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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Jun 06. 2024

"이혼 원인이 나에게 있는 거야?"

[연재] 81. 이혼 57일 차

81. 이혼 57일 차


          

“이혼 원인이 나에게 있는 거야?”     


2014년 4월 26일 토요일 맑음     


  빌딩 옥탑방 아지트 좁은 침대에서 두 육체가 부딪쳤다.

  두 번에 걸친 섹스를 했음에도 아침에 또 시작이다. 폭풍 같은 스피드로 사정을 향해 달린다. 그리고 샤워한 후 “설렁탕이나 먹으러 가자.”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빌딩을 나서서 방배동 [명가 설렁탕]으로 향했다. 그가 음식 타박은 하진 않으나 [명가]의 설렁탕의 맛이 좋음은 인정한다. 딸을 위해 한 그릇을 포장하고 다시 잠실 빌딩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마트에 들려, 지하 주방에서 쓸 그릇 받침대와 맥주 1박스와 깔루아, 보드카 등을 구매했다.      



  다시 대학로로 향했다. 미디어영상학과 스터디 학발회 사무실의 남는 의자를 구입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학생회 공 부회장이 먼저 도착했다. 길눈이 어두운 그는 근처를 몇 바퀴를 돌다 겨우 찾아 들어왔다. 하지만 출입문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여대표가 도착하지 않았기에 혜화동 언덕길에서, 봄날을 만끽하며 언덕을 오르는 어린 연인들을 한 시간이나 쳐다보며 시간을 죽였다. 그런 여 대표는 문을 열어주고 주차하러 가면 될 것을, 주차하고 오느라 또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니 그의 입에서 “증말~ 생산성 떨어진다”라는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의자는 그의 생각과 달리 접이식 의자였다. 접이식은 ‘행사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라는 생각이기에 비상용으로 준비하고 다시 구매하기로 했다. 이때였다. 공 학우가 KBS1기 탤런트라는 여학우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양주가 집으로, 세월호 사건으로 ‘촬영이 없어 놀고 있다’라고 말했다. 프로필은 상의를 거의 벗은 멋진 모습이었는데, 공 학우의 꼬심에도 “신천은 너무 멀어”라며 거절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 랭글러 루비콘을 주차하고 의자를 내려 창고로 넣었다. 그리고 주차장에 주차하기 위해 시동을 걸었더니 스타터 모터가 회전하지 않았다. 배터리 방전이었다. 테스터기로 전압을 측정했더니 5V를 표시했다. 당장 배터리를 구매하기 위해 잠원동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휴일’이라는 안내 음성이 나왔고, 용인의 지프 OXK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그가 늦게 도착한 이ㅇㅇ 실무 부회장, 공ㅇㅇ 학우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이ㅇㅇ 학우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 합니다”라며 총총히 사라졌다. 두 사람은 [육쌈냉면] 식당으로 들어가 냉면 한 그릇씩 먹었다. 바쁜 마음이 좀 진정될 때도 이때였다.      



  다시 빌딩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방송대 학생회장 직무 정지 및 탄핵을 위한 내용증명 작성을 시작했다. 회칙이나 규칙 따위는 매우 어려워하기에 학우에게 질문을 해 가며 작성해 이메일로 보내줬다.   


  

  랭글러 루비콘 앞 유리창에 “고장으로 견인 대기 중입니다.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이고 배터리 분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무게가 어찌나 무거운지 겨우겨우 드러냈는데, 몇 년 전 파워 보트 시동을 위해 꺼내려고 고생한 기억이 떠올랐다. 이어, 충전기를 가지고 내려와 충전을 시작했으나 허사였다. 그러던 중에 파워 요트에 쓰는 보조 배터리가 생각났다.     


  “부르르르-ㅇ”     


  점프했더니 시동이 걸렸다. 배터리 + 단자가 차체와 접촉할 위험이 있기에 주행은 어려울 듯했으므로 주차장 제일 안쪽에 주차했다. 그리고 인터넷에 접속해 랭글러 루비콘 배터리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80만 원이나 하는 가격에 놀랐다. 그러므로 당연히 호환되는 배터리로 바꿔야지 않겠는가? 배터리 교환 업소의 블로그 사진에서 정보를 찾아냈다. 완벽하게 단자 위치까지 호환되는 배터리는 델코 100A였다. 옥션에 접속해 8만 원을 결제하며 유선 마이크와 I자형 마이크 거치대도 주문했다.      



