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 간 기자지망생

한국 언론고시 준비를 그만두고, 에디터로서 첫 걸음

by 이소연

(2019년 10월)


이런 글을 쓸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딱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내 앞길에 막막했다. 내가 일을 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6개월? 1년? 2년? 그리고 그 일을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까? 현실은 내 상상과는 너무 다를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도 있었다.


미국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언론인에 대한 마음을 불타오르겠다, 과도 언론정보학과로 전과까지 해 졸업도 했겠다, 한국에서 뭐 할지는 대충 정해져 있었다. 기자, PD, 뭐 이런 직업을 좀 가지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사람. 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대한민국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나를 지루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나비가 훨훨 날기 위해 땅속에서 견뎌야 하는 시간이라고 여기려 했지만, 합리적이지 않은 글쓰기 훈련법과 '카더라' 하고 들려오는 기업 문화는 나를 자꾸 고민하게 했다. '글쓰기 기본기를 다져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들으면서도, 나는 아무도 읽지 않는 지루한 글을 써 내려가는 꼭두각시가 되는 법을 익혀가는 것만 같았다. 자꾸만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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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꾸역꾸역 언론사 시험들을 보러 다녔다. 하루는 운이 좋게도 두 번 시험을 볼 수 있던 날이었는데, 오후 시험장에 해당 언론사 팀장님이 오셔서 수험생들을 응원해주셨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궁금한 게 있냐고 질문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를 포함해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궁금한 게 없었다.


'기레기'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펜을 들고 앉아있는 내 자신을 보며 나는 이미 '기레기'가 될 자질이 충분해 보였다.


꿈은 명사로 꾸지 말고 동사로 꾸랬는데. 나는 '기자'만을 꿈꾸고 있었다. '환경 문제를 세상에 전하는'이라는 수식어구를 스스로 잊지 않고 붙여 나가려고 노력했지만, 계속되는 지원과 불합격이 반복되며, 내 머릿속엔 가장 중요했던 '동사'가 지워지고 '명사'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그것만 좇고 있었다.


내가 이루고 싶었던 '동사형 꿈'은 무엇이었나 방황하던 중, 우연히 즐겨 이용하던 한 뉴스레터 서비스의 구인 공고가 떴다. 친구들은 나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지원하라고 했지만, 많이 망설였다. 다소 오만하게도, 왠지 지원하면 붙을 것 같아서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결과적으로 붙었으니, 참 다행이다 껄껄) 긴 고민 끝에 결국 '붙고 고민하자!'라는 마음으로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즐겁고 고통스러운 고민을 했다. 2차 면접을 볼 때도, 나는 대답보다 질문이 더 많은 지원자였다. 좋은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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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70대 1의 경쟁을 뚫는다는 인기 있는 미디어 스타트업의 에디터로 뽑혔다. 그 채용 과정은 CEO라도 뽑는 것처럼 험난했지만, 면접 과정에서마저 나는 성장하는 느낌이 들어 아주 좋았다.


3개월 수습 과정을 거쳐 앞으로 내가 몸 담을 회사는 N이다. 밀레니얼과 세상 사이에 있는 다양한 장벽을 낮춰준다는 기업 가치를 가지고, 지금은 뉴스레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내가 앞으로 잘 하자고 목표로 삼은 것은, '잘 적응하기'다. 그동안 어설프게나마 블로그에 하나둘 글을 써 온 게 약 700편이 됐으니, 바꾸기 힘든 글 습관들이 나도 모르게 쌓여있을 것이었다. 조모임부터 인턴까지, 접해온 조직 문화에서 배운 것들도 있을 테고. 아마 3개월은 내 개인의 색과 회사의 색을 요리조리 살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걸 잘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겠다.




사실 나는 스타트업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는데, 그 후로 스타트업에는 절대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가 분명 장점이었지만, 미래에 개한 '안정성'은 줄 수 없는 환경이었다. 따라잡고 따라잡히며 살아남는, 초원 속에서 매일 뛰어야 하는 신생 기업. 나는 항상 Comfort Zone을 벗어나 항상 바다로 헤엄쳐 가는 삶을 살 수 있을까? 30대, 40대에도 나는 그런 삶을 지향할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지금의 나는 그 과정을 즐긴다는 것이다. 힘들다 하면서도 누구보다 먼저 항구를 벅차고 바다로 나아가자고 몸도 마음도 말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그 신생 기업에서 일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처음에는 '취직했다'라는 단어도 쓰지 않았다. 아마 칭찬받기 좋아하는 모범생 성질이 마음 깊게 베여있는 탓인 것 같다. 유명한 회사에서 빵빵한 복지 혜택에 높은 연봉을 받으며 살고 싶은 마음이 가끔식 나를 콕콕 찔렀다.


하지만 일주일간 일을 배우며 종종 친구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며 느꼈던 것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내가 정말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시작한 지 일주일 됐으니 뭐든 좋을 수도 있어서 함부로 단정 짓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야근과 추가 근무를 제일 싫어하는 나였는데 아직까지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냥 내가 맡은 일이 좋다.


앞으로 또 어떤 심경 변화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나의 스타트업 에디터 단상을 기록해두려고 한다. 기록은 언제나 내게 영감을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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