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투덜대면서 왜 스타트업에서 계속 일해?

스타트업 에디터 1년 차, 돌이켜보며

by 이소연


회사에 입사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었다.


처음 입사한 그날을 아직 잊지 못한다. 출근해서 퇴근까지 휴대폰 화면을 볼 시간이 단 1초도 없었다. 단 1초도. 10시에 출근하고 눈 깜빡하면 밤 8시였다. 대학교 시절 버거킹 카운터에서 알바할 때도, 잠시 스트레칭하며 휴대폰을 흘끔 댈 시간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있는 회사는 아니었다.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매일매일 그렇게 바쁘게 살았다. 퇴근 후엔 기절하듯 잠들었다.


처음 3개월 짠 수습 기간 동안은 짜디짠 최저임금 월급에 맞지 않게 밤 10시에 퇴근하기도 부지기수였다. 그땐 그저 새로운 일이 재미있었다. 이후 3개월은 제법 익숙해졌다며 새로운 프로젝트도 맡고, 처음부터 일을 맡아 끝까지 진행하기도 했다. 서툴게 마일스톤, 간트차트 쓰는 법부터 차근히 배워가며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아쉬웠던 것을 회고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공부할 시간 없이, 또다시 전혀 다른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되기도 했다. 원래 좌로 굴러 우로 굴러를 좋아하는 타입이라, 바쁘디 바쁜 스타트업이 내겐 그저 잘 맞았다. 배울 게 많았고, 나 스스로 성장하는 걸 목격하는 게 기뻤다.


하지만 입사한 지 반년이 된 여름날,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이것저것 다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어렸을 적 게임을 잘 못하면서 욕심만 많던 나는, 체력 마력 방어력 속도 등 여러 스탯을 애매하게 다 같이 올리고, 여러 장비를 모두 업그레이드하려 욕심내다 결국 게임 캐릭터를 '똥캐'로 만든 적 있다. 그 경험 때문인지, 일머리 좋다, 이것저것 다 빠릿빠릿하게 잘한다는 칭찬이 마냥 좋진 않았다. 현실에서 내가 애매한 똥캐가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내가 잘하는 일은 무엇인지,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더 잘하는 사람으로 더 성장하고 싶은지 제법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 고민은 아직까지 진행 중이며, 업무 할 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둘째, (소소한) 난을 일으켰다. 입사한 지 반년이 지났으니, 나는 일을 꽤나 잘하게 됐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맡은 일을 곧잘 했고, 아무것도 없던 맨 땅에 시스템을 다지고 다른 사람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기쁨도 맛봤다. 동료들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현재 받고 있는 월급과 포괄임금제로 들어오는 야근 수당에 대해 상당한 불만이 생겼다. 거기에 사소한 일에 크게 마음이 상하는 해프닝이 생기며, 눈물 콧물 흘리며 퇴근하는 날도 많았다. 회사 내에서 소소한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삼일천하, 아니 십일천하 정도로 빠른 기간 내 굴복했다. 투덜대는 내게 회사 대표는 "그렇게 불만 있는데 왜 퇴사 안 하고 계속 우리 회사에 있는지 물어봐도 돼요?" 라고 물었다. 정신이 쏙 들었다. 눈물 쓱 닦고, 내가 손에 쥐지 못한 것(=돈)에 대해 내리쬐던 스포트라이트를 내 손에 쥔 것(=좋은 동료, 하고 싶은 일)으로 돌렸다. 스타트업이라는 회사의 특수성에 대해 책을 뒤적이고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심기일전했고, 열일 궤도로 다시 올라왔다. 돌이켜보니 필요한 도발이었던 것 같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과 안정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가족들이 안부를 물을 때마다, 나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해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말하면서 깨닫는다. 나 스스로도 스타트업 생태계를 마음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돈을 많이 못 받아도, 폭발적인 힘으로 일해야 하는 우리의 생태계에 대해 말이다. 그러니 밥 먹듯이 오는 회사 사춘기가 그럴 만도 했다.

'아니, 내가 왜 이 돈 받아가면서 일을 이만큼 해야 돼? 아 억울해!'

'결국 이런 경험이 다 내 성장으로 이어질 거야. 지금 당장 돈 몇 푼 얼마나 받는 게 뭐가 중요해? 어떻게 성장할지나 고민하자'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과 가능성을 믿고 나아가야 하는 내 처지가 서럽기도 했다. 기업 가치가 1조 원이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유니콘'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딱 언덕 위 유니콘을 좇아 맹목적으로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인 건 아닌지 겁도 났다. 이렇게 뛰어나니다 지쳐버리면 어떡하지, 이 각박한 세상에서 버려지면 어떡하지, 나는 스타트업 대표도 아니고 일개 팀원인데... 허상의 존재 같은 전설의 동물 유니콘에 비해, 대학을 졸업하고 시작된 학자금 대출 상환과 달마다 내는 월세는 너무나 선명하게 내 곁에 있었다. 그래서 '똥도 회사 가서 싸야지', '회사는 설날 보너스 받는 맛에 다니지'라는 말에 서로 맞장구치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다. 정신없이 빠르게 달린 만큼, 고개를 들어보니 내 눈 앞엔 전에 본 적 없던 새로운 까마득한 황야가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와 함께하면 좋을지 하나부터 열까지 정해져 있는 게 없다. 주어진 정답만 고르고, 서열 세워진 대학에 들어가면 그만이었던 지난날과 많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감회가 막 새롭진 않다. 어딜 향해 어떻게 달릴지 궁리하기도 바쁘다. 스타트업 패치가 슬슬 되어가고 있나 보다.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 것인지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깊고, 1년간 잘 예열했으니 2021년 한 해는 그걸 잘 풀어나가 봐야겠다. 1년간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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