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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Mar 30. 2024

자카르타로 갈 거야

[연재] 51. 이혼 27일 차

51. 이혼 27일 차. 자카르타로 갈 거야          



2014년 3월 27일 목요일 맑음      


  8시가 조금 못 되어 일어났다. 

  어제 술을 적당히 마신 것이, 상쾌한 아침을 만들었다. 샤워하고 방의 쓰레기를 들고 내려갔다. 공동 주방엔 주먹만 한 밥이 남아 있기에 공기에 덜고 새롭게 쌀을 씻어 안쳤다. 


   한 소장이 차에서 장비를 꺼내기에 그가 붙잡고 물었다.     

  “한 소장. 기둥 두 개 있잖아? 거기 어떻게 할 거야?”

  “거기는 페인트칠할 겐데요. 멋지게 할 거예요. 뭐 하실 생각 있으세요?”

  “어, 벽돌 타일을 붙일 때 거기도 무너진 듯하게 벽돌을 붙이면 밋밋함이 덜할 것 같아서 말이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밥에 달걀 프라이를 하나 덮어 먹고 베드로를 만났다. 베드로가 “어제 제가 염(토지 명의자 겸 채무자)을 만났잖아요. 많이 싸웠는데요. 이번에 어디서 ‘일억을 당겨왔다’라며 그냥 바지 노릇을 하지 않으려고 하더라고요. (건축 분양 후) 배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임(시행사)하고도 싸웠어요.”라고 말했다.      


  “바지가 발톱을 드러냈군요?”
   “하-ㄱ, 사장님 말씀 잘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발톱을 드러냈다면 발목을 잘라야지요. 선무 부르세요. 바로 경매 기입등기 날려야죠. 이 사건은 소유자가 기대수익을 포기하고 호락호락 소유권을 넘겨주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원금은 손해 보더라도 경매를 넣어 내년 즈음 낙찰을 받는 것이 더 이득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원금 손실에 대해서는 사업 이득에서 공제가 될 것이고, 낙찰받으면 낙찰 잔금 대출이 많이 나오니 부담 없이 끌고 가며 공사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지 않더라도 채무자가 신용불량에 채무를 평생 지고 살아야 하니, 경매까지 가지 않고 소유권을 편하게 이전받을 수도 있고요. 그러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피드 한 경매 진행입니다.”     


 마이클의 말에 베드로가 약속어음 및 근저당설정 서류를 팩스로 보내기 위해 문방구로 향했다.   


 

  지하실은 오늘도 목공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팩스를 보내러 간 베드로도 돌아왔다. 그러니 마이클은 저간의 사태를 복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베드로에게 “오후에 약속 있습니까? 없으면 저와 안산지방법원에나 가시죠?”라고 말해 동행하도록 했다.      


  오늘의 의상 콘셉트는 영화 시사회였으므로 카라가 없는 셔츠와 봄 슈트였다. 안산으로 가는 길에 서초동 법무법인에 들러 빠진 근저당권 서류와 경매 진행비 5백만 원을 주려고 챙겼다.      


  “등기하고 접수하는데 만 6백만 원이 넘게 들어요.”     


  그가 5백만 원을 내밀자 사무장 선무가 하는 말이었다. 그가 “나머지는 일단 사무실 돈으로 넣어.”라고 말했지만 “사무실도 돈이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만큼 현금이 마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는 수 없이 “내일 접수하도록 준비해.”라고 말을 하고 안산으로 향하다 우면산 터널 앞에서 ‘지갑을 챙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 가장자리에 랭글러 루비콘을 정차한 후 지갑을 확인했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노트북 가방에 들어있던 지갑을 챙겨 오지 않은 것이었다.     


  “다시 돌아가시죠?”     


  조수석에 앉은 베드로의 말에 다시 빌딩으로 돌아와 지갑을 챙긴 후 안산으로 향했다. 법원 배당은 2시부터였으나 때문에 30분 늦게 도착했다. 법에 앞에서 배당표를 찾았으나 없기에 “2013 타경 2365 배당표가 없네요?”라고 말하자 경매계장이 배당표를 주었다.      


  배당표에는 2억 원이 조금 못 되게 배당받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출급지시서를 받을 때 보니 상대편 공유자도 나왔는데 금방이라도 산에 오를 것 같은 복장이었다.      


  “언니는 금화인가?”     


  신한은행에서 배당금을 찾으며 담당자의 이름이 ‘은화’이기에 그리 물었다. 그녀는 ‘그리 물어볼 줄 알았습니다’라며 재치 있게 넘겼고 ‘고객님, 이 돈은 신한은행 계좌로 넣으시죠?’라고 권유했다. 그가 “안돼. 자카르타로 갈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자카르타 가 보셨어요? 좋나요?”라고 되물었다.  

