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일루즈,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이란 뭘까? 우린 흔히 사랑에 '빠진다'고 말한다. 겉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들어가듯 사랑에 빠진다고 느낀다. 그래서인지 영화도, 소설도, 노랫말에서도 온통 사랑 타령이다. 대부분 사랑이라는 감정을 두고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축복이라고 생각이라도 하는 듯 하다.
하지만 에바 일루즈는 사랑은 '빠지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라고 본다. 감정이 아닌 사회문화적 현상 혹은 정지척 현상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중세의 계급사회, 산업혁명, 현대의 자본주의까지 각 세대에 우리는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걸까?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 같을까? 에바 일루즈에 따르면 아니다. 각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랑도 변화하고, 따라서 지극히 사회문화적이며 정치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랑은 왜 끝나나>, <사랑은 왜 불안한가>, <사랑은 왜 아픈가>. MBTI F로서 제목을 소리 내어 읽기만 해도 가슴이 저릿해지는 에바 일루즈의 저서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 그는 사랑을 철저히 사회학의 한 장르로서 분석한다.
1974년 심리학자 도널드 더튼과 아서 아론의 실험을 살펴보자. 이들은 남성들을 2개 그룹으로 나눠 다리를 건너게 했다. A 그룹은 건너기 무서운 흔들다리로 폭이 아주 좁고 높이 있는 다리를 건너야 했고, B 그룹은 견고하고 매우 안전한 다리를 건넜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는 여성이 기다리고 있다. 두 그룹 중 누가 여성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을까?
바로 흔들라리를 건넌 A 그룹이다. 흔들다리가 A 그룹 사람들을 각성 상태에 빠뜨렸기 때문이라고 에바 일루즈는 본다. 흔들다리 효과는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만난 이성에 대한 호감도가 안정된 다리위에서 만났을 때 보다 더 상승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는 '귀인오류'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행에 가면 더 많은 이들이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힘든 상태에서 만난 사람에 더욱 애착을 느끼는 것처럼, 어떠한 각성 상태가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을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을 마음의 문제로 보며 심리학자만이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가 바라본 지극히 사회문화적인 현상인 사랑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20세기까지만 해도 결혼은 경제적인 문제이자 수단이였다. 지위나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 결혼을 했고, 결혼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경제적인 수단으로 여겨졌다.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인정되는 공정한 거래와도 같았다.
이러한 이유로, 낭만적 사랑은 전통을 거스르는 존재로 여겨졌다. 경제적 전략과 사회적 재생산이라는 결혼에 대항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룻밤 안에 둘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로미오와 줄리엣은 경제적인 수단이었던 결혼 제도 아래에서 더욱 완벽해졌다.
역설적으로 사랑을 해방시킨 건 자본주의였다. 누구든 노동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자본주의 덕분에, 결혼으로 생긴 이익에 의지하지 않게 된 것이다. 사랑과 결혼은 결합될 수 있었다. 따라서 21세기에도 신분상승, 혹은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는 목적으로 결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중세시대 수준의 결혼 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개방된 시장으로 들어가, 결혼이 아닌 능력이나 기술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낭만적 사랑은 자본주의 아래에서 환영 받았다. 그런데 나아가 낭만적 사랑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했다. 데이트 문화가 확산되면서, 로맨스는 다양한 소비 행위와 연결됐다. 자동차 기술 덕분에 사생활을 추구하는 공간이 집에서 자동차로 옮겨갈 수 있었다. 댄스홀도 등장했다.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기 적절한 공간이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더 유혹적인 환경을 제공했다.
이러한 데이트 문화의 탄생은 여가 활동에 참여하려는 모든 사회 계층의 욕구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영화관, 댄스홀, 놀이공원 같은 오락 시설을 이용하면서 사람들은 사생활을 지키며 친밀감을 나눌 수 있었다. 이렇게 로맨스가 특정한 통제에서 벗어나면서, 돈은 다양한 소비 행위를 통해 로맨스와 시장을 연결시켰다. 돈이 로맨스 관계를 재정의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틴터와 같이 감정을 제공하는 기술을 테크노 이모디티라고 부른다. 이러한 기술의 등장은 만남의 구조에 분열을 가져왔다. 사람을 빠르게 만날 수 있게 되면서 평판도, 성품도 아닌 짝 선택에 가장 중요한 건 외모다. 데이팅 앱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시각성이다. 과거에도 대면을 통한 상호작용도 시각적이긴 했지만, 온라인 상의 시각성은 대면할 때와 다르다. 온라인 시각성은 사진이 중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장 잘 나온 사진을 골라 다른 이들에게 공개하는데, 대면상황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매우 세심하게 가공되고 포토샵 처리된 이미지를 소셜 미디어에 올린다. 결국 고정된 자아 이미지와 상호작용하게 되는 것. 이것은 성적 자아가 중요해졌다는 이야기기도 한다. 성적 매력을 더 보여줘야 하며, 자아가 새롭게 정의된 셈이다.
틴더에서는 Friends with benefit (원나잇 상대) 를 찾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이 관계는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 의사와 환자, 선생님과 학생,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목적과 정의가 명확하다. 목적과 정의가 알려지지 않은 관계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성적, 낭만적 관계에서 불확실성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를 ‘부정적 관계’라고 부른다. 부정적이란 말은 비난받을 만한 관계라거나 유해, 유독하다는 뜻은 아니다. 내 의도가 무엇인지 나도 모르게 되는 관계를 말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관계를 말한다.
규범이 모호한 관계에서는 규칙이 없기에 잘못에 대한 처벌도 명확하지 않다. 성관계를 가져도 연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계속 유지될 관계인지, 상대의 감정도 알 수 없으며 이를 물어봐도 되는지도 모른다. 내가 침투해도 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것은 불안함을 야기한다. 작고 사소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근본적인 질문이다. 관계의 내용, 목적, 규칙, 언제 어떻게 말할지가 모두 불분명하다. 이런 불확실성은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모든 인간은 잘 살기 위해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한다. 사랑은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에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여기서 불확실성이 없는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페미니즘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지려면 여성이 남성의 세계에 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동등함을 느낄 대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승리와 패배라는 사고방식을 버릴 때 사랑은 상호 취약성을 인정하고 요구하며 마침내 자아가 교환될 수 있다. 사랑은 가장 위대한 윤리적, 정치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다. 페미니즘은 그렇기에 여성만을 위한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 된다.
사랑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적절하게 거듭난 사랑은 핵심 자원이 될 수 있다. 좋은 시민과 정치 제도를 만드는 자원이 될 수 있다. 사랑의 더 완전한 인간의 전제 조건이 될 것이다. 사랑은 심오한 사회, 경제, 정치적 의미를 담는, 우리 존재와 우리 사회의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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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사회학 1강 사랑은 변한다 (링크)
사랑의 사회학 2강 로맨스 자본주의 (링크)
사랑의 사회학 3강 데이트의 탄생 (링크)
사랑의 사회학 4강 짝을 고르는 특별한 방법 (링크)
사랑의 사회학 5강 섹슈얼리티 리포트 (링크)
사랑의 사회학 6강 사랑은 왜 끝나나 (링크)
사랑의 사회학 7강 해피엔딩을 위한 조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