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했던 부산국제영화제를 즐길 수 없었던 이유

글이 영화보다 별로인 이유를 글로 쓰는 에디터

by 이소연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나오면 나는 영화관 좌석에 앉아 영화의 화려한 장면과 자본력에 쉽게 감탄했으면서도, 괜히 한 마디를 덧붙이곤 했다. "에이, 그래도 원작을 읽을 때처럼 울림은 없는 것 같아."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코로나19 사태로 작년엔 모든 일정이 취소됐고, 올해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큰 규모의 영화제에 간 건 처음이었다.


많이 부러웠다. 연출과 감독, 배우가 하나의 시너지를 만들며 작품을 만들어내고, 같은 시네마 언어를 사용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말 그대로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대학에서 나름대로 언론과 매체를 공부하며, 영화 관련 수업을 많이 들었다. 심지어는 다큐멘터리를 찍어보고 싶다며 이런저런 활동도 해봤지만, 이번 영화제에서처럼 '영화'라는 매체가 매력적으로 다가온 적이 없었다.

축제 기간 동안, 관람객이 되어 그들만의 축제에 사심 없이 찬사를 날리기엔 마음 한 구석에 자꾸만 부러워하는 마음이 일었다.


이토록 이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느낀 건, 내가 영상 매체를 그토록 꿈꾸다가 결국 타협하고 포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취준생 시절, PD와 기자 지망생 사이를 고민하던 나는 얼떨결에 에디터가 됐다. '신문이나 잡지를 누가 읽냐'라는 물음에 '종이책과 고전은 반드시 살아남아요'라는 답변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활자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무언가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초라해지는 느낌과도 비슷했다. 나름대로 '콘텐츠 만드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이 있던 나는, 영화가 지닌 힘에 자꾸만 짓눌리는 것만 같았다.


영화제에서 가장 좋았던, 또 그래서 가장 감정이 요동쳤던 순간을 꼽자면 '부산국제영화제 라이브러리'에 방문한 순간이었다. 1996년 부국제 첫 카탈로그부터 보고 있노라니, '영화'라는 매체가 얼마나 유구한 역사를 지닌 강력한 매체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시네마의 문법을 가지고 전 세계가 소통하고, 각종 시사회와 영화제로 모든 제작자와 관객이 하나 될 수 있는 매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부산국제영화제는 라이브러리는 영화의 전당에 있는 영화 전문 자료실로, 지난 부국제 카탈로그나 영화 관련 책 등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영화라는 큰 줄기를 토대로, 작은 가지들이 지닌 역사와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구하기 힘든 대본집부터 최근에 나온 가벼운 책까지, 범주도 다양하다. 라이브러리의 기획과 운영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이뤄지고 있는지 공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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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갖지 못한 것을 남에게서 찾으려면 하루 종일 써도 끝이 없겠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서전이나 북토크처럼 글로 축제를 여는 게, 그래서 재미없었구나.


내가 경험한 몇몇 도서전은 출판사 마케팅의 향연이었다. 한 책을 보고, 그와 관련된 책 아카이브를 살펴보고, 책을 배경으로 한 일러스트레이션 굿즈를 사고, 작가에게 사인을 받고,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작가 개인의 천재적인 재능에 대한 칭송으로 가득 찬 행사장에, 다른 관계자와 독자가 함께 즐길 자리는 없었다. 부국제만큼의 규모와 역사를 지닌 도서전에 가보지 못한 탓이라 믿고 싶다. (아직 없다면, 그런 도서전을 기획해보는 일도 참 재밌겠다.)


글은 감사하게도, 내 머릿속 세계를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구현할 수 있다. 어마어마한 출연진도, CG 기술도, 심장을 쫄깃하게 할 음성 기술도 필요 없다. 써 내려가는 문장과 문장 사이사이가 그 역할을 모두 해낸다. 그게 작가의 능력이자 역량이다. (보조작가의 노고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나, 도움 없이 글로 작품을 쓰는 게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다. 또 형태가 '협업'보다는 '수행'에 가까운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영화는 다르다.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상식에 오른 배우나 감독이 왜 수십 명의 이름을 언급하며 고맙다고 말하는 데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는지 이해가 된다. 물론 영화 중에서도 감독이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 카메라 앞에 나서 주연의 역할을 수행하고, 음성이나 편집까지 척척 해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터뷰를 조금만 살펴봐도,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협업했는지 알 수 있다.


협업이 '협업'이 아닌 착취의 형태로 진행된다는 것은 분명 문제다. 라푼젤의 14만 가닥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을 구현하기 위해, 몇 년간 수천 명이 '갈렸다'는 기사를 적 있다. 영화 제작자의 대부분은 영화제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텅 빈 관객에서 CGV 아르바이트생이 팝콘 쓰레기를 치우고 있을 때 쓸쓸히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 정도로만 기록되고 있다는 것도 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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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부산국제영화제는 반짝반짝 빛났다. 광장 곳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마스크 위로 호기심과 생그러움이 돌았고, 서로 좋아하는 배우, 감독, 작품에 대해서 저마다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제에서 가장 빛나는 면만을 본 한 게으른 에디터의, 열등감에 젖은 푸념일까? 인정한다. 나는 자기만의 방에서 글을 쓰는 게 사실 조금 지겹다.


지겹다고 말하는 나는 또다시 영화제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서, 감정을 하나하나 톺아보며 글로 써 내려간다. 이런 감정을 누군가는 소설로, 누군가는 웹툰으로, 또 누군가는 영화로 만들며 그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거겠지.


어쨌든 한 줄 요약. 각자 가장 잘하는 일을 맡아, 그 시대를 영상, 음성, 연출, 대본 등 다채로운 모습으로 꾸려내 시대의 한 막을 보여주는 영화가 존경스럽다. 부산국제영화제 덕분에, 앞으로 영화가 달리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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