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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Apr 26. 2024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연재] 65. 이혼 41일 차

65. 이혼 41일 차,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2014년 4월 10일 목요일 맑음    

  

  블로그. 

  항해일지. 그는 블로그 중독자다. 블로그는 그의 꿈 공작소다. 어지간한 일조차 적기에 세상을 향해 열려 있으나, 외로운 자신과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며 포장하는 통로다. 그런데, 언제부터 운영하는 고시텔을 광고하는 통로로 변했다. 때문에, 화려한 과거는 사라지고 ‘고시원 총무’의 블로그가 되었다. 

     

  “본능적으로 느껴졌어.....”     


  모닝콜 음악이 울리자 눈을 떴다. 아침 6시 30분이었는데, 방송대 2학년 출석 수업이 9시부터 9시간 동안 있기 때문이었다. 샤워하고 고시텔 공동주방으로 내려가 밥솥을 열었다. 누군가가 밥을 새로 지어 놓았다.      


  미역국도 끓였다. 너무 오래 끓여 짰다. 물을 붓고 또 끓였다. 그런 후, 삼각대 위에 캐논 5D 마크3 카메라를 얹어 밥과 김치, 미역국이 전부인 밥상을 촬영했다. 서글픔이 화악- 밀려왔음에도 입속에 수저를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이름도 직업도 고향도 알 수 없고, 출석 수업이나 중간시험, 기말시험 때 보는 얼굴이지만 같은 학교, 같은 과를 공부한다는 이유만으로 반갑다.      


  첫 수업은 [한국사의 이해]였다. 담당자는 장ㅇㅇ 강사였다.     


  “여러분, 최치원을 아세요? 네, 아시네요. 유학자. 그분이 당나라로 유학을 갔지요... 제가 고려사로 신라말에서 고려, 후삼국까지가 전공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교재지침에 한국사 전반에 대해 다루라고 하네요. 지금 한국사가 몇 페이지입니까?”     


  한국사는 500페이지다. 이 방대한 분량을 6시간에 끝내야 한다. 이게 방송대의 힘이다. 스피드. 강의는 한국 역사 문화의 특징인 ‘토착문화가 강하다, 공존과 조화다, 실천을 중시한다’라는 3개의 주제로 진행했다.      


  장ㅇㅇ 강사는 자신의 강의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기에 학우들도 즐겁게 학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특히 발해, 고구려, 고려, 조선을 이야기하며 대하사극의 주인공을 곁들여 말하는 깨알 개그는 멋졌다.      


  점심은 스터디 2학년 학우들과 먹었다. 볼살이 통통하고 프랑스 레옹인지 어디에서 유학까지 하고 온 연ㅇ는 “형님, 보신탕은 안 돼요.”라고 거부했다. 그러니 하는 수 없이 애기들에게 이끌려 돈가스 식당으로 끌려갔다.      


  “왕돈까스, 돈까스, 순두부...”     


  이것저것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그리고 식당을 나올 때 계산서는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계산을 마치고 식당을 나오자 “형님. 커피는 저희가 살게요!”라고 말했다.      


  “난, 카라멜 마끼아또!”     



  오후 첫 시간은 [대중문화와 영화비평]으로 속사 이ㅇㅇ 강사였다. 1학년 때 [저널리즘의 이해]를 강의했는데,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진 않았다. 하지만, 나머지 3시간은 영국에서 학위를 받은 ‘장ㅇ’교수 강의가 있기에 부담인 모양이었다. 그러함에도 자기 스타일의 세계를 아낌없이 펼쳐 보였다.     


  마지막 시간은 [사이버 커뮤니케이션]과목이었다. 이 과목은 교재가 없다. 보충학습 교재뿐이다. 모르고 배송된 책 속에서 한참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여 강사가 사진을 찍는 그에게 “올리지 마세요”라고 부탁했다. 역시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개인정보와 소셜 미디어, 사이버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3시간 동안 강의했는데, 학생들의 질문도 많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수업 중이었기에 전화기를 무음으로 설정해 두었었다. 쉬는 시간에 확인하고 전화 걸어 업무를 처리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친구 오 군의 전화도 받았다.    

  

  “아니, 술에 취해서 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  

   

  오 군이 전화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가 어떤 정신인가? 술에 찌들어 사는 것이 아니라 밥도 잘 먹고 공부도 열심히 하며 최대한 정신을 지키고 있기에 “전혀 걱정하지 말라!”라고 대답했다.     