    

 “아니, 가보지 않았어. 그냥 이름이 좋아서.”   

  

  그렇게 대답하고 한마디 더 덧붙였는데 “그렇게 말하면 어느 날 그곳에 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거야”라는 말이었다.     


  2억 원에 달하는 배당금은 국민은행 계좌로 이체되었고 “밥이나 먹고 갑시다”라는 말에 베드로가 “설렁탕이나 드시죠?”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설렁탕으로 허기를 채우고 서울 방향으로 랭글러 루비콘 가속 페달을 밟았다.      


  “우르르르르으---”     



  빌딩에 도착한 후 경매비 잔액 105만 원을 송금하는데 사무장으로부터 “인천지방법원 2014 타경 34ㅇㅇ7호”라는 경매 진행 사건 문자가 도착했고 베드로에게도 전달했다.      


  “사장님, 그게 뭡니까?”


  베드로는 그가 전달한 사건번호를 모르고 있기에 “인천 효성동 토지 경매사 건 번호입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장인영.

  방송대 미디어영상학과 촬영을 지도한 촬영감독이다. 학생회 공ㅇㅇ 학우의 전화에 의하면 ‘감독님이 초대했으니 늦지 말고 오세요’라고 말했기에 카메라만 메고 갔다. 건대 [롯데시네마] 극장은 어린이 프로가 많았는지 아이들이 많았고 배우 팬클럽 회원들까지 가세해서 정신없이 시끄러웠다.     

 

  시사회 영화 [삼백프로]는 2011년에 제작했으나 개봉이 늦어져 오늘 시사회였다. 당시 촬영에 참여했던 스텝들의 임금이 체불되었는지 ‘임금체불하는 영화’라는 내용의 피켓을 든 시위자도 등장했다.     


  “체불임금은 법으로 하면 되는데, 개봉하는 잔칫날에 저러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의 의견과 “얼마나 그랬으면 이곳에서 이러겠어요? 끌어내는 저 광경을 보니 이 영화는 보고 싶지 않네요.”라는 공ㅇㅇ 학우의 의견이 충돌했다.      


  게다가, 촬영을 담당했던 장인영 감독은 초대권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로 “빈자리가 나오면 챙겨 주던지, 아니면 표를 사서 주겠다”라고 하며 미안해했다. 그러니, 그가 오늘 시사회에 온 것은 장 감독의 포스를 보고 싶은 것이었는데 이미 물 건너갔으며, 존재감 없는 영화 관계자로 전락했다.     


  영화를 공짜로 보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니기에 더 있을 이유는 없어서 “감독님, 나가서 자리 잡고 있을 테니 오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일행들과 [롯데시네마]를 나왔다. 지금 전국 20대 상권 중의 하나인 신천에 위치한 빌딩 건물 지하에 개인용 영화관을 만들고 있는 그가 시사회 상영장에서 빈자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 모양은 연출하고 싶지 않았다.      


  일행은 그와 공ㅇㅇ학우, 전 회장 김ㅇㅇ, 그리고 그를 ‘블로그에서 봤어요.’라는 50대 부잣집 사모님이 함께했다. 이 여인은 남편이 뭐라고 하자 아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열흘간 여행을 간 골치 아픈 여자였다. 그게 5년 전이라고 했다.      


  그들과 자정까지 자리해도 술을 마시지 않고 갔는데 오늘 참치 횟집에서는 소주를 서너 잔 마셨다. 게다가 전액 결제했는데 ‘십일조’의 일환이었다. 그는 오늘 법원 배당으로 얼추 5천만 원의 수익을 올렸으니 5백만 원은 유흥업소에 써도 될 일이었다.      


  그러나 인천 효성동 토지 경매와 개인적인 문제로 기분이 우울하기에 그만두었고 학우들과 밥이나 먹는 것으로 갈음했다.      


  “2차로 커피를 마시고 가요.”     


  공ㅇㅇ 학우가 잡았으나 생리하는 듯 재ㅇ이도 힘들어했고 그도 기분이 그다지이어서 뿌리치고 지하철을 이용해 신천으로 돌아왔다.      



  빌딩 우편함에는 또 “Y 동문 방ㅇㅇ 선생님”으로 시작하는 편지가 넣어져 있었다. 이번 편지에는 썩어 버린 물품의 가격이 적혀 있고, 대략 10만 원 정도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너의 똘기에 진다면 임대업을 그만둔다 ‘라며 휴대폰 문자로 ‘월세 50만 원인데 40만 원씩 두 달을 입금했으니 20만 원을 더 입금하고 청소비 3만, 보관료 4만 원을 입금하라’라는 내용의 문자를 4회 연속해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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