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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Apr 17. 2024

여자는 섹스로 남자와 거래하지

[연재] 59. 이혼 35일 차

59. 이혼 35일 차,           



여자는 섹스로 남자와 거래하지     


2014년 4월 4일 금요일 맑음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시각이었다.

  그가 공부하는 딸을 위해 호주산 소고기 부챗살을 사기 위해 이마트로 향했다. 마침 ‘ 광어회 할인행사’도 진행하기에 두 판을 집으며 ‘여자가 집에 없을지도 모르기에 너무 많이 사면 안 된다’라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굵직한 음성의 딸이 전화를 받았다. 얼굴은 완전 여자아이인데 목소리가 남자아이로 오해받는 저음이다. ‘여자가 외출했다’라는 이야기에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혜나 언니랑 주꾸미 먹고 있어”라고 대답했다. 광어회 두 판과 와인을 집었다.      



  여자가 먼저 집에 들어와 있었다. 그가 핫한 디자인의 LED 스탠드를 딸 방으로 가져갔다. 방 안은 언제나 그렇듯이 벗어던진 옷과 물품들로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식탁에 앉았다.      


   “혜나 언니 남편한테 여자가 있나 봐. 그래서 울고불고 난리 났어.”     


  혜나 언니라는 여자의 남편은 수년째 베트남에서 근무하고 있다. 몇 해 전에는 큰 수술까지 받았었는데, 회복기에 그가 한강에서 자신의 모터보트에 부부를 태운 적이 있다. 듣고 있던 그가 말했다.     

 

  “먼 타국에서 남자가 수년 동안 혼자 살 수는 없지. 여자도 그렇다잖아? 필리핀에 간 기러기 엄마들 현지 남자들하고 바람나 논다는데 말이야. 그러게, 걱정되면 자기가 그곳에 가면 되지.”

  “아이들 때문에 갈 수 없잖아.”

  “아들 다 커서 군대 가고 그랬다며. 자기도 이곳이 편해서 그런 걸.”

  “남편도, 오라고 하지 않는데, 간다는 것도 웃기잖아.”     


  그는 그들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별로 놀라지 않았다. 현지 부인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도 인정했고 ‘아이도 낳았을까 봐.’라는 말에는 “배 안 아프고 아들 하나 더 생기면 좋은 거지.”라고 말하여 여자를 빡치게 했다.      



  여자들이 골프나 치러 다니며 한량 노릇 하며 놀면서, 남편들에게 그 여자들을 ‘바라만 보며 일만 하라’라고 할 수는 없다. 남자들도 자신의 노력만큼 인생의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의 남자들은 그런 점에서 매우 불행하다.     

 

  그에 반해 외국 남자들은 여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다. 몇 년 전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로 이탈리아 요리사와 바람난 여자의 예를 보자. 한국인 남편과 이혼하고, 이탈리아 남자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한국 남자를 간통의 제물로 만들었던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그리고 얼마 전 “딸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어 다시 활동하려고 한다”라며 눈물을 흘리며 방송 출연했다가 아주 떡이 되도록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그녀는 왜 방송에 출연하려고 했을까? 그것은 ‘돈’이다. 이탈리아 남자는 그녀의 소비욕만큼 돈을 주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또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녀는 다시 고급 창녀로 돌아오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거래다. 남자들은 여자와 ‘섹스’를 거래한다. 이쁘고 스펙이 좋으면 비싸게. 못생기고 후지면 싸게.      


  혜나 언니나 그녀도 남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랐거나, 힘들게 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노력하고 발전하는 남자들에게 ‘결혼’이라는 사슬은 여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강고한 것이 못 된다. ‘사슬’은 가난한 수컷에게만 잔혹하다.     



  남자가 일어나 칠레산 화이트 와인의 코르크를 뽑았다. 그렇게 적당하게 술에 취한 두 사람은 폭풍우 같은 섹스를 했는데, 시작은 여자가 그의 성기를 빨아대는 것으로부터였다. 오랄! 여자가 가끔 이벤트로 했던 애무였는데, 요즘은 거의 매번 그렇게 한다. 오늘도 그랬다!    

 

  평등했다고 느꼈던 부부관계가 주종관계로 바뀐 것이다. 약자는 강자에게 애무, 성적인 신호를 보내며 강자의 공격성을 늦춘다. 여자도 “내가 왜 당신 것이야?”라며 반발했던 그때의 여자가 아니다. 그땐 자신이 강자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그러나 언제부터 자신의 처지를 자각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 마리의 늙어가는 암컷에 불과했다.      


  그걸 몰랐었다. 그러다가 ‘이혼’을 앞두고 집을 구하러 다닐 때, 혼자서 영화를 볼 때 등 수시로 찾아드는 가슴 아픔에서 자신의 교만함을 보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엄마도 알았고 큰언니도 알았는데, 남자가 어떻게 행동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변함없는 육체적 행위를 하지만 “사랑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교성과 섞어 말했다.     


  “사랑해!”     


  사랑, 남자도 ‘사랑해’라고 답을 했다. 그러나 그 단어는 마른 장작개비처럼 건조했다. 사랑은 그렇게 오고 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남자는 영원히 그 누구를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6월 3일 날, 1억 준다. 3억은 전세금이니까 빼고~”

  “왜 7억이야? 내 기억엔 8억인데.”     


  여자는 재산 분할금으로 10억을 채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에게 여자는 3억 원의 돈을 빌려주었는데 그 돈은 ‘친구의 돈’이라고 했다. 하지만 2억은 그가 벌어다 준 돈을 저축하며, 투자해 줘서 만든 돈인 것을 안다. 그 돈의 투자이익 덕분에 여유롭게 자신에게 소비했었다. 그래서 그 돈 2억에 8억을 더하면 ‘10억 챙긴다’라고 개념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혼협의서에’는 7억 원이다.      

