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카라동물영화제 <그만 좀 하소>와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을 보고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은 경마장에서 시작해, 비슷하게 끝난다. 경주마에 돈을 거는 게임을 즐겨하던 주인공은 끝내 스스로 게임 속의 말이 되고 만다. 누군가는 때론 깔깔대며, 또 때론 숨을 죽이며 이들의 게임을 지켜본다. 주인공이 뒤늦게 “우리는 말이 아니야”라고 울부짖어도 소용없다. 피가 튀기면 튀길수록, 게임은 재밌어진다.
영화 <그만 좀 하소>는 소싸움 경기장 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소 주인들은 소를 ‘사랑’한다면서, 소를 싸움판으로 밀어 넣는다. 격한 몸싸움 끝에 살이 떨어져 나간다. 주인은 경기가 끝나고 소의 상처를 소주로 대충 씻어냈다. 경기장의 다른 한쪽에선 소싸움 ‘행사’ 주최 측이 잘 발라낸 살 조각을 굽고 있다. ‘축제’를 더 제대로 즐기게 하기 위함이다. 이곳에는 소싸움의 문제를 지적하는 활동가도 모습을 드러낸다. 행사 관계자들과 도박꾼은 활동가를 향해 언성을 높인다. 소싸움이 사람 싸움된 것이다.
영화를 보고, 오히려 평소처럼 ‘동물 학대를 멈추자’고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싸움소를 돌보는 주인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소를 채찍질하고, 못살게 구는 주인의 모습이 나왔다면 오히려 좀 더 쉬웠는지도 모르겠다. 비난하고 비판하면 되니까. 하지만 싸움소 주인은 소를 보고 “사랑스럽고, 새끼만큼 예쁘다”라고 말하며 누구보다 진심으로 연신 어루만졌다. 따뜻한 눈빛으로 소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던 그는, ‘동물학대’ 이야기를 듣고서는 “먹고살 만하니까 이런 얘기를 하는 것 아니냐”며 갑자기 목에 핏대를 세웠다. 200만 원 상금을 든 그의 미소에 이빨이 반짝였다.
그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싸움에 휘말린 것은 소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가 그랬듯 사람들도 싸움판에 떠밀린 것 아닐까. 제 새끼만큼 예쁘다는 소의 살이 찢겨나가게 싸움을 유도해야 하는 그의 삶, 소싸움에 돈과 희망을 걸고 손에 현금과 우권 종이를 꽉 쥔 채 동물권 활동가에게 언성을 높이는 도박꾼들의 삶. 모두 자본주의라는 큰 게임을 벗어날 수 없는, 그 안에서 또 치열하게 싸우는 싸움소 같았다. 죽지 않기 위해 게임 위에서 치열하게 살아남는 싸움소 ‘박창’과 그를 사랑한다면서 싸움에 붙이는 그의 주인의 삶이 얼마나 다른 걸까.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이런 싸움판을 만들어 싸움을 붙이고, 이를 통해 돈이나 권력을 버는 사람들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달해서야 등장하는,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넥타이를 점잖은 그들이다. 허공에 대고 ‘법적 절차를 다 거친 것’이라고 우물쭈물 말해대는 그들.
2021|한국|74분|다큐멘터리|전체 관람가
감독 심영화 (SIM Younghwa)
시놉시스
고기가 되지 못한 소들의 이야기. 2002년, 사람들은 소를 싸움시키는 행위를 전통이라 칭하고 합법으로 규정했다. 그와 동시에 각종 소싸움대회를 열고 도박장도 지었다. 사람들은 거대한 원형 경기장으로 소들을 끌고 와 싸움을 시킨다. 우권은 불티나게 팔리고 사방에서 팡파레가 터진다. 그 가운데에서 사람 아닌 누군가는 피를 흘리고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듯하다. 끝없이 이어진 트럭 위에서 수줍게 고개를 내민 소들이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건넨다. “그런데, 내 이야기도 좀 들어주면 안 될까?” (출처)
프로그램 노트
<그만 좀 하소>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소싸움’ 산업의 이면을 낱낱이 보여준다. 소싸움 경기 후 피를 흘리며 대기실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소들, 이런 소에게 고삐를 조이며 (그러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며) 훈련을 시키는 조련사, 소싸움에 돈을 거는 도박꾼들, 소싸움 산업을 육성하려는 지역 정치인들, 그들과 유착된 축산업자들. 또 한편으로, ‘소싸움’ 산업의 법적 모순을 짚어내는 동물권 변호사들, 소싸움 반대운동을 하는 평범한 시민들까지.
소싸움은 과연 전통인가, 도박인가, 산업인가, 동물학대인가? 감독은 이 논쟁적인 이슈에 어떤 주장을 하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개입하지 않고 차분하게 현장을 지켜보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 카메라가 가장 자주 향하는 곳은 소의 눈동자이다. 커다랗고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는 카메라는, 인간이 이 순한 동물에게 가혹한 싸움을 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지 묻는 듯하다. ‘응시’는 ‘주장’보다 힘이 세다.
고정불변의 문화나 전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의 모든 문화와 전통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바뀌어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노예제도, 순장, 마녀사냥 같은 잔인한 관행들도 전통과 문화라는 이유로 존속해야 할 것이다. 영국의 여우사냥은 귀족과 왕족들의 문화였지만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금지되었고, 스페인의 투우도 동물보호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카탈루냐 지역 등에서 금지되었다. 한국의 소싸움이 과연 한국의 진정한 전통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일은 중요치 않다. 한국이 윤리적인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동물의 본성과 상관없이 가혹한 싸움을 시키는 것이 과연 21세기에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존속해야 하는가에 질문하고 답해야 한다. (황윤) (출처)
연출의도
추석 무렵 어렴풋이 들려오던 소싸움경기 소식.
나는 소싸움경기를 실제로 구경하기 위해 청도에 들렀다.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우매한 순정이었던 걸까.
거대한 원형 경기장 속 끝도 없이 펼쳐져 있던 우권 매표소.
싸움을 찍는 중계 카메라들과 그 모습을 배당률과 함께 보여주던 거대한 LED 화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도망치는 소와 그 소에게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
작은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를 거칠게 막아선 검은 옷의 보안요원들.
그것이 내가 처음 본 전통소싸움경기장의 모습이었다.
사실 별 관심 없었던 소싸움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탓에 전통문화엔 별 흥미가 없었고 동물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싸움소의 눈물 맺힌 눈망울을 본 순간
검고 깊은 눈망울에 투영된 우리네 모습과 마주쳤다.
사람의 전통문화를 이어가기위해 소들은 싸우고 우리는 즐긴다.
소싸움이 전통문화라는 사람들과 동물학대라는 사람들이 경기장 안팎에서 갈등을 이어나간다.
어느덧 소싸움경기장은 소들만 싸우는 곳이 아닌 사람도 싸우는 곳이 되었다. (출처)
제4회 카라동물영화제
온라인 상영 기간 : 10/23(토) 10:00 ~ 10/31(일) 23:59
온라인 상영관 : purplay.co.kr/kaff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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