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워싱과 환경위장주의를 넘어선 기만
인스타그램에서 추천 콘텐츠로 한 환경 인플루언서의 포스팅이 떴다. 플로깅을 하는 밝은 표정의 인플루언서였는데, 화장품 회사 키엘에서 '키엘 플로깅 키트'를 소개하고 있었다. 키엘 플로깅 키트...? 체리향 비빔밥만큼 이상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플로깅'은 도시 곳곳을 걷거나 뛰며 보이는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다. '키트'는 특정한 활동을 위한 도구 장비, 세트 등을 가리킨다. 플로깅 키트, 말 그대로 플로깅을 할 때 쓰라고 만들어진 키트다. 기후위기와 폐기물 문제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며, 기업에서도 이런저런 친환경 제품을 내고 있는 것이다. 화장품을 만드는 키엘 입장에서는 이런 키트를 내며 플로깅 등 환경 보호 활동을 하는 사람을 서포트하고 싶었으리라.
블로그나 SNS를 찾아보니, 어렵지 않게 후기를 볼 수 있다. ESG 사회 공헌 활동의 일환의 상징답게 갈색 종이 박스로 곱게 포장돼있고, 그 안에는 플로깅 에코백 + 장갑 + 다회용 마스크 + 마스크 커버 + 자외선 차단제가 들어있다. 플라스틱 비닐만 치운다고 환경에 좋은 것이 아닌데, '친환경'인지에는 큰 의문이 든다.
플로깅은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젊은 세대의 제로웨이스트 운동과 함께 유행처럼 시작됐다. 내 피드에서도 '플로깅'이라는 해시태그가 종종 등장한다. 까만 단체복을 입고 나이키 러닝 클럽 앱으로 달린 거리를 찍고, 퇴근 후 도시 런을 하며 보이는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처음에는 이런 흐름이 반가웠다. 몇몇 과격한 '환경운동가'의 실천이나 운동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재미와 멋까지 더한 플로깅이라고 생각했다. 산을 찾는 '밀레니얼'들이 많아지며 등산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얼마나 멋지고 힙한가.
젊은 사람들이 움직이니, 기업들도 조금씩 바뀌는 듯했다. 패스트패션의 선두주자로 불렸던 SPA 브랜드들에서 '페트병을 이용해 만들었다'며 SUSTAINABLE 라벨을 단 옷들을 내기 시작했다. 물론 석유화학으로 만든 옷이 95%라면 폐자원을 활용해 만든 옷은 5%도 안 되는 꼴이었겠지만, 그럼에도 '그린워싱'이어도 좋으니 더 많은 기업이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 해결에 서로 뛰어들길 바랐다. 기업이 움직이면 뭔가 바뀌지 않을까 생각했다.
'플로킹 키트'라는 기이한 혼종을 보고 나니, 아차 싶다. 그린워싱, 위장환경주의를 넘어섰다. 좀 오버해서 말하면, 전 세계 정부가 모여 긴급하게 대응하는 기후위기라는 과학적인 사실에 대한 부정이자 기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환경운동의 일환인 '쓰레기 줍기'라는 소박하고 일상적인 행위마저 자본주의화된 느낌이랄까. 빨대 하나를 빼놓고 '빨대를 뺐으니 우리 제품이 친환경이에요! 많이 사주세요!' 라는 플라스틱 입간판을 만든 식품회사보다 더 나쁘다.
쓰다 보니 두서없이 말이 길어졌다.
한 줄 요약: 키엘... 더 잘할 수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