은 가능했다. 방에서 발견된 다수의 편지도 ‘Y대 동문 방dd 선생입니다. 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급하게 150만 원이 필요합니다’라는 식으로 법원의 벌금까지 구걸하는 내용이었다. 그런 행적을 알기에 그가 몇 번에 걸쳐 연속적으로 문자를 보냈다.      


  “상호 간 인간적 도덕과 규범이 법보다 우선이듯 계약서가 전부는 아닙니다. 방 청소비 5만 원이나 주세요. 그리고 당신의 주장은 믿을 수 없으니 편지는 그만 보내세요. 쓰레기 봉투값도 주시길.”

  “당신 논리라면 보관료도 주세요.”

  “3일 동안 보관이 썩은 음식물도 해당된다는 해석은 상당히 사회통념에 반하는 주장입니다. ”

  “당신 주장으로 해석하면 전자레인지에 아이를 넣고 구운 년이 전자레인지 사용설명서에 아이를 넣지 마라는 문구가 없다고 시비하는 꼴입니다.”

  “조언하건 데 세상은 당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고 오늘을 사세요. 오늘은 어제의 결과이니까요.”     


  그가 단문의 문자를 연속으로 보낸 이유는 잉여적인 편지질을 막을 심산이었다. 또한 청소비 따위를 운운한 것도 자신에게도 손실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는 것이기도 했다. 방 선생은 스스로 약속하거나 규정이 생기면 지키지만 규정이 없는 것은 자신이 옳다는 논리를 펴기 때문이다. 이게 약간 미국적인 법 논리이긴 하지만 그게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덜떨어지게 공부하고 돌았기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귀요미 딸의 휴대폰 요금이 7만6천 원이나 나왔다. 그가 “휴대폰 요금이 7만6천 원 나왔다. 해킹당했니?”문자를 보냈더니 “아.... 제가 이번에 카톡도 탈퇴하고 문자랑 통화하느라 좀 많이 쓴 거 같아요. 주의할게요.”라는 답장이 왔다.     


  스터디 시간이 다 되어갈 즈음 잠시 눈을 붙였다. 스터디는 6명이 참석했다. 성우가 꿈인 중년의 여학우가 발표했는데 활달한 성격만큼 시원시원했다. 뒤풀이는 1.2학년이 함께 했고 2차에 이어 3차 노래방까지 행진했다.      


  1학년 김ㅇㅇ이라는 학우는 “선배님 블로그가 방송대 입학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 정말 영광입니다.”라며 추켜세웠다. 녀석은 스물다섯의 청년으로 성우를 준비 중이었고 생업은 커피 바리스타였다.


  이들은 ‘열심히 영화를 제작하자’라고 의기투합했고 그의 시놉시스를 듣더니 “이거 영상제에 내놓기는 아까운데요.”라고 반응했는데 새벽 두 시 무렵이었다. 그러니 택시를 타고 빌딩으로 돌아왔다. "밤늦게라도 오시면 전화 주세요.”라고 말했던 베드로의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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