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니 좋은 점을 생각해봤다
내게 첫 직장이 되어버린 스타트업,
연봉협상을 앞두고 돈 버니 좋은 점을 생각해봤다.
왜! 나는! 돈을! 벌어야! 하는가!
1. 아이스크림 (콘, 붕어싸만코) 먹을 수 있다.
눈물 젖은 붕어빵을 품에 안고 퇴근하는 이야기는 IMF 가장이 전유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붕어싸만코가 녹지 않도록 끄트머리를 잡고 뛰어가는 2020년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마을 버스에 내려 마트 앞에 서, 기다리는 가족에게 전화해 '뭐 먹고 싶은 거 있어?'라고 묻는다. 퇴근하는 길에 그런 전화를 할 때면, 내가 가장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내 지갑에 있는 돈이 내 돈이 아닐 때는 물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심부름에 불과한 거니까. 돈을 벌고난 후, 내가 사가는 건 까딱해야 붕어싸만코나 월드콘이지만, 나는 양손 가득 아이스크림을 쥐고 어렵게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를 때가 가장 뿌듯하다.
2. 꼭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지 않아도 된다.
취준생 시절, 가장 서러웠던 순간 중 하나는 카페 메뉴판 앞에 서서 '돈' 때문에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500원, 1000원 차이가 날 망설이게 하는 게 싫었다. 마음이 완전히 엉망진창인 날이 아니면, 나는 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달디 단 음료를 마시는 날은, 큰 일이 있었다는 뜻이므로 그렇게 좋지도 않았다.
습관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제일 맛있다. 먹다 보니 맛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지 진짜로 '으른'이 돼서 맛있어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3. 원하는 곳에 원하는 만큼 기부할 수 있다.
그린피스에서 '이소연 씨- 캠페인에 서명하셨죠. 혹시 기부하실 수 있을지..'라고 묻는 전화가 오면 민망해하면서도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지금 학생이라서요. 다음에 돈 많이 벌면 그때 기부할게요 핫핫' 이곳저곳 환경 단체에 서명 해 놓은 게 많았던 터라, 기부를 권하는 전화도 많이 받았다.
취직을 하고 나서는 못 다 이룬 기부를 마음껏 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으로 사는 기분이었다. 이곳저곳 올라오는 사회적 기업 상품을 소비하거나 사서 선물로 주는 기쁨도 맛봤다. 처음으로 자선 경매에 참여해 갑자기 재활용 옷을 사 오는 일도 있었다. 마음이 든든했다.
4. 엄마, 아빠 용돈 드릴 수 있다.
첫 월급을 받고 드린 용돈. 엄마 아빠 생신에 드린 선물. 모두 내 월급의 반 정도 차지하는 통 큰 선물이었다. 기뻤다. 옷 한 벌 살 때도 그렇게 고민고민하던 내가, 버즈에, 아이패드에, 엄마 아빠 전자 선물을 살 땐 망설임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자라기까지 엄마 아빠가 내게 얼마나 많은 사랑과 마음 그리고 돈을 썼는지 너무 잘 아니까.
그에 비하면 되지도 않는 푼돈이겠지만, 나는 선물을 하며 그렇게도 생색을 부린 것 같다. 이제 돌려드리는 건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많이 돌려드리고 싶다. 그냥 선물 말고 멋진 외제차, 소소한 꽃 선물 말고 유럽 왕복 항공권 사 드리고 싶어 진다.
5. KTX 마음껏 탈 수 있다.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낼 수 있다면, 그까짓 돈 몇 푼이 대수냐?
대수다. 대학생, 취준 할 땐 기어코 무궁화호 타고 다니며 4시간씩 기차를 타고 고향집과 서울을 오갔다. KTX를 탔으면 1시간이라도, 30분이라도 더 오래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그걸 아끼자고 시간과 체력을 썼었다.
취직을 하고 내 지출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KTX일 거다. 주말은 어찌나 짧고, 할머니 방울이 엄마 아빠는 왜 또 이렇게 보고 싶은지, 당일치기로 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하루 10만원이 대수랴, 땡큐! 하는 마음이었다.
돈을 받기 시작하며 좋았던 점을 쓰다 보니 참 소소한 것들 뿐이다. 불행히도 그리고 다행히도 딱 지금 내 월급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름 행복하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눈 비비며 '아, 출근하기 싫다' 하는 말은 사실 진심이 아니다. 어설픈 취업준비 생활을 하던 바로 몇 달 전 생활을 돌이켜보면 더욱 그렇다. 어쨌든 돈을 벌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출근을 한 지 3개월. 그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고 싶었는데, 돈 욕심이 생겼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데, 돈을 못 번다는 사실이 허무했다. 애석하게도 내가 다니는 회사는 스타트업이라, 나는 당장 돈을 잘 벌 수는 없다(다른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보다는).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돈에 욕심 낸다. 돈이 뭘까? 왜 나는 돈을 벌고 싶어 할까?
물론 이유를 대려면 트럭 째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엄마 아빠한테 효도하고 싶고, 평소에 내가 사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만 생각해봐도 다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서핑보드와 웻 슈트, 그리고 그것들을 잔뜩 싣고 다닐 수 있는 큰 Jeep차, LA를 오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 이왕이면 편한 자리, 부모님 언니 가족 방울이에게 선물.
아, 아무래도 돈이 '더' 필요하다! 그럼 역시 돈 많이 주는 회사가 최고인 걸까?
그럼에도 2020년 5월의 내가 내린 답은 NO다.
돈 못 받고 일 많이 하는 스타트업 피고용주의 돈 이야기는 투 비 콘티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