  다시 지하로 내려가 투명 접착테이프로 베이스 드럼을 고정하고, 못다 쓴 어제의 일기를 쓰려고 맥주를 홀짝이는데, 여자가 목소리를 한껏 깔고 전화했다.      


  “너무 보고 싶어~”     


  말끝을 흐리며 작업을 치는데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아니, 여자를 외롭게 하면 안 된다고 그의 친구 조르바가 말했으므로 일정을 급히 마무리했다.           



  “부아아-ㄱ”     


  이탈리안 레드 벤츠 SLK 로드스터의 광폭 타이어는 지면을 박차며 점이 되어 아파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먹고 싶은 거 있어?”라고 물었다. 여자가 “회나 사 오던지”라고 대답했다. 핸들을 좌로 우로 돌려 이마트 양재점에 도착했다. 구매할 것은 딱, 한 종류다. 모둠회와 연어회를 집어 들었다. 69,900원이었다.      



  여자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회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어제 거기(지하실 파티) 가는 것이 아니었어. 무빙(디자인)은 (이혼한 사실) 모른 줄 알았거든.”    

 

  여자가 서먹한 분위기를 느꼈음을 말하며, “(딸) ㅇㅇ가 이사하지 않으면 안 되냐고 물어.”라고 말했다. 또한,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혼했다’라는 사실을 말한 것을 두고 “당신은 참 입이 싸!”라고 몰아붙였다. 이에, 그는 “내 입이 싼 것은 내가 잘 알지. 그러나 말 못 할 이유도 아니기에 뭐라 할 것은 아니야”라고 말했다.      


  “내가 할 일거리가 없을까?”     


  여자는 자신에게 ‘시간이 너무 많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언가 일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그걸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시간이 너무 많고 행복해서 오늘의 사달을 만들었음에도. 그동안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녀봐.”

  “공부해서 뭐 하게.”

  “꼭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긴장감으로 느슨한 시간이 조여지는 효과가 있거든.”    

 

  그가 방송대 입학을 다시 권유했으나 거절했다. 그럴 바엔 ‘커피전문점을 하겠다’라는 의도를 내비쳤다. 그는 “당신이 사회와 오랜 기간 단절되어서 뭘 하기보다, 시간제 일이라도 하면서 세상을 익히다 보면 할 일들이 보일 거야.”라고 말했다.     


  “이혼 원인이 나에게 있는 거야?”     


  여자가 그에게 물었다. 그는 이번 이혼이 실패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여자에게 무엇인가 한 가지 정도는 각인시키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는 3년 후에 반복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 아직도 그것을 모르는 거야?”     


  그는 그동안 셔츠 한 장도 여자에게 세탁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아니, 세탁하고 다려주려는 노력이 없기에 다음날 셔츠를 스무 장을 더 맞췄고, 세탁은 세탁소를 이용했다. 또 8개월 전 어느 날, 그의 모든 짐들을 빌딩 옥탑방 아지트로 옮겨버렸었다.      


  남자는 그날부터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그러니 ‘이혼’이란 것은 그저 서류를 정리하는 것에 불과하단 것을 여자는 몰랐다. 아니 알았어도 자신의 안락한 기득권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기에 스스로 즐거워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다가 이제야 ‘이혼’과 함께 다가오는 주거 문제, 소비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여자는 ‘이혼하고 싶긴 하지만 지금 누리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을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가 “우리는 이미 이혼에 합의했고 지금은 단지 시간을 보낼 뿐이다.”라고 다시 한번 확고하게 정리하자 여자가 말했다.     


  “알았어. 6월 3일 이후에는 우린 볼 일이 없는 거야!”     


  여자의 말에 “당연하지. 그 정도는 잘 알아!”라고 동의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아파트를 걸어 나와 다가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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