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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Apr 02. 2024

그리움은 강물처럼

[연재] 53. 이혼 29일 차

53. 이혼 29일 차,        


   

그리움은 강물처럼     


2014년 3월 29일 맑음       


  그의 하루는 샤워와 함께 시작된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물줄기에 흐물거리는 몸뚱이를 씻으며 ‘아침은 어디서 먹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이 몇 시에 와?”라고 물었다. “지금 만나서 집으로 가는 중이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그러면 회나 사 갈까?”라고 물었더니, 전화기 너머에서 ‘아빠가 회 사 온다고 하는데 어때?’라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10시가 조금 못 되어 이마트 양재점에 도착했다. 100원 동전을 넣고 카트를 하나 꺼내 참치, 광어, 연어, 호주산 살치살까지 닥치는 대로 실었다. 방송대 총무 공ㅇㅇ 학우의 전화를 받은 때도 이때였다. “주말 어떻게 보내십니까?”라고 묻기에 “주말? 잘 보내고 있지요”라고 대답하자 코맹맹이 소리로 “그렇구나. 다들 잘 보내는구나”라고 연기 들어가며 “장ㅇㅇ 감독이 연락해 왔는데요. 영화 시사회 관련 임금체불 사진이 떴나 봐요. 그래서 알려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 부분은 내려 달라고 하네요”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포스팅할 때 좀 찜찜했었다. 사실을 보도하는 기자도 아니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성공하도록 블로그를 하려고 하기에 스텝의 임금체불 이야기는 민감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물론 글의 전문에는 ‘생각해 보자’라는 의미였지만 말이다.    

  

  “그래요? 그렇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그런데 지금은 안되고 1시간 이내에 삭제한다고 해 주세요.”     


  그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졌다. 사실 이런 사건이 블로그에 대한 열정을 떨어뜨리게 한다. 영향력이 커지다 보니 이해관계인들까지 생각하는 ‘자기 검열’의 단계로 진입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마트 고객센터에도 개인용 컴퓨터가 없기에 집으로 오자마자 게임하고 있는 아들을 밀어내고 글을 수정했다.      



  “우와~ 회를 정말 많이 사 왔네?”


  딸과 여자가 감격하는 소리가 들릴 때도 이때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그만 치 17만 원을 쐈다. 이 금액엔 ‘50% 할인을 해서 12,500원입니다. 맛은 달지 않아요’라는 여직원의 뽐뿌에 화이트 와인 두 병을 집었고 레드 와인도 하나 포함된 금액이다.      


  아들은 오후 4시경 부대로 복귀한다고 하니 ‘외출’이었는데, 지난 휴가 후 줄다리기 등 승리로 3박 4일의 포상 휴가를 더 받았기에 여러 계획을 잡아놨는데, 서치라이트 교육으로 취소되었기에 보상심리가 작동해서 “엄마가 와서 면회를 신청하면 외출을 허가해 주니 오세요”라고 구조요청을 한 것이었다.      


  그가 최고로 추켜세우는 이마트 회에 프랑스 산 화이트 와인을 마시니 피곤이 밀려왔다. 여자가 먼저 아들의 방에 가서 잠을 청했고 그가 소파에 누웠다가 슬그머니 아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등 뒤로 가서 팔을 목덜미 사이로 집어넣고 누웠다. 여자가 몸을 돌려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두 사람은 보드라우면서 격하게 껴안았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의 성감대를 더듬기 시작했고 남자의 벨트가 벗겨졌다. 여자는 남자의 성기를 보드랍게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세상과 이별의 아픈 상처가 봄 눈 녹듯이 녹아내리며 황홀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밀린 숙제를 하듯, 사지를 건너온 사람들처럼 격렬하게 몸뚱이를 부닥쳤다.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아들이 복귀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모두 와인을 마신 탓에 택시를 타고 아들을 바래다주기로 했다. 그래서 그도 “나도 같이 가자”라고 말하며 따라나섰다. 아들이 “부대는 4시 30분까지야~”라고 언급했는데, 택시에 탑승 한때는 4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그러니 다급한 사람은 아들이었다. 여자 또한 택시 기사에게 주행에 대해 훈수하기 시작했다. 기사가 “시청 앞을 지나야 하는데 시위대가 있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민주노총의 춘투가 시작된 모양이었는데, ‘4시에 시청에서 여의도로 행진한다’라는 방송이 나왔다. 듣고 있던 그가 “서울에서는 지하철이 제일인데, 한 시간 여유를 두고 출발한 당신도 문제다. 이제 어쩔 수 없으니 운전자 마음대로 가시라고 조용히 하자”라고 말했다.     


  택시 기사는 사당역으로 가지 않고 서울대 쪽으로 돌아 용산으로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 한강을 건넜고, 다시 여자가 참견해 강변북로를 탔는데, 기사의 기지인지, 여자의 참견인지는 알 수 없으나 4시 35분에 도착했다. 그리고 어쩌면 부대 복귀시간이 다섯 시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병사들이 늦을까 봐 4시 30분에 귀대하라고 했을 수도 있었는데, 아들 뒤로 귀대하는 병사 또한 위병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부대는 학교처럼 깨끗했고 위병소 너머로 보이는 인왕산의 바위는 한 폭의 동양화처럼 보였다. 아들이 “아빠, 나는 날마다 봐!”라는 말을 남기고 동료와 함께 부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자가 만발한 개나리를 보며 “우와~ 개나리가 활짝 피었네”라고 말할 때도 이때였는데, 벚꽃도 피고 있었다. 부대 언덕을 올라오는 택시를 잡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습기를 머금었던 공기가 빗방울이 되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파트로 돌아오자 여자는 샤워 후 내의를 입으려는 순간이었다. 그가 허리를 감싸고 침대로 당겼다. 그렇게 그들은 또 격렬한 섹스를 하기 시작했다.      


  “으- 흐으-어, 흐-으-윽.-”     


  그의 몸이 밀고 올라갈 때마다 여자는 신음을 토해냈는데 결혼생활의 신음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정으로 느끼며 신음을 토해냈다. 아마, 늘 당하는 새벽 섹스가 아닌 오랜 굶주림 속에 찾아온 귀한 섹스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모든 것이 흔하면 귀한 줄 모르듯.      


  여자는 격렬한 리듬 속에서 신음과 눈물을 흘리며 “날마다 와~”라고 말했다.     


  “정말? 자주 오도록 할게.”

  “나, 자위했단 말이야. 부끄럽더라.”

  “난 날마다 했다. 뭐 그런 게 부끄럽냐.”     


  이들은 부부관계는 청산했으면서도 연인관계는 이어갈 모양이었다.     



   남자가 잠에서 깨어 시간을 물었다. 여자가 “여섯 시야!”라고 대답했고 “출근해야겠다~”라고 말하자 “아침은 먹고 가!”라고 대답했다.      


  “아침? 지금이 아침 여섯 시라고?”

  “그래. 당신 열세 시간 잤어!”     


  그동안의 잠은 잠이 아니었다. 쉬는 것도, 쉬는 것이 아니었다. 안식처를 찾지 못한 육체와 정신이 힘들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샤워하고 늦은 아침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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