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만 Apr 29. 2024

"내가 당신을 경외한다고 했지?"

[연재] 67. 이혼 43일 차

67. 이혼 43일 차         


 

“내가 당신을 경외한다고 했지?”     


2014년 4월 12일 토요일 흐림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여인의 몸. 

  속 살의 온도를 깊게 탐닉한 새벽이었는데, 아침에 또 “뒤로 한 번 하자”라며 남자의 그것을 밀어 넣는다. 이에 여자가 ‘삐끄덕’ 거리는 몸을 휘면서 “나도 이제 오십이야”라고 말했다. 침대 아래엔 티슈가 꽃을 피웠다.     


  아침 식탁엔 프라이팬에 구운 소고기가 올라왔다. 그러니 아침부터 상추쌈이었다. 그리고 커피까지 마시다 보니 광고 촬영 현장에 ‘9시 30분까지 도착한다’라는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올림픽 도로 정체는 오픈한 스포츠카도 어쩔 수 없었다.      



  “국민은행 건물이에요!”     


  먼저 도착한 재ㅇ이가 전화를 걸어올 때는 건물이 보일 때였다. 주차 후 5층 학원으로 올라갔다. 이미 두대의 카메라를 세팅한 상태였는데, 원장은 4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스토리는 아이들이 영어로 왕따 문제 등 소식을 전하거나 인터뷰하는 형식이었다.  

   

  메인 카메라는 재ㅇ이 맡았고 서브 카메라는 한ㅇ 학우가 맡았다. 그는 스크립트 보드와 조명, 기록, 메이킹 필름을 담당했다. 처음 손발을 맞추는 일이었지만 생초 보는 아니기에 그런대로 잘 진행되었다. 특히 아이들에게 표정과 발음을 지도하는 그는 조감독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작으면 “아, 아! 이렇게 소리 질러 봐!”라고 하며 자신감을 불어넣기도 했고, ‘생일잔치 때문에 일찍 가야 한다’라고 하는 아이의 문제도 “그럼 이 아이 부분만 먼저 촬영하고 보내죠. 편집을 하면 되니까요.”라며 촬영속도까지 당겼다.      


  그러함에도 촬영은 길어졌다. 그러므로 오후 2시에 [클럽 제페] 오픈 행사에 참여하려는 계획도 차질이 생겼기에 여자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렇게 촬영이 끝나자 원장이 “식사 어떠세요?”라고 권유했다. 그렇게 일행은 [샤부샤부] 식당에 자리했다. 그가 원장 부부에게 명함을 내밀자 “부동산 투자에 대해 전혀 몰라서요.”라고 말하며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했다.     


 

  식사를 마치고 조수석에 재ㅇ을 태우고 사당역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오늘 촬영을 담당한 학우를 지칭하며 “VJ 특공대 프로에 영상을 팔 정도였다고 해도 오늘 보니 영화를 찍기에는 좀 부족해 보이더라”라고 평가했다. 이에, 재ㅇ이 “캠코더로 찍는 방송 프로와 단렌즈를 쓰는 영화는 다를 수밖에 없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함께 영화를 만들어 가자’라고 의기투합했으니 서로 협력해 실력을 끌어올리면 될 일이었다. 편집은 다음 주에 그의 사무실에서 하기로 했다.    


 

  여자는 점심도 먹지 않고 기다렸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위층 부부가 갤로퍼를 타고 외출하려는 찰나였다. 몇 년 만의 만남이었지만 짧은 인사를 하고 여자를 태우고 가평으로 향했다.      


  [클럽제페] 오픈 행사는 오후 2시였지만 토요일이니 행사가 ‘늘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도로는 약간의 정체를 보였으나 벚꽃길이 좋아 오픈 드라이빙을 하기에는 좋았다. 그렇게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무렵이었다.      


  빨간 스포츠카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다가와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그가 “최 대표 보러 왔는데”라고 대답했다. 이에, “사장님이 방금 나가셨는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 안 오시나?”

  “네!”

  “배고픈데 먹을 것도 없어?”

  “모두 철수해 버렸습니다.”

  “알았어. 사진이나 몇 장 찍고 갈게!”     


  [클럽제페]는 펜션용 집 한 채와 강가 바지선, 보트 보관소, 마당과 야외 테이블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풀코스로 여유롭게 즐기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였다. 바지선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고 차에 오르며 여자에게 “밥 먹으러 가자!”라고 말했다.      



  밥집을 찾으며 서울로 향했다. 오른쪽 진입로에서 흰색 승용차 한 대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진입했다. 그가 경적을 울렸다. 뒤에 타고 있던 아이 하나가 얼굴을 내밀고 입술을 오무락거렸는데, 젊은이들이 다수 타고 있었다.      


  “부으으으-으-ㄱ”     


  그가 왼쪽으로 추월해 그 차량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차는 따라오지 않았다.      


  “안 따라오네?”     


  여자가 말하자 그가 “따라오면 가스총 쏴 주려고 했지.”라고 말하며 ‘한우를 24시간 우려냅니다’라는 곰탕집 마당으로 들어갔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 두 사람은 목소리를 높이고 싸웠다.      


  “당신은 모임에 여자가 오면 무조건 (섹스)할 생각만 하는 거야?”     


  여자가 남자들과 골프장에 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그래. 남자가 제일 걱정하는 것은 내가 키우는 자식이 진정 내 자식인지 걱정하는 것이지. 남자가 여자에게 밥을 사는 것은 내 좆 빨아 달라는 거야. 여자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말이야.”

  “당신은 그 생각을 깨지 않으면 안 돼!”

  “생각을 깬다고? 생활비를 그렇게 많이 주고, 이혼해도 7억을 주는 남자의 생각을 깬다고?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냐? 생각을 깨는 것이 아니라 남자의 생각에 맞춰 살아야지. 당신은 골프와 인생을 바꾼 거야. 알아?”    

 

  남자는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도 “당신은 10년 전부터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았어.”라며 힘찬 연어처럼 과거를 거슬러 올랐기 때문에 관계는 봉합하기 어려운 지경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들은 방금까지 화기애애하게 드라이브하고 곰탕을 먹었지만, 지금은 그 기운으로 싸움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그는 아지트로 돌아가지 않고 집으로 따라 들어왔다. 화내고 가면 그만 더 손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열어 남아있던 맥주 한 병을 꺼냈다.     


  “당신도 한잔할래?”     


  여자에게 말하며 허리를 잡아끌고 둔덕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여자가 말했다.  

   

  “성추행하지 말어.”

  “이거 봐라. 또 반말이다. 남편에 대한 존경이 없어.”

  “내가 당신을 경외한다고 그랬지? 친구와 싸울 때 잊었어?”

  “그 말은 한 거 맞는데, 문제는 언행일치가 안 된다는 것이지.”    

 

  그렇게 싸움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여자가 안주를 만들기 위해 냉동실의 연어를 꺼내 해동되도록 싱크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들은 23년 산 로열 살투트, J&B 등 닥치는 대로 술을 처리했다. 그랬으니 당연히 취할 수밖에 없었다.      


  두 육체는 소파에 넘어졌다. 그리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그들은 피부가 벗겨지도록 사랑의 행위를 했다.      

작가의 이전글 여인의 향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