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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May 06. 2024

고 씨 사내와 아들

[연재] 70. 이혼 46일 차

70. 이혼 46일 차     


     

고 씨 사내와 아들     


2014년 4월 15일 화요일 맑음      


  “나여, 바뻐?”

  “수업 중이야!”

  “뭔, 학교 다녀?”

  “응, 영화 만들라고 방송대 다닌다. 벌써 2학년이다.”

  “허, 이런 미친...... ”

  “오랜만이다. 잘 지내냐?”

  “나야 그렇지, 너에게 뭐 좀 물어보려고. 내 주변을 보니 나보다 잘난 놈이 없어서 물어볼 데가 없다. 그래도 네가 나보다 더 잘난 것 같아서 말이야.”   

  

  출석 수업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근 3년 만인 듯하다. 아주 오래전 그가 신사동에서 [모터사이클] 수리점을 할 때, 날씬 호리호리한 체구에 얼굴도 갸름한 이 사내는 [동보성]이라는 작은 중국 식당을 열었다.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은 키는 작달막한데 성실한 모습이었다. 음식이 나오면 사내는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과 홍보를 했다. 그런 이유로 그의 거래처 중 한 곳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사내의 아내를 볼 기회가 있었다. 얼굴은 곱상했지만 목소리나 성격은 괄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에 사내가 충청도 사투리가 베인 서울말로 “우리 집사람이 완전히 남자여. 엔간한 놈들 서넛은 제쳐! 난 술을 못하는데 술도 말술이여. 저놈들 그때 꼬인 놈들이여.”라며 주방을 가리켰다. 


  사연을 들어보니 아내와 홍제동 근처에서 [투다리]라는 꼬치구이 선술집을 했는데 그때 손님으로 알게 된 아우들이었다. 부부는 그곳에서 돈을 조금 만져 신사동으로 진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사내와 그가 술자리를 가질 기회는 없었지만, 또래였기에 정서가 비슷해서 보이지 않는 유대관계는 흐르고 있었다. 신사동엔 이들 외에 분식집을 하거나, 김밥집을 하는 또래의 자영업자들이 많았다.     


  사내의 성은 ‘고’씨다. 고 씨는 어느 날 “일수 사채를 하련다”라는 말을 남기고 중국 식당을 팔고 스쿠터 오토바이 한 대를 사더니 짐칸에 노란 바구니를 달고 논현동을 시작으로 일수쟁이를 시작했다. 뒤이어 김밥집, 분식집 사내놈들도 죄다 가게를 팔고 따라갔다.      


  그리고 3년쯤 지났을 때였다. 그가 운전하며 퇴근하던 길에 앞서 가는 고 씨의 일수쟁이 스쿠터를 보았다. 그가 스쿠터를 세우기 위해 경적을 울렸더니 돌아보며 말했다.    

  

  “난, 언 놈이 클락션을 울리는가 했네. 너여?”     


  가로수 아래에서 저간의 사정을 들었다. ‘논현동에 부동산 사무실 하나 내고 일수를 하고 있다 ‘라고 말했다. 그래서 얼마 후, 논현동에 부동산경매로 낙찰받은 주택을 매매하러 가는 길에 사무실을 방문했다. 일곱 평정도 되는 부동산 사무실 안쪽에 고 씨의 사무실이 따로 있었고, 사라졌던 김밥집주인, 동보성 주방장도 앉아 있었다.     


  그가 김밥집을 하던 주인장에게 “김 사장은 여기 뭔 일이여?”라고 물었다. 그러자 “나, 사채 하다 쫄딱 망해 여기서 일하고 있어”라고 대답하며 담배를 꺼내며 “돈을 빨리 벌 욕심에 신용으로 빌려줬는데 죄다 뜯겼어. 사채도 만만치 않구먼.”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그에게 건넸다. 물론 피우지 못하니 사양했다.      



  오늘 고 씨의 전화를 받았다. 그가 “이번 주까지는 학교 과제물 제출과 중간고사가 있어 시간을 낼 수 없으니 다음 주에 연락해라.”라고 말했는데, “성격이 급해서 그런다.”라며 전화를 한 것이다.     

 

  “내 아들이 스물여섯이여. 그동안 군대도 다녀오고 프랜차이즈 영업직도 해 봤는데 이제는 고정적인 직업을 갖게 해 주려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부동산경매더라고. 나도 너 하는 것 보고 배워보려고 했는 디 어렵더라. 그래도 아들은 젊으니 배워두면 써먹지 않겠나 싶어 만나게 해 주려고.”    

 

  고 씨의 말에 “뭐, 아들이 스물여섯? 도대체 뭔 짓을 했냐?”라고 되물었다. 고 씨가 “크, 씨벌, 내가 했냐, 마누라가 했지.”라고 대답하며 웃었는데, 아들의 나이가 상당해서 놀랐다. 그가 말을 이었다.  

