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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Apr 22. 2024

"이혼하는 마당에 생활비 달라고?"

[연재] 62. 이혼 38일 차

62. 이혼 38일 차,           



“이혼하는 마당에 생활비 달라고?”     


2014년 4월 7일 월요일 맑음      


  “생활비 하고 2백만 원 보내줘야지?”

  “이혼하는 마당에 생활비를 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하는 것 아냐?”

  “주기로 한 생활비는 줘야지?”

  “생활비를 꼭 줘야 할 이유는 없어. 그러니 주지 않아도 되는 거야.”

  “나 독하게 하지 말어. 많이 참고 있어!”     


  그가 여자의 계좌로 재산분할 합의금 7억 원 중 1억 원을 송금하고 받은 전화다. 이미 협의이혼을 하고 법원 판결만 기다리고 있기에 생활비를 주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독하게 하지 말아’라며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 알았다. 1천2백이면 되냐?”    

 

  그는 지하실 인테리어 현장에서 여자의 전화를 받았는데, 같이 일하던 무빙디자인 팀이 우려스럽게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응. 이혼했거든.”     


  마른 장작개비가 밟혀 부러지듯 건조하게 대답했다. 물론 이 말을 듣는 이들은 멘붕에 빠졌지만! 여자는 그렇게 마지막 남은 정까지 거두어갔기에 하루종일 힘들었다.      


    

  씩씩하게 살아보려고 아침밥도 지었고 미역국도 끓였다. 그리고 여자에게 1억 원을 송금하고 인천 채무자의 초본을 발급받아 법원으로 등기를 보냈으며, 은행에 들러 내일 경매 입찰할 입찰 보증금도 인출했다.      

  오랜만에 입찰할 물건은 화성시 택지지구 내 토지다. 골조만 세워진 건물이기에 ‘철거소송’으로 제거하면서 시세차익을 노릴 참이다. 이 물건을 소개한 아라미스에게는 2백만 원 정도 줄 생각인데, “내일 수원법원에는 못 갑니다. 형님!”이라고 말했다.          


 

  지하실 인테리어는 약 70% 정도 진행되었다. 노래방 기계를 판매하는 업자의 방문도 있었다. 서른 살 중반쯤의 사내로, 빔프로젝터와 금영 노래반주기, 앰프, 스피커, 무선 마이크 등을 포함해 210만 원과 설치비 30만 원의 견적을 제시했다.      


  “설치비가 좀 쎄네. 하여간 알았습니다. 공사가 끝나면 연락드릴게요.”    

 

  업자를 보내고 랭글러 루비콘을 타고 안양 빌딩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도로 가장자리에는 개나리가 노랗게 만개했고 가로수 가지에도 파란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4층 지붕이며 5층 바닥 타설이 한창이었다. 전화로 전 소장을 불렀다. 건물은 매우 높게 자랐는데, 롯데백화점 앞 횡단보도에서도 앞 건물처럼 바로 보였다. 그러니 광고는 특별히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내부로 들어갔다. 앙상한 철근콘크리트 골조에 돌을 붙일 수 있도록 고리들이 줄을 지어 붙어 있고 서포트가 빽빽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4층에 오르자 나무로 만든 거푸집 사이로 레미콘 물이 흘러내렸다.     

 

  “건축주님, 다음 주면 옥상까지 공사가 끝납니다. 그러니 공사비를 준비해 주세요.”  

   

  뒤이어 도착한 전 소장은 자동차 고장에 대한 고민과 함께 공사비 이야기를 꺼냈다.  

    

  “알았어. 오늘도 이혼 위자료로 1억을 지급했어. 공사비가 될지 모르겠네.”

  “그게 뭔 말씀이세요?”

  “이혼했거든. 하여간 알았어.”     


  갑자기 거액이 빠져나가지만 죽으란 법은 없다. ‘지금 당장 롤렉스 시계를 사라’는 책에서 말하듯 욕망이 있으면 지르면 된다. 그러면 욕망을 현실화시킬 돈이 생긴다. 오늘도 그랬다.    


