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연 Aug 31. 2023

자라니의 비애

엄복동의 나라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 자라니와 김여사

"아, 저 미친 자라니 새끼가."


지하철 옆 자리 휴대폰에서 살벌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보고 있던 모양이다. 갑자기 너무 큰 소리가 나자 옆 사람은 급히 휴대폰 옆 면의 버튼을 타다닥 눌렀다. 모였던 시선들도 이내 각자의 휴대폰 화면 속으로 돌아갔고, 옆 사람의 숏츠 영상도 전처럼 빠르게 감아 올라갔다. 사람 말을 알아듣는 귀여운 강아지, 모자이크 처리가 된 블랙박스 영상, 칼부림 사건과 연예계 소식을 전하는 유튜버 랙카, 1에서 2초 간격으로 넘어가는 혼란스러운 그것들을 초점 없이 바라보고 있는 여러 사람들 사이를, 열린 지하철 문 사이로 빠져나왔다. 


지하철에서 내려 자전거 헬멧을 고쳐 쓰고 바람을 가르고 달리며 자라니에 대해 생각한다. 자라니는 '자전거'와 '고라니'의 합성어로, 자전거 탑승자가 고라니'처럼' 도로에 뛰어들어 자동차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유발한다며, 자전거 탑승자를 낮춰 칭하는 단어다. 자동차가 달리다 동물을 죽였는데도, 치여 죽은 대상을 조롱하고 탓하는 기저가 깔려 있다. 왜 빛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느냐고. 그러게 왜 멍청하게 서 있냐고. 그런 사회에서 고라니 동생 '자라니'도 불행하게 탄생하고 말았다. 그러게 왜 도로에서 달리느냐고. 콱 차로 치어버리고 싶다고. 


정부는 인도에서는 법적으로 '따릉'을 울리며 달릴 수도 없는 자전거에 '따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행법상 자전거는 차로 분류돼 인도 통행을 할 수 없다. 그러니 '따르릉따르릉 비켜가세요' 노랫말도 이제 다 옛말이다. 자전거는 법에 따라 도로로 달려야 하니, 고작 사람만 들을 수 있는 귀여운 '따릉' 벨이 아니라, 온몸에 불쾌하고도 미세한 진동을 전해 오는 '빠앙-' 울리는 트럭 경적 정도는 붙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차문을 꼭 달리고 달리는 운전자에게도 들릴 테니 말이다. 


자전거는 인도에서도 차도에서도 어디서도 시원하게 질주하지 못한다. 자전거가 혼자 달릴 수 있는 도로는 2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사람이나 차와 '함께' 달려야 한다. 결국 자전거는 서울에 길이 잘 닦인 한강에서 팔자 좋게 탈 때나 타게 되고, 지역을 이동하기 위한 교통수단으로써는 그 기능이 영 꽝에 가깝다. 


자전거 전용도로도 영 시원치 않다. 어느 날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라 쭉 달리고 있는데, 조금씩 좁아지다 별안간 터널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양옆이 막힌 좁은 인도로는 도무지 자전거를 끌고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 터널 안 벽 쪽에 바짝 붙어 자전거를 타는데, 누군가는 비상등을 켜고 서행하며 멀찍이 떨어져 가는가 하면, 누군가는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듯 아니면 오히려 너 까짓것 신경이나 쓸 줄 아느냐는 듯 바짝 붙어 쌩 지나갔다. 터널을 빠져나와 인도와 도로 사이 배수구 위의 갓길을 달리니, 덜컹이는 바퀴에 따라 분노가 툭툭 튀어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탄소중립실천포인트 내역에 야심 차게 '자전거 타기'를 포함해 두었다. 자전거를 타면 탄소배출 감소에 기여하기 때문에 현금으로 쓸 수 있는 돈을 준다는 것이다. 돈은 됐고요, 일단 자전거 좀 안전하게 타게 해 주세요. 자전거 도로가 없어 도로를 달려야 하는 자전거 운전자가 '자라니'라고 조롱당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지 마세요. 책 『디컨슈머에서는 '자전거도로가 없다면, 자동차들이 시속 90킬로미터로 달리는 4차선 고속도로밖에 없다면, 내가 자전거 타는 방법을 알고 있고 자전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회가 자전거 타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맞다. 실제로 사회는 적극적으로 내가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막고 있다. 


자라니의 비애를 탄식하다 보니, 자동차의 특권에 새삼스레 탄복하게 된다. 차는 양쪽에 달린 자동차 상향등 이 마치 한껏 솟아오른 어깨라도 되는 듯 중앙을 당당하게 달린다. 자전거와 사람들은 '주변길(말 그대로 sidewalk)'로 다닌다. 누군가는 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탈 수 있게 해 달라고 '시위'해야 하는데,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8분의 1을 차지하는 승용차 운전자는 전국 방방 곳곳 도로가 없는 곳이 없어 그 어디라도 자유롭게 쏘다닐 수 있다. 차가 그 누구보다 우선이니, 어린이와 노인은 정해진 구역에서만 '보호'받을 수 있다. (사실 그마저도 보호 못 받는다. 2020년 어린이 교통사고는 8,400건 발생하였으며 사상자는 10,524명이다.)


'자라니'라는 단어가 다시 귀에 윙윙 맴돈다. 자전거는 있는데 자전거 도로가 없다는 통탄함보다도 '자라니'라는 단어가 그렇게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구별 짓기' 단어가 가진 폭력성 때문이다. 기본적인 운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자동차 운전자에게는 별 욕이 없다. 해 봤자 '개념 없네', '양아치네' 정도다. 하지만 여성 운전자가 운전을 못하면 '개념 없네'가 아니라 '김여사'가 된다.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탄 채 위험하게 운전한다면 '개념 없네'가 아니라 '자라니'가 된다. 남성이 여성을, 네 발 달린 사람이 두 발 달린 사람을 경시하는 단어가 김여사와 자라니다. 


그럼에도 보라, 분홍, 주황색 물감을 적당한 농도로 섞어 물에 풀어낸 듯한 아름다운 하늘은 자전거를 타는 나를 반긴다. 페달을 굴리며 가르는 저녁 공기는 누군가의 품에 폭 안기는 것만 같이 포근했다. 현실은 앞 트럭에서 나오는 회색빛 불쾌한 뜨거운 매연가스였을지라도. 



관련 콘텐츠 

https://youtu.be/ovNv0yhgD-I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4259#home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30/2020073000024.html


일상 곳곳에서 재채기하듯 툭툭 튀어나오는 쓰레기와 지구, 기후에 대한 고민을 담아 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장 난 우산을 쓴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