    

  “부동산경매를 배운다고 해서 평생 직업이 되지는 않아. 그러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공부이기는 해. 사람이 배 위에서 살지 않는 한 부동산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또 사업적으로 ‘확장성’이 가능한 공부가 부동산경매 공부인 것 같고. 아들이 나에게 와서 한두 가지 기술을 배울 수 있겠지만 그것은 고기 몇 마리 잡는 것이야. 그러니 부동산경매 공부 외에 인문학적, 철학적 소양도 필요하다고 봐.”

  “그럼. 뭐 학원이라도 다녀야 하냐?”

  “학원 다녀야지. 아무 학원이나 다닐 수 없고, 그래도 실력 있고 성실한 학원장을 추천해 줄 테니 내 이야기하고 보내 봐.”     


  그가 고 씨에게 학원 전화번호와 원장의 이름을 찍어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고마우이너이름이머니까묵었따ㅋ”   

  

  그가 답장했다.     


  “씨발놈. 네이버 검색창에 부동산경매비법 쳐봐”

  “ㅋㅋ오냐”



  어젯밤 술자리를 끝내고 그가 수고롭게 청소한 탓에 험한 아침 풍경은 연출되지 않았다. 커피 한 잔을 진하게 탄 후 책상에 앉았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세 과목의 중간과제물을 완성해 제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채무자 박 사장의 방문을 아침 9시로 못을 박았다. 커피 [그루나루]에 가서 원두커피와 머핀을 시켰다. 박사장이 말했다.     


  “은행에서 18억은 나옵니다. 그런데 철거하려면 임차인의 보증금을 내줘야 하는데 그 돈이 없어서 부탁드리려고 왔습니다.”

  “은행에서 돈이 나온다고요? 18억 원 나와도 1순위 은행 대출금 11억 원을 갚으면 내 돈은 원금도 안 되네요? 그런데 또 5천을 빌려달라?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그가 마지막 말을 던졌다.    

 

  “5천을 빌려준다고 칩시다. 은행에서 대출이 안 되면 어떻게 할 거요?”

  “은행에서 대출은 나옵니다!”     


  박 사장이 말을 더듬으며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이에 그가 “알겠는데, 그래도 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요? 내 처지에서는 돈이 5천이나 더 들어간 거 아닙니까? 그러니 대출이 안 된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박 사장이 “어떻게 해 주시길 바랍니까?”라고 되물었다. “그것은 박 사장이 답을 해야지요.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라고 대답하고 일어섰다.           


  “대우동부전자써어비스입니다. 전자레인지가 수리되었습니다.”     


  고시텔 공동주방의 전자레인지 수리가 끝났다는 연락에 석촌역으로 가서 제품을 찾아왔더니 지하실에서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전자렌인지를 공동주방에 넣어 두고 사용하던 것은 지하 주방으로 들고 내려갔다.     


  “어머, 깜짝이야~”     


  [무빙디자인] 최 실장이 컴컴한 지하실에서 열풍기를 틀어놓고 셀카를 찍다가 쑥스러워 놀라며 “바닥이 마르지 않아 열풍기로 말리고 있습니다. 화재의 위험이 있어 고정 붙박이로 근무 중이에요.”라고 덧붙였다.      


  뒤이어 사장과 한 소장이 내려왔다. 방음 스펀지를 출입문에도 붙이라고 하자 “출입문에 붙이면 지저분할 텐데요”라고 말했다. 그러함에도 “그래도 상관없어. 넉넉하게 방음 스펀지 붙여”라고 말했고 점심은 이들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다.        


  

  [동서양 고전의 이해] 중간과제물은 독후감이다. 그가 선택한 책은 [털 없는 원숭이]였고 틈틈이 읽으며 인상 깊은 구절을 표시해 뒀었다. 첫 문장은 “어제 옥탑방에 여섯 남자가 모였다”로 시작하는 불꽃 타이핑이었다. 그렇게 A4 5장 분량의 구라가 텍스트로 만들어졌고 [사이버 커뮤니케이션]의 과제물도 쭉쭉 정리되었다.    

  

  점심을 [무빙디자인] 식구들과 먹은 후 [생명과 환경]의 과제물인 ‘기후변화와 그 영향’에 대해 글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표절’이 염려될 정도였다. 하여 과제물 작성을 마치고 표절 검사를 했다. 결과는 표절률 48%로 나왔다. 아마 인용문 때문인 듯하여 그대로 끝냈다.  

   

  중간과제물 3과목을 마쳤으니 큰 산을 넘었다. 그러니 당연히 보상해야 한다. 그래서 집으로 퇴근하기로 하고 여자에게 “오늘 퇴근한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여자는 부랴부랴 파김치, 시금치나물을 만들어냈다.      

  저녁 식사 후 맥주 한 병을 다 못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생리가 끊어지려나 봐. 보름에 한 번씩 흐르네~”

  “그럼 어때. 한 번 하는 거지.”

  “안돼. 씻는 것도 번거로워. 내일 아침에 하던지~”     


  그의 보상은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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