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호소와 안락사, 제4회 카라동물영화제 | 영화 <보호받는>
영화 <보호받는>은 보호소를 오고 가는 여러 동물을 기록했다. 사랑스러운 가족에게 사랑을 받으며 떠나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인간이 정한 ‘기준’에 미달해 죽임을 당하는 동물도 있다. 사랑받거나 죽거나. 둘 중에 딱 하나. 가운데는 없다.
죽음에 있어서, 불행 중 다행이라는 표현이 유효할까. '개죽음'은 아니고 '윤리적인 죽음'이니까 괜찮은 건가. 안락사, 불치의 중병에 걸린 등 이유로 생명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생물을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행위다. 그런데 궁금하다. 죄 많은 인간은 왜 다른 생명 앞에서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하는가. 인간이 정한 몇 가지 기준은 왜 한 생명의 판단 유지에 대한 근거가 되는가.
그렇다고 그들이 보호소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좀 나았을까? 영화 <보호받는>에서 나와 스크린 너머로 눈 마주쳤던 그 생명들이, 인간이 정한 '보호'소에 잡혀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다 이내 포기했다. 더 이상 자연의 섭리대로 살 수 없게 만들어진, 지극히 인간 그리고 차 중심의 도시 한복판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동물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가늠하기 어려웠다.
부단히 도시 사이사이를 도망치다 시속 200km의 차에 텅 부딪혀 차디 찬 아스팔트 위에서 피를 흘리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건 아닐까. 말을 잘 듣는다는 공통된 '특성'이 인간의 눈에 띄어 일평생 촘촘히 가로막힌 철장 안에서 매일 같은 풍경만 바라보고, 몸 이곳저곳에 주삿바늘을 찔리며, 같은 풍경만 바라보다 죽음을 맞이하는 실험견이 되는 건 아닐까. 차라리 보호소 안의 안락한 죽음이 나으려나. 어떤 과학과 통계학 혹은 언어학의 발전이 있다 해도,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려줄 순 없다.
사랑을 주거나, 아니면 죽이거나. 생각해보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귀엽고 예쁘다는 이유로 산에서 도시로, 외국에서 국내로 들여와놓고는 '외래종', '유해종'이라는 이름을 붙여 가며 생명을 학살하기를 반복하는 우리 아니었던가. 사랑한다면서 죽이는 일도 있다. 자연과 '비슷'하게 환경을 꾸려두고 자연에서 살아가던 동물들을 산 채로 데려와 감옥에 가둬두는 것. 그곳에 가둬두고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당신 혹은 당신 친구의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가 안락한 반려동물용 침대에서 잠드는 이 순간에도, 틱톡에서 귀여움을 뽐내며 백만, 천만 좋아요를 받는 순간에도, 동물을 취미처럼 죽여온 인간의 유구한 역사는 계속 진행된다.
영화 <보호받는 Sheltered 2020> 시놉시스
네덜란드 동물보호소에서 인간과 동물의 애정 어린 유대감은 하루하루 시험에 빠진다. 반려동물은 삶의 동반자이자, 사람들에게 점점 더 많은 걸 요구받는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개, 고양이, 토끼들은 버려지고 보호소에 들어온다. 열정적인 직원들과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은 동물이 새로운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세심히 보살피고 사회화 교육을 진행한다. 하지만, 공격적인 성향의 개를 두고 보호소 사람들의 고민이 깊어진다. (출처)
프로그램 노트
동물보호소에서의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극과 극이다. 평생을 함께할 가족을 만나는 곳이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가족이 될 수 없다는 불편한 마음을 확실히 드러내는 장면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러한 이별에는 파양과 유기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언제나 인간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보호소 동물이 가족이 되는 과정에서도 인간은 선택한다. 동물이 아프지 않은지, 털이 긴 귀여운 동물이 있는지, 자주 짖지 않는지, 모두에게 친절한지를 묻는다. 잘 맞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필요한 절차일 수 있지만, 질문들을 모두 모아놓고 보면, 인간이 동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 저절로 드러나 버린다. 동물보호소의 현실은 반려동물과 사람의 관계에 관한 질문 그 자체가 된다. <보호받는>의 네덜란드 동물보호소 직원들은 보호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질문한다. 동물을 잘 돌볼 수 있는지, 동물을 왜 파양하려는지, 동물을 학대한 건 아닌지. 그들은 동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동물을 대신하여 묻고, 동물에게 불리한 현실과 싸워나간다. 보호소는 해피엔딩만큼이나 절망할 순간도 많지만, 활기를 잃지 않는다. 보호소 사람들이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동물이 있기 때문이다. 보호소에서 누가 누구를 보호하는가? 각기 다른 위치에서 보호받는 존재들의 연대와 절망이 보호소에 있다. (권나미)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