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다큐멘터리 영화 <66미터>와 해수면 상승
서핑을 좋아한다. 아찔한 파도 위를 걷는 기분이 좋다. 가끔 파도에 잡아먹혀 짠물을 잔뜩 먹을 때는 일순간 서러워지지만, 어쩌면 그 맛에 자꾸만 서핑을 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그란 입과 두 콧구멍이 없이는 1분도 살 수 없는 영장류임을 느끼고, 10초라도 발끝에 땅이 닿지 않을 때 느껴지는 그 아득한 공포심, 고생고생 개고생한 후 살기 위해 열량을 잔뜩 섭취하는 그 원초적인 감각이 좋다. 밤에도 불이 꺼질 일 없는 허영심 가득한 도시에서는 "인간 참 별거 아니네"하는 그 겸손함이 그렇게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맨발로 딛고 선 파도 위 서핑보드에서 자꾸만 넘어지는, 자연 속에서 허둥대는 내 모습이 좋다.
그런데 요즘엔 바다를 가면 한없이 두려워진다. 나를 적당히 집어삼키고, 또 적당히 해안가로 데려다주던 파도가 점점 두려워진다. 나를 집어삼키고, 영영 내뱉어주지 않을까 봐.
처음 바다 수영을 하러 갔을 때가 생각난다. 어느 깊이까지 걸어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종아리가 쥐가 나도록 까치발을 들고 바닷물 속을 총총 걸어보았다. 바닷속 모래는 석유로 만든 아스팔트 바닥처럼 단단하지 않았고 어디는 높았다, 또 어디는 낮았다. 언제 바닥이 푹 꺼질지 몰라 턱 끝을 하늘로 쳐들었다. 바닥이 푹 꺼졌다. 순식간에 짠 물이 입과 코, 눈으로 밀고 들어왔다. 캑캑댈 수도 없었다. 몽글몽글 소리와 기포를 내었으나 바닷물은 내 신음마저 삼켰다.
발이 바닥에 살짝 닿은 곳에 겨우 섰다. 코끝까지 어른거리는 시커먼 바닷물이 눈앞에서 출렁거렸다. 부지런히 발을 육지 쪽으로 내디뎠다. 걸어 나오다 바닥이 꺼지면 눈을 질끈 감고 숨을 참았지만, 숨을 길게 참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이 아슬아슬하게 인중에 걸쳐 코끝에서 철렁이면 다행이었다. 1mm만 차올라도 물은 콧속으로, 기도를 거쳐, 내 폐를 잠기게 할 터였다. 딱 1mm만 차올라도 말이다.
‘퀸스 방향 1, 2, 3, 4, 5, 6, 7, N, R, S, Q, W, V, F, L, J 노선 전철 운행중단’
어린 시절, 과학 시간에 사막의 모래는 열을 빨리 받고 또 빨리 식는다고 배운 적 있다. 반면 바다는 열을 느리게 달아오르고, 또 아주 천천히 식는다고 했다.
그런 바다가 변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100년간 해수면이 60cm 오른다는 전망에 따라 8조 원짜리 바닷물 차단벽을 설치했지만, 2020년 침수됐다. 침수벽 따윈 우릴 보호하지 못한다. 바닷물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빠르게 차올라 침수벽마저 삼켰다. 지구 곳곳의 삶은 이미 턱 끝까지 물이 차올랐다. 우리는 숨을 오래 참을 수 없고, 보글보글 거리며 숨이 끊기기까지 1mm면 충분하다.
How can we protect outselves against the sea?
바다로부터 우릴 보호할 방법은 무엇인가?
해수면 상승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 <66미터>의 첫 문장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바다로부터 살아남을 방법을 궁리해야 하다니. 바다의 해수면을 올려놓은 것도 우리고, 그로부터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도 우리라니. 참 안타까운 꼴이다.
