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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Apr 01. 2024

"살림하고 골프  친 것 밖에 없어!"

[연재] 52. 이혼 28일 차

52. 이혼 28일 차,


“살림하고 애들 키우고 골프 친 것밖에 없어!”    


      

2014년 3월 28일 금요일 맑음      


  개운하게 샤워하며 아침을 시작했다. 

  오늘의 일정은 자동차 주행거리를 사진 찍어 보험 담당자에게 보내는 것과 안양 빌딩 건축 공사 현장 순회였다.      


  아침 식사로 ‘선지해장국을 먹을까?’ 생각하다 집으로 향했다. 날씨는 미세먼지 농도가 심했으나 봄날이라 부르기에는 전혀 손색이 없었다. 랭글러 루비콘은 거친 배기음을 토하며 올림픽 도로에 올랐다.     



  “엄마 와 계셔.”     


  여자가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어깨 근육을 수술한 후 통원 치료를 위해 들른 것 같았다. 그가 인사하고 테이블에 올려진 세금 고지서를 확인했는데 여자의 가스총 면허세 고지서였다. 얼마 후 여자가 아침 식탁을 차렸다.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였고 웨이브를 준 것을 알게 된 때도 이때였다.      


  “나는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고 한 달에 서너 번 골프를 한 것밖에 없어!”     


  여자는 ‘나는 이혼당할 이유가 전혀 없다’라고 항변하고 있다. 여린 상춧잎 두 개를 교차시키고 참치를 올리고 된장을 찍어 쌈을 먹던 그가 말했다.     


  “한 2년쯤 지나면 알게 되겠지. 지금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까 말이야.”     


  여자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지 않고 있다. 그저 하루하루 의미 없이 소비하고 스마트폰으로 타인의 삶이나 콘텐츠를 소비하기에 정작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성찰할 시간이 없다.      


  그렇기에 여자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여자는 지금 ‘내가 이혼당했다’라는 분노와 배신감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차츰 원인이 자기 자신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볼 텐데 그때까지의 시간이 2년쯤 뒤라는 뜻이었다.     


  여자가 잘못한 것은, 어느 날부터 자신의 주장을 단 한 번도 굽히지 않은 것이다. 화나면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도 일어나 집으로 가 버렸고, 남편이 화를 내는 이유에 대해 “술만 마시면 싸워서 안 되겠어.”라고 말하거나, 대출의 압박에 빌딩 옥탑방에서 기거하는 남편을 향해 “이렇게 떨어져 사는 것도 좋은 것 같다”라거나, 화나서 집으로 가자고 해도 “네가 왜 당신 거야?”라며 맞섰다.      


  그때부터 그는 여자가 ‘인생을 함께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알았고 여자도 자신만의 삶을 준비했다. 그러나 막상 ‘돈줄’인 남자가 침착하고 냉정하게 ‘이혼’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준비해 나가자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다.      


  여자가 “어머니에게 말했어? 당분간 비밀로 했으면 했는데?”라고 물었다. 이에, 그가 “왜 비밀이어야 하지?”라고 되물었다.      


  “(딸) ㅇㅇ가 공부해야 하잖아?”

  “사람의 인생이 바뀌면 원하지 않아도 그 영향을 받는 게 인생이야. ㅇㅇ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나에게 ‘비밀로 하라’는 말을 하는 것이 잘못이야. 난 거짓말을 못 하므로 일부러 말하진 않겠지만 대화하면 당연히 말을 할 거야. 당신은 여기서도 체면을 생각하는군.”

  “체면이 아니지. 어떻게 그렇게 생각해?”

  “당신은 그래서 문제를 만들어.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 인생은 내 것이야. 그러니 이혼했으면 이혼했다고 말해도 되는 거라고. 나는 그럴 거니까?”     


  여자는 약간 언성을 높였다가 이내 그만두고 아파트 문제로 돌렸다.      


  “여기서 3억에 전세로 살게. ㅇㅇ 시험 끝날 때까지만 이라도. 나에게 줄 (남은 돈) 3억 원으로 그렇게 해줘!”     


  그는 여자가 이렇게 선택할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여자는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고 떠날 수 없다. 이 아파트가 자신에게 부여한 알량한 지위와 특혜를 포기하고 오피스텔 세입자로 추락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제까지 ‘당연하다는 듯이 누렸던 것’이 남편이라는 우산 아래였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그 우산은 너무도 크고 안전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우산이 걷히고 있다.   

  

  여자에게 3억 원 전세로 살도록 하는 것은 그에게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아이들에게 ‘이혼’의 충격을 주지 않아도 되고, 당장에 3억 원을 주지 않는다면 투자할 돈이 살아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투자판에서 3억 원은 5, 6억 원의 레버리지를 당기는 종잣돈이다.     


