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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Apr 20. 2024

이혼으로 10억 원을 채우려는 욕심

[연재] 61. 이혼 37일 차

61. 이혼 37일 차,           



  이혼으로 10억 원을 채우려는 욕심


2014년 4월 6일 일요일 맑음      


  저녁이 시작될 무렵 여자는 딸과 쇼핑 보따리를 가득 들고 빌딩을 찾아왔다. 

  그때 그는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는데, 딸이 현관 비밀번호를 알고 있기에 바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함에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무언가 익숙하지 않은 공기가 그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것처럼 포지션을 잡는 것도 그에게는 힘겨운 일이었다.      


  손바닥만 한 얼굴의 딸이 조잘조잘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했고 여자는 “이거 당신 거야.”라며 호피 무늬 팬티를 건넸다. 그녀의 손에도 같은 무늬의 브래지어와 팬티가 들려 있었다. 쉽게 말해 커플 내의를 산 것이다. 물론 이 두 사람은 이혼 숙려기간 중이다.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해.”     



  여자가 딸을 종용했다. 딸이 “참치!”라고 말했다. 빌딩 옆 건물 [참치] 횟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메케한 고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인장이 “고추기름 만드느라 그랬어요.”라고 말했는데, [참치] 횟집에 방문한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가 주인장에게 “눈곱 살 많이 주래”라고 말하며 식탁 자리를 정해 앉았다. 그렇게 식사가 시작되었고 배가 부른 딸이 “나 먼저 가서 좀 잘래”라고 말하며 일어섰다.     


  “4억을 주고 3억은 전세인데 4억은 언제 줄 거야?”     


  여자가 돈 이야기를 꺼낼 때도 이때였다. 협의이혼은 그가 여자에게 7억 원을 주는 것으로 계약서를 작성했었다. 그런데 사실 그는 돈이 모두 투자에 묶인 탓에, 전혀 없다. 그러함에도 여자가 등에 꽂은 빨대를 하루라도 빨리 뽑아내기 위해 ‘7억 원을 준다’라고 했었다.     


 

  아침에도 여자는 “3천만 원을 빌려 갔는데 2천만 원만 줬어”라며 전화했었다. 이미 그 돈은 이자까지 송금했는데 1천만 원이 불어 3천이라기에 황당했지만 따지지 않았는데, 그녀가 말했다.      


  “미안해. 9백만 원을 더 준 것으로 계산했네.”     


  여자는 지금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당연히 ‘7억 원의 금액에 협의이혼 한 사실’을 매우 후회하고 있다. 협의이혼 7억 원중 4억 원은 6월 3일 판결일에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자가 전세 3억 원에 지금 아파트에 살고자 하므로 1억 원만을 지급하면 되고, 6개월 후 나머지 3억 원을 지급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어차피 3억을 줘야 하는데 주는 날까지 전세를 살겠다”라고 말한다.      


  즉, 이혼 판결 당일에 4억을 받고, 아파트에 그대로 살면서 6개월 후 3억을 받아 나가겠다는 이야기다. 언제까지 자기 유리할 대로 세상을 살아가려는 것인가? 그가 발끈했다.     


  “그날 4억 줄 테니 방 빼. 그리고 6개월 후 3억 도 줄게!”     



  마지막 잎새처럼 위태롭게 남아있던 한 줌의 미련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미련이란 전처에 대한 마지막 배려를 말했다.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받아내려는 여자의 노력이 서글펐기에, 가슴은 참치회 온도보다 다 더 낮게 식어갔다. 그러므로 그는 당장 안양에 건축 중인 빌딩을 담보로 돈을 빌려 4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현장소장이 건물 외벽을 장식할 ‘돌을 선택하라’라며 찾아왔다. 포천석, 현무암, 고흥석 등등 여러 개의 대리석 표본을 옥상에 펼쳐 놓았다. 그가 “밝은 화이트 톤으로 갑시다”라고 결정했다. 이에, 현장소장이 “이번 달엔 골치 아픈 일이 많네요”라고 운을 뗐다.     


  “뭐가 골치 아픕니까?” 

  “5층은 철근이 틀린 데, 그냥 했다가 다시 뜯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뒷 데후가 나갔다네요.”   

  

  현장소장의 애마는 BMW X-5다. 엔진 오일 교환을 위해 업체에 넣어 정비한 후 오는 길에 기동 불능에 빠져 견인해 갔는데, ‘결과가 나왔다’라며 업체가 보내준 사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사진상으로 볼 때는 정비 불량인지 제품 불량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수리비는 ‘8백만 원 정도 나온다’라고 말했다.     


  “피하하~. 모닝 한 대 값이네?”

  “그래서 죽겠습니다. 그래도 일단 고치라고는 했습니다.”     



  빌딩 2, 3층 고시텔도 공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번에는 303호가 ‘방을 빼겠다’라고 했다. 이 방은 남녀가 혼숙하고 설치류 동물도 키웠다. 그러니 파손된 부분이 있는지 샅샅이 잘 살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고백으로 알려왔듯이, 벽지가 갉아져 있었으며 의자의 시트도 그랬다. 여자는 이미 나가고 없고 남자가 방을 깨끗하게 청소했고, 시트까지 세탁해 널어놓았다. 그가 “의자 등 5만 원을 공제하고 나머지 일수 계산해서 반환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열쇠를 회수했다.      


