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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May 21. 2024

"사실 모든 것은 집착이야!"

[연재] 76. 이혼 52일 차

76. 이혼 52일 차          



 “사실 모든 것은 집착이야!”     


2014년 4월 21일 월요일 맑음  


  식탁에 앉아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읽느라 밤을 보내다가 샤워 소리에 멈추었다. 

     

  “원주에서 KPGA 3급 지도자 시험이 있어.”     


  골프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그에게 여자는 ‘내가 좋아하는 취미이니 지도자 자격증도 따고 싶다’라고 말했다. 남자가 골프를 싫어하든, 아니하든 자신의 취미를 인정하라는 경고다.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워하고 나오는 몸을 보며 ‘한번 넣어보자’라고 농을 걸었을 뿐이었다.  

    

  여자가 새벽길을 떠났을 때야 그가 늦게 잠에 빠졌다. 일어나 보니 딸의 등교 시간을 한 참 지난 후였다. 부랴부랴 일어나 딸을 깨웠다. 그러니 아침도 먹지 않고 학교에 갔고 그는 여자가 해 놓은 부대찌개를 데워 밥 몇 숟가락을 말았다. 


    

  잠실 빌딩으로 돌아와서 신분증과 도장, 판결문 등을 챙겨 서울북부지방법원으로 향했다. 주차장은 만차였다. 부동산 경매 입찰기일인 탓이었다. 2 중 주차하고 민원실 자원봉사자에게 판결문을 건네며 “복사 부탁합니다”라고 말했더니, “다섯 장 넘어가면 매점에서 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먼저, 검찰청에서 부탁한 재판서류 열람 신청하고 매점으로 가서 복사를 신청했다.    

  

  복사한 판결문 등 서류를 들고 법원 옆 검찰청을 방문했다. 출입은 검사 사무실에서 출입자를 입력해야 출입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경비원의 안내에 따라 내선 전화를 이용해 사무실과 통화를 했다.     

 

  검사실은 약간 정사각형의 방에 검사, 남자 수사관 3명, 경리를 담당할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 1명이 근무했다. 서류를 받는 수사관의 책상 위에는 채무자의 이름이 기록된 서류가 올려져 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검찰청을 나왔다.      



  법원으로 가는 길에 강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 수상레저 조종 면허 전문가와 공무원의 토론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농담하며 점심 약속을 잡았다.  

    

  늘 가던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었고, 옛날 드림랜드로 운영하던 부지를 공원으로 만든 곳에서 커피도 마셨다. 사월의 봄날을 만끽하는 연인들과 젊은 부부, 나들이 나온 중년 여성들의 풍경이 한가로웠다. 그가 사진을 몇 장 찍으려고 했으나 500mm 단렌즈는 원하는 프레임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몇 장 찍다가 그만두었다.      


  ‘좀 심한 것을 산 거 같아. 가까이서 찍을 수가 없네.’     


  그가 캐논 5D 카메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푸념했다. 그리고는 세월호 침몰과 작금의 사태, 그의 이혼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다.      


  “사실 모든 것은 집착이야. 돈, 명예, 사랑 등등 말이야. 나는 이미 많이 내려놓았으므로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랬다. 그가 빚을 진 인연이 있긴 한데 그것도 몰락의 길을 간다면 갚을 생각이다. 하지만 아직은 건재하기에 미리 걱정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빨간 벤츠 SLK 로드스터의 지붕을 열고 강 교수 사무실로 복귀했다. 그리고 잠실 빌딩으로 오는 동안에도 지붕을 닫지 않았다. 



  ㅇㅇ저축은행 조 과장이 전화했다. 안양에 건축 중인 빌딩을 담보로 건축비용을 대출받으려고 자료를 이메일로 보냈었다. 그러나 “서류가 열리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내가 가지고 갈까?”     


  그렇게 되어 다섯 시에 안양 공사 현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가 벤츠 SLK 로드스터의 주행 모드를 ‘스포츠’ 모드로 조작하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경쾌하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조 과장이 도착하기까진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에 건물로 들어가 이곳저곳 사진을 찍었다.      


  이윽고 조 과장이 지점장과 함께 현장에 도착했다. 지점장은 마흔 후반쯤으로 보였고 살집은 없었다. 그가 혼신의 구라로 “나에게 돈을 빌려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말하고 조 과장에게 ‘허가서’, ‘건축계약서’, ‘견적서’, ‘도면’ 등등 원본을 건네주었다.      



  아파트는, 낮에 외벽 실리콘 작업을 하느라 감지 센서를 건드려 세콤이 출동했다. 직원이 “내일까지 작업한답니다. 그러니 낮에는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딸에게 “내일은 오전에 세콤 하지 마셈.”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여자가 골프지만, 시험 치르느라 힘들었을 것이기에 저녁이라도 사줄 요량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은색 볼보 승용차를 찾았으나 역시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가 잠실 빌딩으로 핸들을 돌렸다.      


  얼마 후 여자의 전화를 받았다. “딸이랑 나가서 밥을 먹었어.”라고 말했다. 그는 배가 고팠으므로 아들이 휴가 나올 때 여자가 만들어다 준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익혔다. 고시원 공동주방에서 마지막 밥을 퍼 오고 새로 밥도 지었다. 두루치기와 밥, 상추쌈으로 차려진 저녁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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