      

  “사장님, 저 인천에서 올라갑니다. 5억 5천이면 경매 풀어준다는 확인서를 써 달라고 합니다.”     


  베드로의 전화를 받았다. 이렇게 인천 빌라 시행업자에게 빌려준 채권은 합의가 될 것 같았다. 그러함에도 “채권자가 합의서는 못 써주지요. 나 대신, 한 장 써 주고 오세요”라고 코치를 했다.    


  

  오후에 아지트를 방문한 베드로의 이야기를 들으니 채권 회수는 확정적인 듯했다. 그렇다고 해도 현금 4억 원이 6월 3일에 지출되어야 하므로 투자자금 확보를 위해 [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은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조만간 [저축은행] 조 과장을 불러 필요한 금액을 자서하고 투자 물건이 보이면 대출을 실행할 생각이다. 또한 광산투자 비슷한 물건은 생각하는 ‘프레임을 벗어났다’라는 판단에 투자를 철회했다.     

     


  아지트로 돌아와 303호의 파손된 벽지를 보수하는 작업을 했다. 203호에 ‘한 달간 입주한다’라는 여자아이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은 때도 이때였다. 어머니가 “2층은 여자 전용이죠?”라고 물었다.     


  “여자 전용은 아니고 여자들 위주로 입주해 있습니다.”

  “남자가 있어요?”

  “네. 방 개수가 많지 않기에 남자도 입주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아는 점잖으신 분입니다.

  “몇 살인데요?”

  “몇 살까지 알아야 합니까? 개인 프라이버시입니다.”

  “아니, 그곳이 출입구부터 비밀번호라 안전해서 얻은 것이거든요.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떡해요.”     


  ‘인천이 집이’라는 이 여자는 제 딸이 여기서 어떻게 될까 봐 걱정했다. 그가 “이해는 합니다만 입주자들을 무슨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합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을 어떻게 삽니까? 이곳만큼 안전한 곳도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내 아이가 잘 못 되면 안 되잖아요. 고시원에서 살인사건도 일어나고 하잖아요.”

  “다 좋으신 분들입니다. 여기는 화재보험도 들어 있어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사망 시 1억 원까지 지급되는 보험까지 들어있는 곳입니다.”

  “아니, 내 자식 죽었는데 1억 원이 문제여요?”     


  자기 자식의 아랫도리가 걱정되면 집에서 키우지 왜 고시원에 넣으려는지 모르겠다. 온갖 남자들을 성범죄자 취급하며 말이다.      


  “아줌마! 보증금 돌려 드릴 테니 계좌번호 문자로 주세요. 당신에겐 방을 빌려줄 수 없습니다.”

  “네?”

  “다른 곳을 알아보란 말입니다. 보증금은 당장 돌려 드립니다.” 

    

  지랄도 풍년이다. 제 딸년만 귀한 줄 알았지 남의 아들 귀한 줄 모른다. 요즘은 딸년 건들면 떼돈 버는 세상이다. 남자가 아무 년이나 겁탈해서 인생 조지는 동물쯤으로 생각하는 마인드가 짜증 나서 알려온 계좌로 보증금 20만 원을 송금해 주었다.  

    

  307호 프로야구 선수도 한 달을 채우고 방을 비워 보증금을 돌려주었다. 공실은 7개로 늘어났다. 그러함에도 개의치 않기로 했다. 상식을 벗어나는 저질 인간들에게 공간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고시텔 공용주방에 지어놓은 밥은 아무도 먹지 않았다. 그가 주걱으로 밥을 헤집으며 그릇에 퍼 담고 전자레인지에 카레를 넣고 2분간 돌렸다. 이것이 그가 먹을 저녁 식사였다. 하루에 1억 원을 전처에게 송금하는 남자의 밥상!      

    

 극심한 피로에 침대에 누웠다가 백화점에 근무하는 209호 입주자의 전화에 일어났다.   

   

  “제가 열쇠를 잃어버려서요. 그리고 방이 추워요.”     


  봄날인데 춥단다. ‘네가 솔로여서 그렇다’라는 이야기는 차마 못 하고 “(열쇠를) 복사하고 돌려주라”라고 말하며 여벌의 키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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