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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Apr 18. 2024

"노르웨이 가서 별을 보고 싶어요"

[연재] 60. 이혼 36일 차

60. 이혼 36일 차,           



“노르웨이 가서 별을 보고 싶어요”     


2014년 4월 5일 토요일 흐림      


  “스테이크나 구울까?”     


  알몸으로 가장 편안한 잠을 자는 그에게 여자가 말했다. 

  남자가 일어나 샤워하고 식탁에 앉았다.      


  “제 밥은 됐어요.”     


  딸은 스테이크만 몇 점 먹더니 학교로 갔고 그도 “갔다 올게”라고 말하며 집을 나섰다. 내일 요트를 [클럽 제페]에서 끌어와야 하기에 자동차를 랭글러 루비콘으로 바꿔 탔다.      



  빌딩 지하 피렌체홀은 무빙디자인 사장과 소장 둘이서 느릿느릿 페인트 등 밑 작업을 하고 있었고 “전자레인지가 고장 난 것 같아요”라는 고시텔 입주자의 전화에 석촌역 A/S센터에 수리를 의뢰했다. 제품은 보증수리 기간 내였다.      



  오후 1시가 넘어 대학로로 향했다. 바람이 많이 불고 공기도 차가웠기에, 연극공연을 보고 식사까지 하려면 배가 고플 것 같아서 포장마차에서 부산어묵 두 개를 먹었다. 빗방울이 살짝 떨어질 때도 이때였다.      


  대학로 상명아트홀 2관의 공연은 창작 뮤지컬 ‘내가 만약 사람이라면’이란 제목의 연극이 공연되고 있다. 팸플릿엔 제작- 극단 자유마당, 기획- 아트플렌 바람이라고 적혀있다. 입장권은 단체 할인받았는데 스터디 대표인 신ㅇㅇ 학우의 힘이 컸다. 상명대 영화 영상학과 오진호 연기 전임 교수가 친구인 인연 탓이었다.    

 

  줄거리는 개들의 이야기다. 여자아이의 사랑을 듬뿍 받는 누렁이 ‘장군’이가 길을 잃으며 시작된다. 사람에게 버림받은 개, 예쁘게 치장하고 다니는 치와와, 사냥꾼을 물고 도망 나온 사냥개가 인간과의 관계를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만약 사람이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상상한다. 줄거리는 다소 작위적이고 감동을 이끌어 올리기까지 과장이 있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연극관람에 참석한 학우는 9명이었다. 1학년은 시험을 치르고 바로 와서 참가율이 높았다. 저녁 모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학교 ‘락앤락’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풋풋한 새내기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도 잊지 않았다.     



  6시. 일행은 고기 뷔페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엔 10여 명이 더 참가했는데 새로운 얼굴도 많았다. 1학년 팀장인 ㅇㅇ의 솔선수범에 배가 터지도록 고기를 먹었고 2차 노래방으로 옮겼다.     


  “노래방 가실 거예요? 저와 이야기 좀 해요.”     


  노 과장이 그를 잡고 말할 때도 이때였는데, 서른두 살의 처녀다. 면목동 반지하 빌라에 살면서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고, 방송대 첫 M.T때에는 새벽까지 그에게 잡혀 구라를 들었었다. 그래서 그도 노 과장에겐 각별하다. 그런 노 과장이 ‘노래방에 가지 말고 소주나 마시자’라고 한다. 노래 두어 곡이 불리자 카메라 가방을 챙겨 노래방을 나왔다. 노 과장은 계단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친구에게 전화하고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과일소주를 파는 곳은 노출 시멘트로 모던하게 인테리어 한 곳이었다. 달콤한 칵테일 소주를 앞에 두고 노 과장이 입을 열었다.     


  “제가 그 책을 사서 읽었어요.”

  “응? 내 책을 읽었다고?”
   “네! 좀 무섭기도 했지만 따뜻한 마음도 알았고요.”     


  [부동산경매비법]. 그가 5년 전 쓴 책이다. 당시 경매 투자자들 사이에 바이블 취급을 받을 정도의 인기가 있었다. 지금도 그의 명함에 ‘저서’라는 이름으로 적혀 있지만 직접 책을 사서 읽은 사람은 노 과장이 처음이었다.      


  “내 책을 읽은 사람이 주위에 네가 처음이다. 대단하다!”

  “나도 경매로 쫓겨난 적이 있어요. 고등학교 때였는데 이사비도 못 받았어요. 흐흐.”

  “아버지가 사업을 했나 보고만~”

  “아버지는 없어요.”

  “돌아가셨어?”

  “아니요, 집을 나갔죠. 엄마가 힘들게 키웠죠.”     