  벤츠 SLK 로드스터에 아파트 주차 태그를 붙이지 않고 버텼더니 ‘관리사무실에 신고하라’라는 안내장을 붙인다. 그가 ‘돈 몇 푼에 모양 빠진다’라며 자동차 제작증을 들고 관리사무소로 향했다.      


  담당자는 “차가 몇 대세요?”라고 물었고 “세 댑니다”라고 했더니 “다음 달부터 월 3만 원이 관리비에 추가됩니다.”라고 안내하며 주차 카드와 스티커를 내주었다.     



  빨간 벤츠 SLK 로드스터. 적토마로 이름을 붙였으나 사물에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 그의 성격 탓에 불리질 못한다. 안양까지 바람을 맞아 달려보겠다며 지붕을 열고 아파트를 나섰다. 계기판 온도계는 15도를 나타내는데 라이더 재킷과 군화를 신은 탓에 조금 더웠다.      


  점심시간 즈음에 안양 빌딩 건축 현장에 도착했다. 공사는 2층 지붕 위에 3층 벽체를 세우기 위한 거푸집 설치 공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건물 안쪽 그늘엔 작업 인부들이 잠시 낮잠을 청하고 있었고 한 남자만이 철근을 작은 철사로 조이고 있었다.     


  “오늘만 일하는 것 아니니 쉬시며 하세요.”     


  그가 인사를 건네자 남자가 “사장님 오셨습니까?”라며 작업을 중단하고 내려왔다. 철근 골조를 전 소장의 아버지가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는데 아버지로 추정되었기에 넘겨짚으며 “아버지가 공사를 한다고 해서 빨리 결제했습니다.”라고 말했더니 “영산포에서 공사를 했습니다. 나주시청 앞 토지가 30만 원에 분양되었을 때부터 7년 동안 지었습니다. 이제는 토짓값이 130만 원이 되었지요.”라고 말했다.     


  “오호, 다 팔리던가요?”

  “그럼요. 다 팔았지요.”

  “그때 한 필지는 놔뒀으면 돈 되었을 텐데 아쉽네요.”     


  그의 말에 검게 그을린 얼굴근육이 올라가며 “우리는 집 짓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재주는 없어요”라고 대답하며 웃었다.     


  “한 바퀴 둘러보고 가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그가 계단을 이용해 2층으로 올라섰다. 엘리베이터 공간과 창문틀, 배선 호스, 철근들이 보이고 그 뒤로 롯데백화점이 보였다.      


  ‘이제 좀 건물답게 보인다~’     


  메고 가 간 삼각대를 꺼내 카메라 캐논 5D Mark 3을 걸고 사진 찍고 의왕시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은 성남 어디를 찍었다. 장 부장이 빌라를 분양하고 있는 곳은 백운호수 근처로 안양과 가까운 곳이었는데 40km 가까이 되어 이상했지만, 자동차 지붕도 열었겠다, 날씨도 좋겠다 문제 될 것이 없어서 그대로 달리기로 했다.      



  역시 내비게이션이 잘못 안내했기에 판교를 찍고 다시 돌아왔다. 그러다 또 길을 잘못 들어 백운호수를 두 번이나 돌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에이, 너무 행복에 겨워서 그래요. 골프 하면 백 프로 바람나요.”     

  ‘늬 형수와 이혼했다’라는 말에 장 부장이 뱉은 말이다. 골프를 좋아하는 장 부장도 “하루 종일 놀고 술 한잔하다 보면 백프롭니다. 인터넷으로 만나면 안 돼요.”라고 덧붙이며 “일요일 막내 결혼식에 오실 거죠?”라고 물었다. 그가 운전석 문을 열고 올라탈 무렵이었다. “응, 일찍 가서 대화나 하자”라고 말하며 이그니션 키를 돌렸다.     


  “부으으응-”     



  적토마는 남태령을 넘어 서울로 진입했다.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나, 남태령 넘어가고 있어.”라고 말했는데, 여자가 “당신이 갈 때 엄마 집까지 모셔다 드리면 안 돼? 기름값이라도 아끼게”라고 전화했기에 가는 길이다.      


  장모님과 아파트를 나서다 하교하는 딸을 만났다. 그가 팔을 벌려 안는 시늉을 했다.     


  “어머머머, 이게 뭐야. 바지는 뭐고 모자는 뭐야. 으악, 미치겠네. 저리 가~”     


  그의 패션을 보고 녀석이 능청을 떨었다.      


  “자주 집에 들어가고 그러소. 신천에 자꾸 있으면 안 돼.”     


  장모님이 뭔 낌새를 눈치챘는지 말을 꺼냈다.     


  “제가 신천에 있는 이유는 빚에 마음이 불편해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 있으면 그나마 편하거든요. 또 골프 친다 어쩐다 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 그런 것도 있어요.”     


  그러자 장모님이 말했다.     