  며칠 전엔 “아들 몫으로 든 적금 3천만 원이 만기 되어 예금을 알아봤어.”라는 말도 했었다. 월 120만 원씩 납입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즉. 그가 미치도록 돈 때문에 힘들어할 때에도 여자의 통장 잔고는 불어난 것이다.          



  연두색 냄비에 물 400cc를 계량해 붓고 가스레인지 핸들을 눌러 왼쪽으로 돌렸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불꽃이 올라온다. 물이 끓을 사이에 3층 고시텔 공동주방으로 내려가 밥을 한 공기 펐다. 마지막 밥이었기에 쌀을 씻어 밥을 지어놓았다. 물이 끓자 동결건조 육개장을 넣었고 달걀도 하나 풀었다. 그렇게 아침 식사하고 외출을 준비했다.     


  오늘의 외출은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 8계에 보정서를 제출하기 위함이다. 방송대 독후감 제출을 위해 읽어야 할 도서 ‘털 없는 원숭이’도 흰 서류 봉투 안에 넣었다. 그런 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전 사장, 어디냐?”라고 물었다.      


  “네 형님. 저 수원법원 서류 접수하고 서울 가는 길입니다.”

  “그래? 내가 중앙지원에 왔다가 얼굴이나 보러 가려고.”     


  경매 브로커 생활하는 아우를 만나볼까 하고 전화했다. 서류를 접수하고 만나면 될 듯했는데, 얼마 전까지 컨설팅 사무실을 내서 열심히 했으나 망했고, 다시 변호사 사무실로 들어가 일하고 있다.     


 

  교대역 4번 출구 쪽 6층의 변호사 사무실엔 텔레마케팅 사무실처럼 작은 칸막이에 책상 하나씩 들어가 있다. 나이 든 여직원이 타 가져다준 커피를 받았다.    

  

  “형님, 이 물건 보세요. 손님을 못 맞췄는데 들어가시죠?”     


  아우가 지지옥션을 로그인하더니 경매 물건을 보여줬다. 3층 단독주택 골조가 올라간 상태에서 대지만 경매로 나왔고 감정가격의 49%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또 다른 경매 물건은 안성의 식당 자리로 인터체인지 근처여서 ‘묻어두어도 좋을 곳’이었다. 가격도 2억 미만의 소액이어서 적당했다.      


  “그래, 둘 다 좋다. 들어가자. 수고비는 주마!”     


  그는 두 물건 모두 입찰을 결심했는데, 요즘 들어 경매 물건은 찾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컨설팅 업자인 전 사장은 늘 물건을 찾아야 하기에 좋은 물건이 보이는 것이고 그 물건은 수많은 경험을 가진 그의 눈으로 다시 검증되고 있었다.      


  “동초, 어디야?”     


  대화를 마친 그가 전화로 또 다른 한 남자를 불렀다. 그 남자가 “또 어제 술에 떡이 되었고, 이제 출근하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40여 분이 지나 감색 양복을 차려입은 그와 만날 수 있었다.   


   

  세 사람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밥은 해 주냐?”     


  동초는 얼마 전까지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했었다. 자녀는 딸만 셋인데 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고 ‘아이들 때문에 산다’라며 이혼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더니 “밥은 무슨. 우리 집에 밥솥이 두 개여요.”라고 말했다.     


  “진짜?”

  “내 밥솥은 한 번 하면 일주일 간다니까요.”

  “푸하하하~. 너 그러지 말고 내 고시원으로 와라. 보증금은 받지 않을 테니.” 

    

  고개를 흔들며 아내의 악행을 말하는 동초의 말에 두 사내가 배를 잡고 뒤집힐 듯 웃었는데, 다. 전 사장도 이혼남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 남자들 모두 하자가 있다.      


  “경매나 투자하는 남자들은 원만한 결혼생활이 힘들어. 여자가 보살이지 않는 한. 그러니 이혼하는 거야.”     


  그가 독백처럼 말을 뱉으며 밥값을 계산했다.           



  빌딩 지하실은 벽면과 천장을 검은색 페인트로 칠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며칠간의 목공사로 계단에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기에 청소하기로 했다. 카 샴푸를 풀어 걸레질했고 난간도 유리 세정제를 뿌려가며 닦아냈다.      


  청소를 마치니 뿌듯함이 밀려왔고 달린 김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빨간색 벤츠 로드스터도 세차했다. 또 택배로 도착한 형광등 안정기를 불량 제품과 교체했으며, 빨래를 널었고 쌈빡한 LED 스탠드까지 설치까지 했으니 면학 분위기를 위한 조건은 완벽하게 조성되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공부로 이어지지 않았고 시간만 보냈다. 모르는 전화로 메일 알림 문자가 올 때도 이때였다. 메일을 열었더니 사진 두 장이 두 번에 걸쳐왔다. 첫 장은 그가 제주 한라산 소주를 들고 찍은 사진이었다.   

   

  ‘어디서 찍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두 번째 사진은 남자 셋에 여자 한 명이 찍힌 사진이었다. 그제야 기억해 냈다. 치정에 얽혀 투자했던, 4년 동안 고생했던 주인공 여자와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남자들이었다. 사진을 찍은 그날은, 우연히도 기가 막히게 만났었다. 그때 여자의 딸아이에게 용돈을 줬었는데 그 아이가 문자를 보낸 것이었다. 주인공 신 모 여인 사건을 계기로 그는 여자의 환심을 사는 투자는 접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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