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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Jun 29. 2024

"안 올 줄 알았는데, 왔네?"

[연재] 92. 이혼 68일 차

92. 이혼 68일 차     


     

 “안 올 줄 알았는데, 왔네?”     


2014년 5월 7일 수요일 흐리고 오후 늦게 비     


  일반인들의 긴 연휴가 끝났다. 

  폐인처럼 빌딩 근처를 서성이던 그도 활기를 찾으려고 세차를 시작했다. 은색 랭글러 루비콘은 여름이면 히치 리시버에 파워 보트가 실린 트레일러를 연결해 견인하고 다녔으나 올해는 임무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주인이 활기를 잃은 탓에 애마 또한 움직이지 못했다. 어쨌거나 그가 세차를 막 끝내고 정리하는 사이 빌딩 매매 문제로 어제 방문한 신 부장이 다른 남자 한 명을 데리고 찾아왔다.    


  

  세 사람은 지하 홀로 자리를 옮겼다. 남자는 자신을 ‘삼성동 아이파크 상가 분양 팀장’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빌딩매매 자료를 건네며 브리핑하고 건물을 보여준 후 “사장님이 쓰는 옥탑방을 구경해야 합니다.”라는 신 부장의 뽐뿌에 옥탑방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후, 상가 분양 팀장이라는 남자가 “건물을 파는 이유가 여러 가지 이겠지만, 이 빌딩은 정말 예쁩니다. 건축주의 안목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그가 “사실 제2 롯데 월드가 완공되어 유동 인구와 관광객이 늘어나면 이 건물은 통으로 게스트하우스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지하도 그런 공간으로 꾸민 것이지요. 그때가 되면 꽤 돈이 될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파는 이유는 ‘이민’ 그런 거짓말 필요 없고요. 그저 꾸미는 것을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 그렇습니다. 1년 동안 36억 들여 고생했다면 3, 4억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도 제 연봉이 그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하하, 그럼요. 고생한 거 인정하는 가격이네요. 이렇게 가격을 딱 정하시는 분들은 그럴 이유가 있더라고요.”라고 맞장구쳤다.     



  그가 제시한 빌딩의 매매가격은 42억이다. 신 부장 일행이 돌아가자, 그는 일정에 없음에도 서울북부지방법원을 다녀오기로 했다. 싹수없는 채무자 놈이 ‘근저당권 무효소송’을 제기했으나 채권자인 그가 승소했으므로 판결 확정 증명원을 발급받아 중지된 경매를 속행시키려는 것이다. 시간이 법원 점심시간과 겹칠 것 같아서 강 교수 사무실을 찾았다.      



  강 교수는 일찌감치 밥을 먹은 뒤였다. 그러함에도 “형님, 어디로 가시게. 식사도 하셔야 할거 아녀?”라고 물었다.      


  “백화점이나 가서 먹자.”     


  주차하기 편하고 음식 깔끔한 미야리 현대백화점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았다. 식품 코너 점원이 “3개에 만원입니다.”라는 소리에 캘리포니아 롤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식사 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강 교수를 사무실에 내려준 뒤 법원으로 향했다.    

  


  “송달, 확정 증명을 발급받으러 왔습니다.”     


  5백 원, 인지 두 장을 붙여 법원 공무원에게 제출하고 발급받은 증명서를 첨부해 ‘보정서’를 접수했다. 그러니 한 달 후쯤에는 채무자의 마지막 재산인 빌라는 경매로 날아갈 것이다. 또한, 검찰로부터 ‘무고죄’, ‘소송사기’로 처벌받을 것이다.         


  

  지하 홀에서 베드로를 만나 인천 효성동 채무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베드로가 “건축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공사를 하고 있다고요? 채권자에게 언제든지 돈만 주면 경매가 취하되는 줄 아나 보네요?”라고 말하며 [법무법인 00]의 사무원 선무에게 근저당 설정 서류를 팩스로 보내고 방송대 스터디 참석을 위해 길을 나섰다.         


  

  스터디엔 4명의 학우가 참석했다.      


  “형님, 1학년들이 우리랑 밥 먹겠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때, 그는 여자로부터 “노인정 행사하고 남은 음식을 싸 왔는데 먹으러 와.”라는 전화를 받았으므로 집으로 가려는 참이었다. 그러나 “치킨 드시고 가세요.”라는 어린 학우들의 성화에 눌러 낮아 치킨에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1학기 기말시험이 끝나고 바로 영상제 출품작 영상을 촬영할 거야.”라고 말했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역을 나와 아파트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갈 때였다. 독서실 앞에서 누군가와 전화 통화하는 딸을 만나 함께 집으로 향했다. 여자가 현관문을 열어주며 “안 올 줄 알았는데, 왔네? 막걸리 마시고 있었어. 항정살 구워줄까?”라고 반갑게 말했다. 그가 “다이어트 시작했는데 내일부터 하지 뭐.”라고 말하며 식탁에 앉았다.      


  술잔을 기울이다가 말했다.


  “전세를 살 거야 말 거야? (전세로 살지 않겠다면 재산 분할금을) 대출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지 못했으니 빨리 결정해라. ㅇㅇ은행에서 대출해 주려고 한다.”     



  낮에 ㅇㅇ은행 조 과장의 전화를 받았다. 아파트를 담보로 ‘12억 5천까지 빌려주며 이자는 12.5%’라고 하더니, 다시 ‘이자는 10%대로 낮추고 대신 취급 수수료를 1,5% 달라’라고 말했다.      


  안양 빌딩 공사비 중 3억 정도만 지급하고 잔금은 준공 후 금융권 대출을 일으켜 지급하기로 계약서가 되어 있다. 즉 3억만 빌리면 되는데, 이 금액을 빌리기 위해 아파트 선순위 대출금 6억을 갚아야 하므로 9억의 채무로 늘어난다. 게다가 이자와 취급 수수료까지 합해 5천만 원 정도를 뜯긴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공사비를 늦게 지급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여자가 방배동 아파트를 3억에 살지 않겠다고 하면 역시, 그 돈을 여자에게 지급해야 하므로 대출은 불가피했다. 그래서 여자에게 ‘전세를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딸에게 환경의 변화를 주지 않기 위해 시험 끝날 때까지는 3억에 살 거야. 대신 뭘로 보증할 건데?”

  “보증? 근저당 설정할래? 아님, 총알 하나 줄까? 내가 보증이다.”     


  이렇게 전세금에 대해 합의했으므로 이혼 시까지 여자에게 지급할 돈은 미뤄졌으니 공사비는 인천의 채무자가 돈을 가져오면 해결될 것이었다. 그러니 다음 주엔 어느 것이든 윤곽이 드러날 것 같았다. 그러므로 기분이 좋아진 그들은 길고 깊은 섹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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