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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Apr 05. 2024

"이혼하지 않고 지금처럼 살지?"

[연재] 54. 이혼 30일 차

54. 이혼 30일 차,     


      

“이혼하지 않고 지금처럼 살지?”        

  

2014년 3월 30일 일요일 맑음      


  두 사람은 아침 식사하고 커피를 마셨다.

  여자가 “기업은행에 전화해서 5억을 예금하면 월 얼마를 주냐고 물었더니 80만 원 준다고 하더라”라고 말할 때도 이때였다. 이에 그가 “1억 벌기는 어렵지만 10억 쓰는 것은 쉽다!”라고 말하며 “그러니 그동안 남편의 우산이 얼마나 크고 안전한지 이제는 알겠지?”라고 덧붙이자 “그것만 생각해? 아내 덕분에 편안하게 사업한 것은 기억 안 해?”라고 반박했다.     


  그는 (재테크 카페) 막내의 결혼식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으로 ‘바로 예식장으로 갈까?’라며 어제 입었던 복장을 기억했다. 청바지와 자주색 남방, 봄 점퍼였기에 옷을 바꿔 입고 가기로 했다.    

 

  “갔다 올게!”     


  그가 ‘돌아온다’라는 말을 남기고 빨간 벤츠 SLK 로드스터의 지붕을 열고 올림픽 도로를 달려 잠실 빌딩에 도착했다. 옷을 고르는 사이에 창원에서 사업을 하는 임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못 받은 전화였기에 “어이, 임 회장! 어디야?”라고 물었더니 “창원이에요”라고 대답하며 “형, 그냥 이혼하지 않고 지금처럼 살지 그래?”라고 말했다.     


  “미쳤냐. 나도 여배우 하고 지중해로 여행도 다녀야지. 뭐 하러 고생만 하고 놀지도 못하냐. 난 그렇게는 못 하지.”

  “형, 여자가 있는 것은 아니지?”

  “여자가 있다면 여자가 있다고 말하지. 난 거짓말을 잘 못 하잖아.”

  “맞아, 형은 그랬어. 그러니 어쩌면 이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 내가 한 번 올라갈게.”

  “올라오더라도 한 달 후쯤 와라. 룸살롱(빌딩 지하 놀이터를 그렇게 말함)을 작업하고 있으니까.”     


  전화를 끊고 자주색 나팔바지와 옅은 하늘색 셔츠, 푸른 스트라이프 무늬의 여름 재킷을 입고 예식장으로 향했다.      



  예식은 ‘펜트하우스’라고 적힌 5층에서 있었다. 신랑 측에 봉투 하나를 건네고 식권을 받은 다음 돌아서려니 신랑인 ‘막내’가 어깨를 감싸면서 “오셨어요.”라고 인사했다. 고운 화장이 잘 먹은 신랑의 얼굴이다.      

  “역시 화장하니 보기 좋구먼~”     


  막.내.

  닉네임이 막내인 ㅇㅇ는 총명했다. 스물다섯쯤에 그를 찾아왔는데 그때 이미 부동산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관련 서적을 100여 권이나 읽었다. 그러니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아들었다.     

 

  또,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무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택한 것은 부동산 경매였고 ‘소년’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놈의 시다바리로 길을 들어섰다. 그러다 결국 ‘소년’이 인터넷 회원들을 사기하는 행위를 목도하고 경매계의 신사로 불리는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당시 수원시 원천동 삼성전기 앞 4층 상가를 낙찰받아 ‘호프광장’이라는 상호로 호프집을 막 개업하고 놀고 있을 때였다.     


  “월급은 없다. 배우려면 배워봐라.”     


  그러함에도 막내는 시간 투자를 할 줄 아는 놈이었다. 호프집은 이들의 주력업종이 아니었기에 경매를 배우고자 함께했고, 그렇게 반년이 흘러 호프집을 청산하던 마지막 날 교통사고를 낸다.     


  “오늘은 왠지 술을 마시고 싶지 않구나.”


  6개월 동안 호프집을 운영했으나 눈에 띄는 성장을 하지 못해 문을 닫는 마지막 날 직원들과 파티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날은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기에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날이 날 인지라 임 부장이 강권했고, 결국 새벽까지 마셔댔다.     


  그러니 그의 자동차 핸들은 술을 마시지 못하는 막내가 잡았다. 하지만 졸음만은 어찌할 수 없었는지 예술의 전당 앞에서 신호대기 중인 흰색 베르나 승용차를 추돌했다. 그 충격으로 에어백이 터졌고 잠에서 깬 그도 한동안 어떤 사연인지 생각해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대방이 그의 차를 추돌한 줄 알았지, 막내가 사고를 낸 가해자는 생각은 전혀 하질 못했다. 그렇게 새벽길, 두 차량의 탑승자들이 내렸는데, 앞차에서는 젊은 남자 둘이 내렸다. 그가 늘 가지고 다니던 카메라로 사고 현장 사진을 찍고 “서초경찰서로 갑시다.”라며 향했다.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009년에 쓴 [부동산 경매비법]에서 언급된다.     

 

  막내는 그 사건 뒤로 재개발 투자 카페 활동하며 중개사무소를 개업했다. 그리고 얼마 후 휴대폰 매장 네 개를 연속적으로 운영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여자친구와 1년 동안 종로의 1등 업체에 위장 취업해 노하우를 복사해 내는 노력도 포함이었다. 그렇게 전국 2위를 갈 정도로 잘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인삼 액 판매사업을 벌였다. ‘ㅇㅇㅇ’이라는 상호로 ‘농협을 따라잡겠다’라는 포부로 달리고 있다. 이 막내가 얼마 전 은색 BMW 525를 타고 그의 빌딩에 방문해 청첩장을 주었었다.      



  결혼식장엔 아는 얼굴이 한 명도 없었다. 혹여 볼까 하던 아우들을 볼 수 없었고 장 부장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엊그제 만날 때는 “형님 가시죠?”라며 확인까지 했는데 말이다. 지금 ‘신랑’의 동업자만이 있었는데,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물론 그도 다가가지 않았다. 기록을 위해 몇 컷의 사진을 찍고 피로연장으로 내려갔다.     


  한 접시의 음식을 앞에 놓고 생각에 잠겼다. 그들도 그라운드가 바뀌었고 그도 역시 바뀐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들의 주변엔 과거의 패거리들이 아니라 기업운영과 관련된 패거리들이 있듯이, 그도 과거의 이야기는 추억의 책장에 담아두고 새로운 패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독고다이.’     


  그는 늘 그랬다. 그러나 그는 안다. ‘독고다이’의 한계를. 그래서 ‘패거리와 문화를 만들겠다’라고 생각하며 1층 주차장으로 향했다.      


  “부아아악--”     


  빨간 스포츠카가 도로 지면을 말이 제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올림픽 경기장을 지나며 그는 애마의 핸들과 제2 롯데월드 빌딩을 하나의 컷에 담았다. 그의 앞길을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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