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처럼 일하고, 베짱이처럼 고민했다

<일하는 마음>을 읽고, "뭐,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by 이소연

"뭐,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이거다. 가장 필요했던 말이면서도, 솔직하게 뱉지 못한 말이었다. 스파이였던 라면가게 사장님은 라면이 눈에 띄지 않는 맛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너무 맛있으면 식당이 유명해져 자신의 신분을 들킬 수 있기 때문. 최선을 다해 눈에 띄지 않도록 '어중간한 맛'을 내는 게 그의 임무였다. 그런 그가 출동을 앞둔 마지막 저녁,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맛있는 라면을 만든다.


"이렇게 맛있는 라면을 만들 줄 알면서 내내 그런 어중간한 라면을 만들며 살았다니, 아깝지 않았어?"

라면가게 사장님은 답했다. "뭐,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일하는 마음> 책 내용 중에서도,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에서 나온 대사다. 참 매력적인 문장이다. 번역을 일부러 그렇게 했는지는 몰라도, 사실 비문이다. "뭐,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혹은 "뭐, 제가 선택한 길이니까요."가 맞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 문장이 답변으로 나올 법한 상황을 상상해서일까, 이 문장은 "뭐,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요."라고 답할 때 가장 맛깔난다. 상대방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혹은 내가 가는 길에 대해 '한 소리'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게 도움을 주는 마음으로,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살아본 입장에서, 조근조근 건넨 말이었을 것이다. 그럼 나는 예의는 적당히 갖추되, '내 길은 내가 잘 아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이렇게 답할 수 있는 거다. '뭐,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처음 스타트업에 들어와 가장 많이 한 말은 "아, 어떻게 하면 일을 잘할 수 있을까"와 "일은 재밌는데 돈은 못 벌어"였다.


산타 할아버지도 못 들어주는 날강도 소원

⓵ "아, 일 잘하고 싶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어떻게 회의를 잘할 수 있지? 어떻게 하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지? 내가 부러워하던 대상은 이미 1년 정도 회사에서 일을 해 왔던 동료였다. 그처럼 '잘' 하고 싶다고 부러워해봤자, 성장하지 못하는데 그저 성장만 하고 싶다며 발을 동동거렸다.


나는 달리기를 하는데, 앉아서 '아, 어떻게 하면 잘 뛸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는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그런 바보였다는 걸 알았다. 개미처럼 일했지만, 베짱이처럼 고민했다. 스타트업에서 살아남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졌고, 마냥 성장하고 싶다고 갈구했다.


이 책은 '잘하려고 애쓰기'라는 행위를 멈추라고 말한다. 성장은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결과다. 수행의 과정에 지적으로 집중하며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의식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 사람만이 성장할 수 있다.


네, 저는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건 더 큰 성공을 바라는 마음과는 좀 다른데, 두려운 상황이 점점 줄어들고, 어떤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편안하게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10)

"대개 배움의 열쇠는 애쓰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 명료하게 생각하는 데 있다. 즉, 당신이 늘 하던 방식대로 행하는 것을 멈추는 것이 배움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는 법 배우기 (39)

"성장을 목표로 하지 말고, 오늘의 과업에 집중해야 해요." (44)


철 지난 가짜 고민

⓶ 일은 재밌는데 돈은 못 벌어


나는 불안했다. 재정적으로. 40살 50살에, 열정만 가지고 보험료를 낼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1. 내가 일한 만큼 돈으로 보상해줄 수 있는 회사이면서 2. 분위기가 자유롭고 3. 개인이 성장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다니는 회사는 2·3은 놀라울 정도로 높은 수준으로 충족시키지만, 1을 충족시킬 만한 단계는 아니다. 그리고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당장 돈이 없는 취준생 시절)에서, 나는 최선의 고민을 했고, 1번을 포기했다. 스타트업에 발을 들으밀며, 나는 일과 일상의 경계도, 통장에 찍히는 고액의 월급도 마음속에서 지워버렸다.


아니다. 사실 그러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회사 생활 어때?"하고 물으면, 나는 눈썹부터 찡그렸다. "아, 일은 재밌는데... 돈은 못 벌어."라고 답했다. 어쩌면 목 디스크로 한 달에 100만 원 가까이 병원을 다니는 삶이 서러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마음속에서 '통장에 찍히는 고액의 숫자'를 완벽히 지우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미 한 선택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만 다른 선택에 대해 '아깝다'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What if'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나온 한 에피소드(위에서 말한 어중간한 맛 라면을 만드는 라면가게 사장님)를 읽고 나는 실제로 아-하고 탄식 비슷한 소리를 내었다. "뭐,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내가 이미 한 선택이라면,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 따윈 접어두고, 내 선택에 전념해야 했다. "아 어떻게 하면 일을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이 일은 돈은 못 벌어"를 동시에 생각하다니. 고민이 잘 풀릴 리가 없었다. 내게 진짜 필요했던 것은 '돈을 못 벌어'라는 철 지난 가짜 고민이 아니라, 내가 한 일에 대한 확신이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한다. 꿈에서도 일을 하고, 지하철 2호선에서 사람들에게 깔리면서도 일을 생각하니, 나는 이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전념하면 그만인 것이었다.


인생의 거의 모든 선택은 좋은 것일 수도 나쁜 것일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우리는 그 선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뿐이다.(62)

'왜 회사를 그만두셨나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은 그때그때 달라지곤 했다. 답은 과거의 선택을 설명하기보다는 현재의 나를 더 많이 설명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유였고, 그래서 또 이유가 아니기도 했다. 나는 사실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


어차피 What if를 확인할 방법은 없고, 단 하나의 경로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는 내가 의식적으로 내리는 선택보다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행운과 불운, 그 행운과 불운을 대하는 나의 태도로 결정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고, 그 덕에 선택은 가볍게 하고 오늘은 단단하게 살려고 한다. 역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오늘의 일상뿐이다. (68)




지난 12월. 동료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고사하고 지금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내가 회사인지 회사가 나인지 구분 못하는 삶이 괜찮지 않은 것 같다고, 잘하고는 싶은데, 뭘 어떻게 잘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돈 걱정도 있다고, 모든 걸 털어놨다. 그런데 놀랍게도 회사 대표인 그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추천해 주었다.


책을 쓴 '성공한' 벤처 캐피털리스트 저자 제현주도 같은 고민을 했다면서, 책을 통해 내게 털어놓는 기분이었다. '이런 책은 싫어'라며 서점 베스트코너를 쌩 하고 지나치던 나는, 어쩌면 아주 뻔한 이 책이 웬일인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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