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명언, 스타트업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드디어 찾았다 내가 퇴사한 이유

by 이소연


1루에 100명을 보내고 2루에 1000명을 보내도, 점수는 0점?


책 <기획자의 독서>에서 나온 인터뷰 인용 구절에 무릎을 탁 쳤다가, 곰곰이 생각해보고 도로 거두기로 했다.


p.116 "처음부터 이기려는 마음으로 경기를 구상하면 십중팔구 계획이 틀어진다. 그보다 어떻게 하면 매 타자가 1루까지 살아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그다음이 보이는 법이다."


개인의 삶에 빗대면 참 공감 가는 말이다. 100만 유튜버가 되기 위해 첫 브이로그 영상에 온 영혼을 갈아 넣다 1년째 올리지 않는 것보단, 뭐라도 하나씩 올려보는 게 낫다. 완벽하게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것보다, 뭐라도 읽고 뭐라도 쓰는 게 낫다.


그러니까 내 삶이 경기고, 내가 야구선수라면 나는 1루까지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몸으로 부딪쳐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매 타자를 1루에 살아남게만 하는 전략은 아찔하다. 특히 이미 1루까지 선수를 보내 놓은 회사,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스타트업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파운더가 내두른 배트에 깡 하고 날아간 공은 커브를 그리며 안타를 맞았고, 그 사이 초기 멤버들은 1루에 안착했다.


그러니 회사 운영이 경기고 대표나 리더팀이 선수라면, 그땐 이 ‘명언’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조금 달라져야 할 것이다. 1루까지 선수를 주구장창 내보내는 것만으로는 J커브를 그리는 지표도, 폭발적인 성장도 이룰 수 없다.


1루로 사람을 내보낸 후에는 아마 다음과 같은 고민이 필요하다. 어떤 조직원이 빠르게 도루하며 2루까지 나아갈 수 있나? 홈런을 뻥 치고 점수를 쭉쭉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역량 외에 팀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근근이 1점을 낼 게 아니라, 압도적으로 승리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한 스타트업의 초기 멤버로 있으면서, 나는 여느 스타트업이 그러한 것처럼 1루에 한 명을 더 보내려는 시도를 거듭했다. 그것부터 집중해야 궁극적으로 점수를 낼 수 있을 테니까. 기꺼이 배트를 휘둘렀다.


그런데 나중에는 혼란만 남았다. 술집이 가득한 골목길 실내 야구 연습장을 방불케 하는 깡깡 소리가 가득할 정도로 각 프로젝트는 저마다 배트를 휘둘렀지만, 한 발자국 멀리서 살펴보니 모두 다른 방향으로 공을 뻥뻥 날리고 있는 것이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다음 펼쳐지는 이야기다. 얼추 방향성을 맞추고 여러 실험과 시도 덕분에 얼떨결에 1루에 선수(mvp, minimun viable producet 최소 기능 제품)들이 도착해도, 2루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같은 문제가 계속 반복됐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팀원의 역량, 대표의 성향 등 여러 배경이 있었겠지만, 1루 다음에 달려야 할 2루의 방향성이 정해진 것이 없었다는 것, 정해졌다가도 금방 바뀌었다는 것, 몇 루까지 달리면 점수가 나는 건지 알 수 없었다는 등의 상황이 떠오른다.


1루에 도착한 mvp선수들이 프로덕트로 거듭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보다 조금 더 안타까운 게 있다. 심지어 1루 주자(=처음 성공했던 우리의 프로덕트)가 도무지 갈 길을 잡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점수를 내려면 1루 주자는 라인을 따라 2루로 달려야 하는데, 우리의 결정은 1루 주자에게 갑자기 관중석에 가서 팝콘을 먹고 있으라고 요청하는 식이었으니까. (농담이 아니라 메인 프로덕트는 1년 안에 버리기로 결정된 지 오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도 commit 하고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부분이 있었으나, 관중석을 향해 가까워져 가는 메인 프로덕트의 뒤통수를 볼 때마다 '이게 맞나'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점수를 내지 못하는 와중에 큰 문제까지 터진 어느 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더가 가져온 것이 OKR 대신 노스스타매트릭을 사용해보자는 것이었을 때, 나는 퇴사를 결심하길 잘했다고 (또) 생각했다.


매 타자가 1루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 관리하는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살아남은 주자들이 1점을 어떻게 내게 할 것인지, 또 궁극적으로 우리 팀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을지, 나는 그런 고민을 하는 회사와 함께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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