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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Jun 21. 2024

에로영화나 제작해 볼까?

[연재] 88. 이혼 64일 차

88. 이혼 64일 차    


      

에로영화나 제작해 볼까?     


2014년 5월 3일 토요일 맑음       


  아침을 먹고, 아침이라고 해 봐야 밥과 상추, 참치 캔이 전부이지만. 

  지하 홀로 내려갔다. 커피 한 잔을 놓고 노트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받는 사람은 아들이었다. 아들에 대한 사랑과 격려의 마음을 담아 쓰다 보니 두 장이 되었다. 그가 아이들에 대하는 태도는 다른 아빠들처럼 자상하거나 알뜰하지는 않다. 그러나 한 인격체로의 자아는 존중하고 지원하는 편이다. 또 타인의 시선에 대해서도 의식하지 않고 키운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편지 또한 “인생을 살아보니 성실함과 꾸준함이 성공 비결이더라.”라는 식이다.      


  점심때가 조금 넘어 단편영화 제작 [미즈] 팀이 도착했다. 그중에 한 남자가 끼어 있었는데, 방송대 미디어영상학과 촬영지도 감독인 장ㅇㅇ이었다. 뜻밖의 방문에 그가 반가워하며 악수를 청했다. [미즈]는 ‘도박의 폐해’라는 주제의 응모작을 촬영하는 중으로 홀에서 실내 촬영을 하러 온 것이다.      


  물론, 그의 관심은 딱 하나였다.     


  "여배우 예뻐?"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고구려 영양왕 9년 수나라가 30만 대군을 이끌고 왔다가 대패하고 열에 하나, 또는 두 명이 돌아갔다는 역사스페셜 같은 소리였다.     


  "여배우 없는데요."     


  이런 닝기리! 이때였다. 맥주와 땅콩을 사 와서 술집 세팅하던 지훈이 말했다.     

 

  "나 주연배우 맞어?"     


  그러고 보니 저쪽에서 재영이도 스스로 분장하며 "우린 다 알아서 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이어 야외 촬영이 이어졌다. 무료한 그도 이들의 옷 보따리를 들고 따라나섰다. 촬영은 한강 잠실 대교였다. 그러함에도 촬영감독 덕분에 긴급 섭외한 여배우를 살짝 보긴 했다. 얼굴이 아주 작고 예뻤는데 나이는 무려 서른세 살이랬다. “어디 살아요?”라고 묻는 물음에는 “2년 전엔 신천에서 살았고 지금은 신사동 친구 집에서 얹혀살아요.”라고 대답했다. 장 감독이 슬슬 작업 멘트를 날릴 때도 이때였다. 물론, 영화출연 섭외 목적이었다.      


  촬영팀이 한강 야간 신을 촬영하러 간 사이 장 감독과 뒤풀이를 준비하려고 [새마을 시장]으로 향했다. 메뉴는 치킨과 족발, 소주와 맥주였다. 촬영팀이 돌아오고 파티가 시작되었다. 그때 장 감독이 말했다.     


  “요즘은 전부 IP 영화로 갑니다.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감독의 설명에 의하면 과거 에로비디오처럼 KT인터넷 등에 에로영화 콘텐츠를 구하는데 ‘시나리오가 괜찮으면 1억 5천만 원까지 지원해 준다’라는 것이다. 그 방법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직접 제작해 배포하는 것인데 ‘1억 원 투자하면 8억까지 뽑는 것’이 있다는 것. 에로배우를 구하기 힘들면 ‘대역 배우를 쓰면 된다’라는 팁도 알려주었다. 하긴, 하루에 다 조지면 촬영될 일이었다. 얼굴값 좀 하는 배우를 저렴한 출연료로 벗기기 힘드니 말이다. 그가 말했다.      


  “내가 비열한 경매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그거 땡깁니다. 조만간 한번 뵈어요.”     


  술자리는 9시경 파했다. 그의 가슴 저 구석에서는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라는 불꽃이 타오를 때도 이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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