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이와 시골일기
나는 손발이 차다. 그래서인지 내 무릎에 앉아 있는 방울이의 품이 그렇게도 따뜻하고 좋고 소중하다. 전기장판에 누워 더운지 숨을 연신 내쉬는 방울이의 목덜미에 차디찬 내 손을 얹어두면 푸, 하고 한숨 쉬듯 숨을 내쉰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걸린, 내가 별로 좋아하진 않았던 그 문구처럼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리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속을 걷는다. 그럼 얼마나 좋을까.
며칠째 할머니집, 아니 아무도 없는 빈 집, 그래서 방울이집이 되어버린 곳에 내려와 있다. 지난주 나와 산책하다 발이 다친 방울이가 병원에 갔다 때늦은 중성화 수술을 받게 된 탓에 일주일 만에 다시 정읍으로 내려온 것이다. 전부터 해줘야지 해줘야지 말만 하던 못난 나는 이제서야 회사에 재택근무를 신청하고 일주일째 방울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밖에서 생활하던 방울이는 견생 4년 만에 처음으로 집 안으로 발을 디뎠는데,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했으면 코를 드르렁 골며 온종일 잠만 자고 깨우면 신경질까지 낼 정도로 꼼짝 않고 잠만 잔다. 원래 성견은 하루 12시간까지도 잔다는데, 방울이는 밖에서 바람 불면 깨고, 텃밭에 거름을 주는 동네 사람들 움직임에 깨고, 작은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면 깨고, 제비들이 날아오면 깨다 보면 12시간을 잘 수 있었을까? 그 작은 몸으로 우릴 지키겠다고 사납게 컹컹 짖던 방울이는 방 안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어리광만 부린다. 앞다리 뒷다리 옆으로 주욱 밀어내고 철퍼덕 누워버린 방울이의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이런 행복을 주저하고 지옥철 9호선을 타는 삶을 택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아무도 묻지 않은 그 질문에 스스로 힘주어 답하는 수밖에 없다.
결심이 참 중요하다. 방울이와 함께 할 결심. 방울이를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면, 방울이로 대변되는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렇게 사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영화 <헤어질 결심>의 서래처럼, 함께 할 결심을 했다면 나 역시 어떻게 해서든 해 낼 테니까.
그런데 나는 방울이와 함께 할 마음이 쉽게 먹어지지 않는다. 결심이 서질 않는다. 주말에 갑작스럽게 훌쩍 떠나는 여행, '또니!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하는 친구의 제안에 덥석 '그래!'하고 마는 그 찰나의 도발적이고도 즉흥적인 즐거움. 일어나지도 않은 방울이와의 생활을 상상하며 지레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줄 세우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고민일까, 당장의 행복을 택하지 못하는 겁쟁이의 모습일까.
옆에서 방울이는 말로만 듣던 꼬순내를 풀풀 풍기며 자고 있다. 코 끝과 입 주변, 앞다리를 연신 들썩이기도 한다.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내일은 또 신나게 가장 행복하게 뛰어 놀자. 방울이가 그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