  그녀는 지금도 어머니에게 용돈을 보내고 있으며 모은 돈도 ‘4천만 원이나 된다’라고 했다. 지금 사는 반지하는 ‘바닥에 물이 고이는데 너무 싸게 있어서 불만은 없다’라고도 했다. 그런 반지하 보증금은 1천7백만 원이었다.      


  “저도 경매로 집을 살 수 있을까요?”     


  노 과장이 물었다.      


  “왜 안 되겠어. 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되는 거지. 게다가 월급도 잘 나오잖아.”

  “제가 좀 능력이 있잖아요. 연봉이 3천7백 정도 돼요~”

  “음. 좋아. 그런데 집을 살 것인지 돈을 벌 것인지 투자의 목적이 분명해야 해. 돈 벌면 뭐 하고 싶냐?”

  “노르웨이에 가고 싶어요. 별을 볼 수 있는 리조트가 있데요. 거기서 별을 볼 거예요.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노르웨이 그 리조트에 싸게 가는 법을 가르쳐 줄 가?”

  “어떻게요?”

  “(리조트에) 메일을 보내. 동양의 여자 사람이 당신네 리조트에서 별을 보고 싶다는 감동적인 글을 써 보내봐. 그러면 파격적인 D/C를 받을지도 모르거든. 사람의 마음은 똑같아서, 감동한다면 그렇게 할 거라고 봐.”

  “우와~, 그렇겠네. 그런데 영어를 못해요.”

  “그게 뭔 걱정이냐. 한글로 써서 디시인사이드에 영문 번역 부탁한다고 올리면 번역해 주는 잉여들이 있을 거야.”

  “정말 그렇겠다.”

  “그럼. 발상의 전환을 해 봐라.”     


  늙은 학생과 젊은 처녀의 이야기는 성산동으로 이어졌다.  

   

  “소희에게 전화해 볼까요? 형님이 소희 잘 챙기시잖아요.”     


  소희. 그녀도 서른이다. 스무 살 때까지 혈액형 검사의 오류로 ‘난 주워온 딸일 거야’라며 스스로 상처 입고 마음을 닫았던 아가씨다. [한겨레 신문]을 좋아하는, 아주 세상에 부정적인 시각의 좌파로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 해서 공부하고 있다. 화곡동 원룸에서 다른 여인과 살다가 최근에 성산동으로 이사했다.     


  “소희야, 대학로로 와라.”     


  대화가 길어지는 것을 보니 ‘온다 못 온다’라는 실랑이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화를 끊은 노 과장이 “우리가 갈까요?”라고 물었다. 이에, 관대한 그가 “그래, 위문공연 한다 생각하고 가자”라고 말하며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다.     



  “성산 1교로 갑시다!”     


  그렇게 만난 소희는 두툼한 안경알의 안경에 레깅스, 무스탕 털 재킷을 입고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노 과장도 레깅스 차림이었다.      


  “돼지껍데기 주세요?”     


  이들은 근처 [마포숯불구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메뉴를 주문하고 소주를 유리잔에 부었다. 그리고 좌파 소희는 오늘도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뭔가 주장했는데 별로 중요하진 않았다. 물론 소희에겐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소희는 “형님(여학생들은 그의 호칭을 이렇게 부르기로 합의했다고 한다)은 돈의 위력을 너무 내세운다니까요”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대화 도중 하마터면 일어서 버릴 뻔했는데, 그의 인내가 어깨를 눌러 주저앉혔다. 맞은편에 앉은 노 과장 또한 결혼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였다. 아마도, 거기엔 무책임한 아버지로 인해 남자에 대한 불신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였다. 그런 노 과장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그도 빌딩 아지트로 돌아오는데 까닭 모를 허망함이 밀려오며 글귀 한 줄이 생각이 났다.      


  “싸구려 인생 사는 놈들이랑 새벽 늦게까지 소주 마셔준다고 그 사람들이 니 사람 되는 거 아니다. 길바닥에서 닭 튀기는 잡것들처럼 후잡하게 주둥아리 나불대지 마라. 짱짱하게 일하고 자기 관리만 똑바로 해도 멀쩡한 놈들이 들러붙는다. 1인분에 7000원 하는 삼겹살집에서 담배 뻑뻑 작살내면서 육두문자 갈기면서 허탕하게 웃지 마라. 어떤 멜로 영화보다 더 슬퍼 보인다, 그런 늬 모습이. 주둥아리 나불대지 마라, 말끝 흐리지 마라, 야무지게 일해라. 자기 관리 깔깔하게 해라, 그럼, 사람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디시인사이드 부동산갤러리 밴쿠버 선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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