  “운동 쪼까 하는 것이 어떠탄가. 자네가 이해해야제~”

  “운동도 운동 나름입니다. 뭔 남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운동하고 다닙니까? 힘들게 일하고 집에 가면 술 마시러 나가고 없거나 자정이 넘어 술에 취해 들어오고, 새벽에 골프장으로 가는 게 맘이 좋을 리 없지요. 그리고 골프장 가보면 내 말이 이해될 것입니다. 그곳은 별천지입니다. 누구든지 바람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에이, 머시 그렇단가. 그리고 우리 딸들은 그런 일 못하네. 자네 큰 처형인 ㅇㅇ 엄마도 골프 배워 식구들과 치자고 하지 않은가?”

  “식구들과 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외간 남자들과 치고 다녀서 그렇지요. 그 놈들이 나를 얼마나 병신 취급하겠습니까?”     


  대화는 껄끄럽게 진행되었다. 다시 그의 가슴이 아려왔다.           



  지하실 파티룸 인테리어도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어 갔는데 목공작업으로 골격을 만들고 석고 보드로 마감해 반듯한 외관을 만들었다. 1층 식당 주방에서 새는 누수도 잡혔다.          


      

  경매계의 보정명령 때문에 법무사로부터 원본 서류를 퀵으로 받은 후 확인했다. 이 서류는 경매계장 출신의 법무사에게 ‘보정서’를 작성케 할 생각으로 사본을 만들기로 하고 일단 밥을 먹기로 했다. ‘나 살던 고향’의 매운 갈비찜이 당겼다.    

  

  “매운 갈비찜과 막걸리 하나 주세요.”     


  이때였다. 베드로가 들어와서 “제가 복사해 오겠습니다”라며 서류를 챙겨갔다. 식사에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다시 베드로를 만나 배스킨라빈스로 자리를 옮겼다.      


  “인천 것은 경매를 정말 잘하신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는 뭔가 움직임이 있겠지요. 아, 그리고 아내가 전세로 3억에 살겠다고 하니 투자금이 많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그럼, 구도가 어찌 되는 겁니까?”

  “구도까지 있나요? 그저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거지요.”     


  베드로와 헤어져 골목을 걸어오다 최민식을 닮은 조개구이집 사장과 대화 중인 N부동산 박 실장을 만났다. 우람한 체구의 박 실장이 장난스럽게 배꼽 인사를 하며 조개구이 사장에게 “여기 오시네. 사장님 열여덟 개?”라고 말하며 손가락을 꼽았다.     


  이에, 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뭔, 소리여?”라고 되묻자 “아니, 안양 거요.”라고 대답했다.    

 

  “아하! 지금 3층 올라갔어. 열여덟 개는 안되고 스물두 개야. 원가가 열여섯 갠데 말도 안 되지.”

  “그럼 스무 개. 여기 사장님이 관심 있어하세요.”     

  그러는 사이 사모님도 합세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그러지. 깍지 않는 조건으로 스무 개.”

  “방이 열여덟겐가요?”

  “서른 개여.”     


  그가 큰 소리로 말했고 안양역과의 거리도 ‘3백 m’를 ‘75m’로 정정해 주었다. 그리고는 “여기(신천 고시텔)는 이틀마다 50만 원씩 일당(월세)을 받지만, 안양은 매일 40만 원씩 일당을 받으니 괜찮은 사업이지요.”라고 확실하게 뽐뿌 하고 빌딩으로 돌아왔더니 미저리 방 선생이 또 편지를 꽂아 놓았다. 문자를 하려다 ‘이런 종자에겐 무관심이 답’이라며 그만두었다. 아지트로 올라와 샤워하고 잠을 청했다.   


        

  “사장님. 문화관광부에 글을 써내야 하는데 글 잘 쓰는 사람 없을까요? 돈은 드려요.”     


   대한수영연맹 이사 김ㅇㅇ씨가 전화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뭔 고발을 하려고 하는지 “엄마들이 글을 썼는데 이걸 다듬을 사람이 필요합니다”라는 것이 요지였다. 그러니 고소장도 아니고, 소장도 아니니 사법서사 사무소조차 갈 일도 아니었다.      


  “글이야 내가 한 글 쓰지.”

  “그럼 사장님이 써 주세요.”

  “안돼.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 다만 한글 파일로 만들어 메일로 보내주면 편집은 해 줄게.”   

       


 잠을 깬 그가 컴퓨터를 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공부는 일주일 내내 하나도 하지 않았다. 여자가 슬픈 음성으로 전화할 때도 이때였다.     


  “음, 어디야?”     


  벽 한 시였다. 그는 지극히 평온한 말투로 응대했는데, 침묵 반 대화 반의 짧은 대화였다. 그리고 다시 전화가 왔다.     


  “내일 (아들) ㅇㅇ가 면회를 오라고 하는데. 부모가 오면 하루 외출은 나갈 수 있나 봐?”     


  그가 말했다.      


  “당신이 가서 이리 데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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