해수면 상승은 지구온난화, 지구 가열화, 기후위기보다는 확실히 인기 없는 주제다. 1년에 해수면이 2mm 오른다는 말에, 애걔? 겨우 2mm? 하는 반응이 나올 게 뻔한 탓이다. 우리가 애걔? 하는 것은 해수면이 오르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2100년에 이르면 해수면이 66미터까지 더 오를 수 있다. 그린란드와 남극대륙이 녹으면, 그 빙하가 바다로 녹아들 테고 그 결과에 따라 앞으로 닥칠 위험은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우리는 어디까지 대응하고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까?
① 파도가 더 세게 친다
해수면이 오르면 파도는 훨씬 더 강하게 몰아친다. 더 깊은 물의 움직임과 힘을 받기 때문인데, 인간이 설치한 방파제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 속으로 강력한 파도가 밀고 들어온다. 그럼 홍수는 일상이 된다. 수백 년간 천천히 변하는 기후를 토대로 일상생활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생활터전은 빠른 속도로 무너질 테다. 그동안 희생은 누구의 몫이 될지 뻔하다. 돈 없고 힘없는 종이다.
② 해일이 더 잦아진다
2012년, 허리케이 샌디가 미국 동부를 휩쓸며 지하철은 한순간에 중단됐다. 과학자들은 이런 허리케인이 통계상 '100년에 한 번'온다고 하는데, 100년 안에 죽을 거니 안심하기엔 이르다. 이 통계에는 점점 오르고 있는 해수면이 허리케인을 더 강력하게, 더 잦게 만들고 있다는 변수가 빠졌다.
③ 육지가 점점 좁아진다
수면이 1cm만 상승해도 바다는 14cm 팽창한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어 바다 온도가 더 높아지면, 팽창하는 속도는 더 빨라진다. 그만큼의 육지가 물에 잠기는 거다. 서로 영토를 지키려고 그렇게들 핵무기까지 동원해가며 싸우면서, 왜 바다의 범람을 두고는 군대 병력 모으듯 엄중하게 막지 않는 걸까.
영화에는 최악의 해수면 상승을 겪고 있는 인도네시아 페칼롱간 지역에 사는 주민 이야기가 나온다. (페칼롱간은 매해 20cm 넘게 해수면이 오른다. 해수면이 오르고, 땅 기반은 가라앉기 때문이다. 물론 구글에 페칼롱간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는 ‘특가호텔 예약’뿐이다.) 그는 5년마다 50cm, 최대 1m까지 집 바닥, 지반을 올리는 공사를 하고 있다며 집을 소개했다. 바닥을 너무 올려서, 천장에 자꾸 머리를 부딪친다고 말했다. 기후 위기, 해수면 상승의 두려움을 호소하거나 해결에 목소리 높이는 대신, 집 공사를 택한 거다. 불에 타올라 목재가 뚝뚝 떨어져 내리는 집이라면 공사하며 살진 않을 텐데, 물이 차오르는 그곳의 사람들은 여전히 ‘잘’ 살아갔다. 해수면 상승은 실제 겪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만큼 무디게 다가온다. 그렇게 천천히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삶을, 오랜 이야기가 깃든 거리를 잃어간다.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100년? 200년? 그때까지 겨우 버틴다 해도, 그다음에는?
영국은 이미 일부 지역에 침수 대비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독일은 영국과 달리 연안 보호가 헌법에 명시돼있다. 3700km에 달하는 전국 연안이 무조건 보호받는다. 하지만 독일 정부라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헌법에 명시된 대로, 사람들을 공평하게 얼마나 지킬 수 있을까.
수천 년 동안 우리는 해수면에 대한 걱정 없이 살아왔다. 과학 시간에 배운 그 진부한 사실, 메소포타미아·이집트·인더스·황하 4대 고대 문명이 공통적으로 큰 강 하구 주변에서 탄생했다는 것. 과학자들은 인류 문명은 안정된 해수면 덕분이라고도 말한다. 진부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맞는 말, 자연 없이는 인간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