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스타트업에서 느끼는 두려움
입사 3개월 후, 연봉협상 날. 괜히 노트북 메모장에 <대망의 날>이라는 이름까지 붙여두고 테이블에 앉았다. '연봉협상'이라는 거창한 이름만큼이나 나도 뭐라도 준비해야겠다는 호기로움이었다. 스타트업 업계에 똑똑 문 두드리기로 마음 먹었던 순간 나는, '돈을 당장은 벌지 않아도 좋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돈 벌거면 대기업 갔지 여기 안 왔어'라고 쿨한 척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 이렇게 파들파들 떨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럼에도 나는 이런 이유 때문에 돈을 벌고 싶었다. 돈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여도, 돈을 벌어야 한다. 아이스크림 사 먹고, 엄마 아빠 할머니 방울이 보러 가끔 시골 내려갈 때 양손 무겁게 가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곳은 스타트업. 그것도 초기 멤버. 스타트업 창업자도 아니고, 지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 열심히 하는 멤버1이다.
스타트업. 물 한 방울, 동전 한 잎 쉽게 얻어먹을 수 없는 퍽퍽하기 그지 없는 자본주의라는 초원에서 태어난 망아지다. 이제 막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이 드넓은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스타트업은 젖먹던 힘까지 쮜어내며 달려야 한다. 폭발적인 속도로 달리다 보면, 어쩌면 수많은 경쟁자를 뚫고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스타트업' 입장이 아니라, '스타트업에 고용된 직원' 즉 피고용주 입장에선 이야기가 좀 복잡해진다. 폭발적으로 달려야 한다는 건 아는데, 내 연골을 다 닳아가며 달려도 그만큼을 보상받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이곳은 끝없는 성장과 발전을 고민하기도 벅찬 곳이라, 나는 그 흔한 '돈, 돈, 돈' 이야기를 하는 게 민망하다. 적어도 우리 회사에서는 그런 분위기다. 돈이 어쩌고, 추가근무 수당이 어쩌고, 주말근무 수당이 어쩌고, 할 틈이 없다. 일단 열심히 일하고 성장하면, 돈과 명예는 언젠가 절로 따라 올 거라는 전설같은 속담을 믿어야 하는 거다.
"스타트업 종사자는 모호함과 불확실성에 대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스타트업에서 연봉, 복지, 돈 이야기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단다. 많은 지인이, 글이, 책이 그렇게 말한다. 페이스북 COO 셰릴 샌드버그는 '나에게 어떤 보상을 줄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난제가 있는가'를 기준으로 직장을 골랐다고 하는데, 그의 정신이 스타트업 업계의 정신처럼 여겨진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그래서 불쌍하다. 나는 넓디 넓은 초원에서, 갓 태어난 망아지가 뜯어 먹는 풀이 되는 것만 같아 두렵다. 팀원 각자가 가진 연료를 최대로 태우는 초기 스타트업과 열정 연료가 차고 넘치는 신입 직원의 만남, 나는 이 관계의 결과가 너무나 뻔할 것 같아 두렵다. 태워지다가 버려질까봐 두렵고, 지금도 그렇다. 회사 대표에게 이런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대화는 나눴지만, 두려움은 해결되지 않았다. 꿈에서도 일하고, 친구와 이야기하면서도 회사를 고민하고, 주말에도 온통 관련한 레퍼런스를 읽지만, 그 두려움은 의식적으로 편 어깨를 좁아지게 만든다.
그 날, '연봉협상'은 허무하게 끝났다. 회사가 돈을 잘 벌고 있지 않으니, '협상'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평생 직장이 어딨겠냐며 가족, 친구들, 그리고 나 자신도 나를 위로했다. 그런데 거울 속 젊고 생기 넘치는 내 모습 말고, 40대 50대 몸도 마음도 내 맘 같지 않을 멀지만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덜컥 겁이 난다.
다행인 것은 비틀비틀 불안해하더라도 어쨌든 나 역시 본능적으로 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돈을 안 주려는 것도 아니고 못 주는 거라는데, 그래서 일단은 그냥 naive해지기로 결심했다. '일단 열심히 하자. 보상은 나중에 주겠지'라고 생각하며 naive해지는 것 빼고는 별 수가 없었다.
이런 글을 쓰고 있지만, 내가 조금 더 똑똑했다면 이런 글 따위는 안 쓰는 게 맞다. 돈 이야기를 할 게 아니라, 막 떠오르는 로켓에 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내가 잘 하는 것, 회사에 잘 기여하는 것을 찾아 헤매야 한다. 회사가 자라 충분히 좋은 인력을 찾을 만한 여유가 생기면, 월급 가지고 툴툴대고 다른 직원들까지 불안하게 만들 위험이 있는 인력은 필요 없을 테니.
나는 결국 오늘도 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