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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Apr 22. 2020

지구의 날과 코로나19의 상관관계

바이러스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목을 겨눴다

이 시국에 환경보호를 말한다고요?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지금 환경 보호를 말할 때는 아닌 것 같은데? 


해양 보호 리서치 봉사활동을 시작한다고 하니, 한 친구가 내게 한 말이다.


'환경보호'에는 시작하기 좋은 때가 있을까? 좋은 대학 가야 하고, 취직해야 하고,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결혼 준비해야 하고, 아기 낳아야 하는데? '환경보호'는 도무지 우리 삶에 발가락 하나 끼울 틈이 없어 보인다. 


서로의 표정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서점. 그럼에도 나는 역시 '역시'에 대한 책을 집어 들고 집에 왔다. <우리의 삶은 어떻게 환경을 파괴하는가>. 환경 파괴보다는 우리의 삶이 파괴돼 있는 것 같았지만, 어쩐지 이 시국이니까 더욱 환경 보호를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지구의 날, 코로나19, 집콕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경제 성장을 이룬 21세기 인간은 기아·역병·전쟁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나가던 중앙아프리카 기아, 예맨 난민, 그리고 특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콧방귀를 뿡 뀔 일이다.


흑사병은 옛말인 줄 알았던 우리 세대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열심히도 읽고 있다. 서점에는 '코로나19'를 제목으로 붙인 그럴 싸 해 보이는 미래 예측 책들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어렵게 생각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조류독감, 사스, 메르스, 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았던가.


The Covid-19 culprit is us, not pangolins


우리는 코로나19 전엔 알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고 있다. 불편, 고통, 불안, 위협, 두려움. 그래서 이런 감정을 털어내기 위해, 미워해야 할 대상을 마음껏 원망했다. '중국 사람', '신천지', '제주도 모녀'. 


이상하다. 이때야말로 '환경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자연의 선을 침범했던 인간'을 마음껏 원망해야 할 때 아닐까? 중국 야생동물 암시장 규모는 약 1조 7천억 원대로 추정된다. '중국은 미개해서 그렇다'고 그저 손가락질할 순 없는 처지다. 미국은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사냥터로 이용할 수 있게 국립공원을 유래 없는 큰 규모로 열겠다고 발표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야생동물 밀반입 문제가 심각한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가 17만 명을 넘어가는 지금도 '자연보호'를 말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은가? 지금 이 시국에 굳이 굳이 뻔한 '환경 보호'를 더 목소리 높여 말한다.




9시 뉴스에는 코로나19의 범인으로 지목된 야생동물이 화면을 채운다. 포토라인에 선 듯한 박쥐 천산갑 들개 낙타 사향고양이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태연했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흰 옷으로 무장한 인간의 시선이 꽤나 익숙해 보였다. 


우리는 동물을 괴롭히며, 사실 우리 자신을 가장 괴롭힌다. 박쥐에서 시작한 코로나19 바이러스, 하루 수천만 마리를 생지옥으로 몰아넣은 아프리카 돼지열병, 공장식 축산에서 고통받다 생기는 조류 독감 바이러스. 산채로 묻히는 동물을 보며 누군가는 농가를 잃어 오열했고, 관련주 주가가 떨어져서 슬퍼했고, 누군가는 산 채로 묻히는 생명을 애도했다. 그 슬픔의 대상이 생명이든, 돈이든, 어쨌든 인간이 만들어낸 바이러스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목을 겨눴다.


4월 22일 지구의 날. 길거리를 걷다 얼굴을 두들겨 맞는 인종차별이 만연하고, 해고당하거나 권고 휴직을 받는 사람이 늘었다. 힘들어하는 사람들 대신 입이 되어 목소리를 내주던 기자들도, 당장은 새하얀 방역복을 입은 채 매일 새롭게 넘쳐나는 코로나19 뉴스를 전하기 바빴다. '안보', 안전 보장이 1순위 가치가 되며, 사회가 보수화됐다. 확진자 경로 공개에 누구도 개인정보 보호가 우선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일회용품을 쓰면 안 된다고 입이 닳도록 말하던 나도, 투표장에선 투명색 비닐장갑을 껴야 했다. 


오늘도 겹겹이 비닐로 곱게 포장된 마스크를 뜯어 얼굴을 가렸다. 

더 부끄럽지 않으려면 오늘도 글을 쓰는 수밖에.

이렇게 조금씩 시작하고 도전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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