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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May 05. 2024

배꽃 향기와 부동산 경매 판의 선수들

[연재] 69. 이혼 45일 차

69. 이혼 45일 차          



배꽃 향기와 부동산 경매 판의 선수들


2014년 4월 14일 월요일 맑음      


  어제였다. 

  아라미스의 전화에 “서초동? 그러면 넘어와. 여기서 자고 내일 나랑 내려가자.”라며 빌딩 옥탑방으로 오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 스스로 전화기를 꺼 놓고 잠들었다. 아마 드라이 진을 여러 잔 마셔 취한 탓일 것이다. 그래서 바람맞고 평택지원으로 온 아라미스가 그에게 한 말은 “형님 덕분에 데이트 잘했습니다.”였는데, 하얀 셔츠를 입고 은색 벤츠 e클래스를 타고 나타났다. 먼저 도착한 그가 벤츠 SLK 로드스터 조수석에 앉아 노트북으로 어제의 일기를 쓰는 중이었다. 그가 물었다.      


  “여자 있었냐?”

  “아뇨.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는 8시경 아지트를 출발했고, 평택 동삭동 국민은행에서 입찰보증금을 수표로 인출하고 법원으로 왔다. 입찰할 물건은 안성 톨게이트 근처의 근린상가이다. 채무자 겸 소유자는 그 외에도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1번부터 7번 물건까지 진행되었고, 총 감정금액은 16억 원에 이르렀다. 그는 7개의 물건 번호 중 3번, 최저 입찰가격은 1억 9천7백만 원인 물건의 입찰표를 작성했다. 그런 후 아라미스에게 말했다.     


  “단독 입찰 같지 않냐?”

  “아뇨. 여러 명 들어올 거예요.”

  “그래? 그럼 이것으로 입찰하자.”     


  그는 두 개의 입찰표 중 2억 1천7백6십만 1천 원을 쓴 기일 입찰표를 입찰 봉투에 넣고 나머지는 찢어 버렸다. 그렇게 법정 안 입찰함에 투찰하고 나무 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 일기 쓰기를 이어갔다. 

     

  법원 건너편 배 과수원엔 배꽃이 하얗게 피어있고 장끼 한 마리가 산에서 내려와 꽃 사이로 내려앉았다. 그가 아라미스에게 “저게 무슨 꽃이냐?”라고 물었다. 아라미스가 “배꽃입니다. 형님. 이쪽이 배가 유명해요. 그런데 여자들은 밤꽃에 환장하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이에, 그가 “크응, 그 냄새가 정액 냄새와 같으니 그렇지~”라고 맞장구쳤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청년이 다가와 인사했다. 아라미스가 “전에 제가 데리고 있던 후배입니다. 요 앞에 법무사 사무실을 오픈했네요.”라고 소개했다. 그렇게 아라미스의 소개로 평택에서 경매 컨설팅하는 청년을 소개받았고, 사무실로 가서 커피도 한 잔씩 했다. [로엔빌딩] 5층에 마련한 사무실은 막 오픈한 듯 화분들이 즐비했다.   


   

  그들이 다시 입찰 법정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이번에는 여인이 아는 체했다.      


  ‘산내들’

  50대 중반인 그녀의 닉네임이다. 10년 전 부동산경매를 수학하던 동문이다. 건설회사 경리 일하며, 틈틈이 보상용 토지를 낙찰받아 재미를 보는 여인네다. 그녀가 “호반님도 왔는데~”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남은 불발이었다. 주차장 건너편으로 힘없이 걸어가는 중년 남자를 발견했으나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반’

  지금은 모두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한때 이들의 경매 스승이었다. 어쩌면 그가 호반과 같은 라인으로 움직였다면 지금보다 더 큰 성과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인해 그들의 사이는 소원해졌고 각자의 길을 갔다.

   

  “그 물건? 나도 입찰했어.”     


  그가 산내들에게 살며시 떡밥을 던졌다. 그러자 화들짝 놀라며 “뭐야, 그거 들어갔어? 얼마 썼는데?”라고 물었다. 아마, 산내들과 다른 두 명의 투자자들은 11억짜리 유치권이 신고된 물건에 응찰한 것 같았다.      

  그래서 추측으로 넘겨짚었더니 놀라는 폼이 맞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짐짓 “14억 썼다!”라고 말했더니 “이거 졌네.”라고 한숨지으며 “우리들은 11억 조금 넘게 썼어.”라고 말했다. 그가 “그런 물건 바닥 쓴다는 것은 낙찰 안 받겠다는 것과 같은 거여. 퍽 써야지?”라고 염장을 지르며 개찰은 시작되었다.   

   

  그가 “사실 난 다른 물건 들어갔어요.”라고 말을 할 때도 이때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행운은 오지 않았는데 바로 뒤에 서 있던 중년 아저씨들이 “우린 12억을 썼어요.”라고 고백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이 물건은 14억 언저리에서 낙찰될 것이다. 이들은 아직 한참 더 수련해야 한다.      

  그도 입찰한 물건 개찰이 시작되었다. 7명의 입찰자가 경쟁했고, 최고가매수신고인 낙찰 영수증을 거머쥘 무렵 ‘2억 8천만 원’을 쓴 입찰자가 나타났다. 채무자의 이해관계인이 고가로 낙찰받은 것이다. 그러니 “배꽃을 배경으로 사진이나 찍자.”라고 말하며 과수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만 찍어야 했다.      



  아라미스는 급하게 서울로 갔고 그는 안양으로 향했다. 안양 빌딩 건축 공사는 5층 지붕 콘크리트 타설을 마쳤다. 현장에 도착해 계단을 걸어 5층까지 올라갔다. 옥상엔 한 사람이 설피처럼 스티로폼으로 신발을 만들어 신고 선풍기처럼 생긴 기계로 바닥면으로 고르게 다지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한 사람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옥상에서 보는 조망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는 길에 주유소에 들러 주유하고 빌딩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오후 5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일기를 다 쓰고 일부 글은 블로그로 보냈다. 강 교수가 ‘방문한다’라고 했는데 연락이 없어서 문자를 보냈으나 발송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연결되지 않았다. 전화기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전원을 껐다가 켰더니 밀렸던 문자가 6통이나 왔다. 그러니 카드 결제 문자가 오지 않았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강 교수는 빌딩에 방문했다가 전화가 안 되어 다시 돌아가는 중이었다.     

 

  “구의역? 그럼 돌아와. 인동초랑에게도 연락할게.”     


  그는 강 교수를 부른 김에 아라미스, 인동초도 불러 함께 하기로 했는데, 법원에서 근무하는 위 계장, 인동초의 친구로 안면이 있는 사무장까지 모이게 되었다. 냉장고에 있던 돼지고기가 부족할 것 같아서 강 교수와 시장을 다녀오기로 했다. 술은 인동초가 사서 들고 왔다.      


  옥상에 어렵게 숯불을 피우고 돼지목살 구이로 시작했다. 강 교수와 인동초에게는 한 번쯤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기에 기꺼이 수고했다. 그렇다고 자주 초대할 생각은 없다. 이들은 주로 경매 이야기했고 자정이 넘어 자리를 파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들이 떠나고 난 뒷자리는 그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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