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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Jun 13. 2021

뒷산에 불이 나면, 선한 영향력으로 불을 끄나요?

용기, 의지, 선한 영향력 이제 지겹다고요

뒷산에 불이 나면, 마을 사람의 용기, 시민의식, 선한 영향력에 기대어 불을 끄기를 기대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왜 심각한 쓰레기 문제는 누군가의 용기, 누군가의 시민의식, 누군가의 ‘선한’ 의지만으로 해결하기를 기대하나요?




아파트 분리배출 장소에 가보면, 잘 버려달라는 호소문이 많잖아요. 양심을 지켜서 버리라니. 지켜보고 있다느니. 양심을 운운하며 쓰레기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심산인가? 저는 이런 게... 좀 지겨워요.


제가 사실 엄청 게으르거든요. 인스타그램에 보이는 멋진 제로웨이스트 활동가들처럼, 안 쓰는 헝겊을 잘라 가방으로 만들 만한 손재주도 없어요. 야근을 하고 집에 오면 피곤해요. 들어오는 길에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가득 담긴 방울토마토를 그냥 맘껏 사 오고 싶어요. 


누구도 자신이 버린 비닐봉지가 500년 동안 끈질기게 살아 남아 다른 생명체의 목숨을 앗아가길 바라진 않을 거잖아요. 바다 건너 알바트로스의 배에서 발견되길 기도하지도 않을 거고요. 굳이 굳이 환경을 오염시키겠다는 굳은 마음과 의지를 가지고 일회용품을 쓰는 사람은 없어요. 


운전이 어려워 걸어갈 수 있는 집 앞 슈퍼에서밖에 장을 볼 수 없는 엄마, 퇴근 후 용기고 뭐고 챙길 겨를도 없이 바쁘고 지쳐 대형마트로 가서 야채와 식재료를 사는 우리 언니, 편의점에서 3500원짜리 도시락을 사 먹던 과거의 나. 누군들 마음껏 환경을 파괴하고 지구를 해치고 싶겠어요.


제품도 한번 쓰고 버리라고 만들잖아요. 물건을 그렇게 많이 찍어내고, 그렇게 많이 포장해놨으면서, 쓰레기는 양심을 지키면서 버리라고요? 양심 없게 쓰고 버리게 만들어뒀으면서. 무슨 말인지, 원.


소비자의 의지와 책임, 용기, 시민의식 등에 기대어 진행되는 캠페인이 거대한 환경문제의 멱살을 잡고 겨우 겨우 끌고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뒷산에 불이 나면, 마을 사람들의 용기와 시민의식에 기대어 불을 끄기를 기대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심각한 폐기물 문제는 누군가의 용기, 누군가의 시민의식, 누군가의 ‘선한’ 의지만으로 해결하려 하나요? 



지난번 #용기내챌린지 #용기내캠페인 에 대한 글을 썼고,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 준비한 내용. 화가 많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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