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본 쉬나드처럼 살지 못할 거면, 이 날 하루만큼이라도 뭐라도 하자.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아주 친절하고 직관적인 그 이름처럼, 환경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서 자연보호자들이 제정한 지구환경보호의 날이다.
무슨 무슨 날, 지구의 날이라고 호들갑 떠는 건 나도 참 싫다. 매일 지구에 사는데 하루만 지구의 날인 게 이상하니까. 1년 내내 청소 한번 안 하고 더럽게 살다가 '집의 날' 이라고 이름 붙이고 쓰레기장 같은 집 위에 리본을 달고 화환을 거는 일 따위는 하지 않으니까. 특히 지구의 날마저 카카오나 네이버처럼 에코백과 텀블러를 팔려고 기획전을 여는 커머스의 캠페인을 볼 때는 '지구의 날' '환경의 달' 같은 기념행사에 신물이 난다.
네이버 "지구야 아프지 않게 도와줄게 #텀블러"
카카오 "지구의 날 기념세일 오늘부터 5일간 텀블러와 에코백을 할인가에 득템해보세요"
지구의 날을 한 번도 특별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파타고니아 창립자 이본 쉬나드와 다르게, 나는 이 지구의 날이라도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다. 틈만 났다 하면 기후위기에 박차를 가하는 방향으로 모든 것이 흘러가는 느낌 때문이다. 지구의 날 단 하루만큼이라도 기념일처럼 정해두자고, 이 날만큼 그래보자고 정해두었더니 지구의 날마저 소비시키고 있다. 텀블러와 에코백은 이미 수많은 공공기관 행사에서 강박적으로 나누어준 덕분에, 정말로 지구를 '위해' 텀블러와 에코백이 필요하다면 당근마켓에 "에코백 11개에 1000원에 드립니다" 라는 게시글을 찾아보는 게 나을 것이다.
파타고니아 창립자 이본 쉬나드는 지구를 되살리기 위한 환경 보호 활동에 대한 관심은 꼭 지구의 날 하루가 아니라 매일 이어져야 했다. 그는 1986년 수익의 1%를 환경 보호 단체에 기부하며 자발적으로 '지구세'를 내기 시작했다. 요세미티 계곡의 도시화를 막는 환경 캠페인을 진행했고, 1994년 페트병 25개로 만들 수 있는 신칠라 플리스 재킷을 개발했다. (SPA 브랜드에서 99개의 화학섬유 옷을 만들고 1개의 폐페트병 티셔츠로 '에코' 라벨을 다는 것과 애초에 다른 접근이다.)
지구의 날을 기념해 해야할 게 있다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첫째, 평소에는 쿠팡에서 주문했을 물건을 당근에 검색해보는 것, 그마저도 사지 않고 집에 있는 물건을 활용해보려고 하는 것.
둘째, 평소 먹던 고기 대신 채식에 도전해보는 것. 배달음식 대신 식재료 손질부터 음식물쓰레기 정리까지 내 손으로 해보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 지구 그러니까 기후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조금 더 고민해보고 공부해보는 것.
그린워싱(Greenwashing)은 기업이나 단체에서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허위·과장 광고나 선전, 홍보수단 등을 이용해 친환경적인 모습으로 포장하는 '위장환경주의' 또는 '친환경 위장술'을 말한다. 지구의 날을 기념해 텀블러과 에코백을 파는 카카오와 네이버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지구의 날을 기념해해야 하는 일 딱 한 가지가 있다면 '그린워싱'이라는 개념을 잘 알고 구분해 내는 것 아닐까? 텀블러, 에코백, 종이 포장재만 붙이면 친환경이라고 생각하는, 아니 생각하게 만드는 기업들의 얄팍한 마케팅에 화가...난다...
365일 중 모든 날을 탄소배출과 동물권 문제가 심각한 육류를 금할 수 없고, 간편하고 파괴적인 일회용 컵 커피 대신 텀블러를 들고 다니기엔 귀찮다면, 딱 이 날만큼 그러니까 365일 중 1일만큼은 뭐라도 해보자고 정해둔 날만큼은... 건들지 마세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