  거짓말이었다. 그는 지금도 분노와 후회, 번민으로 괴로웠다. 번뜩이는 칼을 볼 때면 ‘가서 확 그어 버릴까’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수업을 마치고 아지트로 돌아오자마자 고무장갑을 끼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할 때도 그랬고, 가족들에게 빌린 이자와 여자에게 이자를 보낼 때도 그랬다.      


  부부간의 재산인데, 자기 돈에는 이자를 받는 여자에게 분노가 이는 것은 당연했다. 여자가 ‘친구 돈이다’라며 구라하는 2억에 대한 이자 245만 원, 그리고 다시 1억 원에 대한 이자 1백만 원, 나머지 가족들의 집을 담보로 빌린 4억 원에 대한 이자 4백만 원이 그것이다.      



  “그가 바다에서 왔듯이 석양 지는 저녁에 다시 그곳으로 가다...”     


  블로그를 잠그면서 남긴 인사말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블로그를 오픈하고 배경 화면도 바꾸는 심리적 불안 증상이 계속되었다. 배경 화면도 단양 사냥터에서 엽총을 겨누는 사진으로 바꾸고, 제목도 ‘화려한 휴가’로 변경했다.      


  ‘화려한 휴가’란, 광주 폭동을 진압하던 공수부대의 작전명이다. ‘폭동’을 일으키는 내부의 적을 제압하고자 하는 의미였다. 이렇게 그는 모든 것을 준비했고 결과 또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었다. 배경 음악 또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사아랑아앙도 명예도오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가자아던 뜨으거우운 매에엥세에.....”  

   

  수십 번을 반복해 들었더니 가슴에서 정의를 외치며 투쟁하던 스무 살 적 뜨거운 피가 솟았다. 프로필 사진 또한, 그 시절 노동조합 홍보부장 시절 사진으로 바꾸었더니 잊어버린, 잊혀진 열정 되살아났다. 그의 본질과 청춘을 찾은 날이었다.     



  저녁은 [새마을 시장]에서 산 족발로 해결하며 소주 한 병을 비웠다. 그리고 진토닉 칵테일을 마시며 쌍문동 채무자의 재판 사건을 열람했다.     


  “원고 패!”     


  채무자가 원고다. ‘근저당권 말소청구의 소’를 제기했으나 ‘패’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검찰청의 전화를 받고 자료를 오토바이 퀵으로 보냈었다. 오늘 이 사무장도 ‘검찰청의 전화를 받았다’라는 말을 했기에 늦은 시간이지만 결과를 알려주었다. 이 사무장이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술은 여기 룸에서 마셔?”라고 말하자, “친구들과 마실 때 빌려주십시오”라고 대답했다. 물론 그럴 것이다.     



  베드로가 전화를 걸어와 “사장님, 올라가서 10분만 예기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 때도 이때였다. 잠시 후, 아지트로 올라와 “내일 인천에 다녀올 겁니다. 다음 주에는 (토지)소유권을 넘겨달라고 하려구요”라고 말했다.      


  이에 그가 “저야 모든 마음을 비웠습니다. 싫다면 그냥 경매로 넘겨야지요. 대출도 신청했습니다. 마음껏 달리고 망하면 그것으로 끝내겠습니다. 그러면서 나를 연봉 5억에 사 가시라는 광고를 낼 것입니다. 제가 그 정도 가치는 없을까요?”라고 물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셨습니까? 대단하십니다.”

  “장모님이 엊그제 전화했다가 오지 않네요. 협의이혼이란 게 결정 당일 나오지 않으면 소송을 해야 하드만요. 그래서 아마 그날 나오지 않을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이혼 소송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저는 손해날 일이 없지요.”

  “왜 그렇죠?”     


  베드로가 되묻자 그가 말했다.     


  “위자료를 당장 지불 하지 않고 다른 일을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장님은 완전히 ‘이혼’을 생각하는 것입니까?”?

  "당연하지요. 제가 이렇게 감정소비를 하는 게 장난 같습니까? 저는 일반 가정집이 재미로 이혼하는 수준이 아니잖아요? 인생 전체가 포맷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영부영 취하할 이유가 없지요. 하여간 오늘 제 가슴속 열정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며 샘 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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