  입주자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시행했고, 최고의 쾌적한 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복도를 청소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그런 정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돈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될 뿐이었다.      



  금이 간 반쪽 가족이 참치회를 먹는 동안에도 연세대 동문 방모 여인은 전화했다. 낮잠을 잘 때도 전화했고, 문자도 보냈는데, 목적은 ‘손해배상으로 돈을 주세요’였다. 발신 전화번호는 교보문고 광화문지점이었다. 그가 유추 해석해 보기로, 책을 훔쳤거나, 밥을 먹었다가 급하게 돈이 필요해 ‘돈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오늘은, 편지를 우편함에 넣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전화로 여러 번에 걸쳐 손해배상 요구를 끈질기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그는 걸려 온 전화를 ‘수신 거부’ 등록했다. 그러함에도 한 번은 전화를 받았는데 “목사님도 (냉장고의) 내 음식을 총무가 먹었다고 하네요”라고 말했다. 이에, 그가 “내가 쓰레기나 먹을 놈으로 보입니까? 방 청소비하고 관리비나 내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방모 여인이 “미친 거 아냐? 무슨 청소비?"라고 소리쳤다. 그는 아이가 앞에 있어서 시원스럽게 욕을 하지 못했다.     


 

  시원한 참치를 먹던 여자가 ‘춥다’라며 외투를 벗어달라고 했다. 그가 겨우내 입고 지냈던 야전상의를 벗어 줬다.      


  “냄새가 좋다.”     


  여자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데 잡은 것은, 야전상의가 아니라 자기 재킷이었다.    

 

  “겨우내 입었더니 쉰내 나더라. 지금 냄새는 당신 옷이야.”     


  그제야 여자가 야전상의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그러네. 쉰 네가 나네.”라고 말했다.    

 

  “나도 이제 바셀린인가, 그런 것을 발라야 할 나이야. 각질이 떨어져 홀아비 냄새가 나면 안 되잖아!” 

    

  소주 두 병과 맥주 두 병을 비웠더니 10만 원이 넘게 나왔다. 이 돈은 306호에 살던, 버린 식료품값을 ‘손해 배상하라’라는 금액과 같았다. 삶이 이렇다. 누구에겐 생존의 비용이 누구에겐 한 끼 식사비용이다.      


  풀옵션 원룸인 401호 입주자도 “벌써 한 달이 되었습니다. 전세로 하면 어떻게 되나요?”라고 물어왔다. “7천5백만 원입니다”라고 말했고, 전세금 대출에 대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보증금 ‘4천만 원은 있다’라고 하기에 “월세는 35만 원입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이렇게 시간이 갈수록 빌딩을 지키며 혼자 살아가도록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진정한 부르주아는 월세를 받는 삶이 아닌데 능력의 한계로 그렇게 살게 되는 것 같다.     


  “집도 조금씩 청소하고 있어.”     


  아파트를 전세로 사는 것에 대한 합의가 깨지자 여자가 한 말이었다. 그러면서 “집을 구하려고 하니 4월에 4억을 먼저 줘.”라고 말했다.     


  “4억이 아니라 4천이지. 10%면 계약할 수 있잖아.”     


  그가 매섭게 말을 끊었다. 그러함에도 오늘 술자리는 아주 뜻깊은 술자리였다. 그것은 여자가 이미 이혼이라는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것이고, 돈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뜻깊은 술자리인 것은 사실이다.      


  아파트에 전세 살겠다는 여자가 마음을 바꿨으니 대출을 받아 돈을 줘야 한다. 그도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것은 빨리 결정하면 된다. 여자가 타고 다니는 볼보 승용차도 날씨 좋은 날 사진을 찍어 팔거나,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었는데, 브런치를 먹으러 나갔다 만난 한 소장 부부의 모습이 그의 처지와 오버랩되었다.      



  그가 밥을 먹으러 나갔다가 봄날 신천 거리를 손잡고 걷는 이들 부부를 발견했다. 그들도 밥집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중이었다.     


  “봄날 데이트 중이네? 밥집 찾으면 나랑 가자 구.”     


  그의 말에 한 소장이 아내에게 “건물주님이셔”라고 소개했는데, 젊고 발랄한 미인이었다. 세 사람은 [나 살던 고향] 식당으로 들어가 갈비찜과 백반을 주문했다. 식사를 하면서 한 소장 아내가 디자인전공 대학원 4학년 재학 중인 것도 알았는데, 부부의 모습은 너무도 좋았었다.     



  그는 오늘 여자의 마음을 확인했으니 그동안 ‘비공개’한 블로그의 글들을 ‘공개’로 전환했다. 여자가 이혼이라는 사건으로 힘들까 봐 그의 일상 글을 ‘비공개’했었는데, 오늘 만나보니 그런 것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이혼을 통해 재산분할 합의금으로 10억을 채우려는 욕심 가득한 전처의 민낯만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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