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차를 우려본다

by so


막상 글을 쓰려고 보니, 왠지 모르게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선언하는 게 부끄럽다. 가령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내가 마치 하루키라도 된 마냥 음악에 대해 세련되고 멋진 글을 써야 할 것 같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전문가처럼 보여야 할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소심한 나는 단서를 단다. 잠정 은퇴자의 소소한 즐거움 정도일 뿐이라고.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차(茶)에 대해 써보려 한다.


차의 사전적 정의 중 하나는 ‘차나무의 어린잎을 달이거나 우린 물’이다. 차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지만, 고전적인 분류법으로 나눈 녹차, 백차, 청차(우롱차), 홍차, 황차, 흑차(보이차)는 기본적으로 카멜리아 시넨시스라는 차나무의 싹과 잎으로 만들어진다. 같은 차나무에서 얻어진 잎이라도 제다 방식 ─ 예를 들면 산화를 전혀 시키지 않거나, 반쯤 혹은 완전히 시키거나 ─ 에 따라 서로 다른 종류의 차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떼루아(와인에서도 이야기하는 토양, 기후 따위의 조건)와 계절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고, 같은 찻잎도 차를 우리는 찻물과 그날의 날씨에 따라서도 달라진다고 하니, 배울 것이 여전히 많다. 물론 나는, 자랑은 아니지만, 감각이 둔하여 그렇게 미세한 차이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마도 열심히 연마한다면 섬세한 미각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초보 상태에 만족한다. 대신 이 세상에는 다양한 차가 존재하는 만큼, 어딘가에는 분명 자기 취향에 맞는 차가 있다. 그걸 찾아 떠나는 여행이 또 재미가 있다.




내가 언제부터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고 있다. 대학생 때, 어릴 적 좋아했던 만화인 『홍차왕자』의 애장판이 출간되면서 한 권씩 사 모으는 동안 차에 대한 관심이 싹텄다. 참고로 이 만화는 보름달이 뜬 밤, 달이 비친 홍차를 은스푼으로 저으면 홍차왕자가 나타나 소원을 이뤄준다는 소녀소녀한 이야기다. 홍차라고는 실론티와 데자와만 알던 시절, 주인공이 좋아했던 아쌈이 도대체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 제일 먼저 샀다가 씁쓸하고 떫은맛에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아쌈은 강렬하고 묵직한 차라 밀크티로도 어울리고, 진한 커피를 좋아한다면 선호할 맛이다.)


돈도 공간도 부족한 기숙사생에게는, 여러 가지 다구가 필요한 찻잎보다는 티백이 시작하기 쉬웠다. 마침 종류별로, 브랜드별로, 다양한 홍차를 시음할 수 있는 티 샘플러를 파는 곳들이 있어서 이것저것 마셔 보다 보니 나의 취향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밀크티나 블렌딩 티(가향차 포함)보다는 스트레이트로 깔끔하게 마시는 싱글 오리진 티를 좋아한다. 단순하고 무딘 나에게는 그게 잘 어울렸나 보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다즐링. 누구나 반할 수밖에 없는, 홍차왕자 속 주인공의 멋진 삼촌이 다즐링이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너무 진하지 않고 맑은 차를 좋아하다 보니 다즐링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사실 다즐링은 제법상 홍차로 분류되지만 느낌은 우롱차에 가깝기도 하다. (비싸서 자주 마시지는 못하지만) 품질이 좋은 다즐링 첫물차는 수색이 붉기보단 노랗고, 산뜻한 풀향이 나며 맑고 부드럽다. 왠지 잘 익은 망고가 생각난달까. 그래서 한동안은 다즐링만 마셨다.


그러다 아이를 가지면서 카페인이 없어 언제 마셔도 부담 없는 허브티와 대용차(내 사랑 둥굴레차와 생강차를 비롯한 친구들)를 즐겨 마셨고, 지금은 녹차, 백차를 거쳐 우롱차로 관심이 옮겨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잎차를 마시게 되었다. 주로 홍차를 많이 마시는 서양에서는 차가 대중화되면서 바쁜 현대인들이 마시기 좋게, 그리고 밀크티로 마시기 편하게 티백이 발달했다. 하지만 동양에서의 차 문화는 여전히 고급문화로 남아있다 보니 잎차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한다. (물론 요즘에는 질 좋은 찻잎이 들어있는 괜찮은 티백도 많다.)


홍차왕자.jpg 홍차왕자 속 아삼과 다즐링 (홍차왕자, 야마다 난페이)


다도를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차에 관한 책도 읽고 여기저기 찻집을 다니며 티 마스터분께 여쭙기도 하면서, 나에게 맞는 차 우리는 법을 찾아가고 있다. 대략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오늘의 기분에 맞는 찻잎을 고르고 (가장 중요하다), 전기 포트로 물을 끓이고 (정확히 온도까지 재고 있진 않지만 녹차를 마실 땐 물을 조금 식혀서 우린다), 다구를 데우고 (이건 귀찮을 땐 생략한다), 찻잎에 따라 적정 시간으로 우려내고 (이 적정함이 여전히 어렵지만), 찻잔에 차를 따라내어 우선 향을 즐기고, 드디어 차를 마신다. 한 잔, 두 잔, 조금씩 우려내어 마시며 각 잔의 다름도 느껴본다. 문장으로 쓰고 보니 무척 귀찮아 보이지만,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그 자체로 마음이 평온해진다. 하지만 차를 다 마시고 난 뒤 다구를 정리하는 일은 역시 좀 귀찮다.


퇴사를 할 때 회사 선배에게 다구를 선물로 받았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아침엔 사내 식당에서 나눠주는 커피를 마셔도, 나른한 오후에는 머그컵에 티백일지라도 차를 우려 티타임을 가지고는 했다. ‘오늘은 좀 일찍 갈 수 있겠지’라는 헛된 희망을 품으며 할 일을 마무리하는 오후 4시, 갑자기 팀장님께 내일 아침까지 정리해서 보고해야 하는 긴급 건이 치고 들어온다. 그럴 때일수록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도 늦게 가겠구나, 그러니 차나 한 잔 마시고 시작해 보자. 그런 날들이 많다 보니 선배는 내가 차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차를 마시는 것 외에도 커피를 마시는 것도, 술을 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음식을 곁들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걸 보면, 먹는 것이 아닌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걸까.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티백에서 차가 우러나길 기다리는 동안 휴게실 창문으로 쳐다보던 하늘, 잠든 아이 몰래 부엌으로 나와 남편이랑 술 한잔하며 보던 드라마, 주말에 남편과 아이가 둘이 노는 동안 카페에 가서 책 읽던 시간.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돌아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마시는 시간은 눈앞의 걱정을 미뤄두고 잠깐 쉴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에는 주로 혼자 보내는 오전에 일기를 쓰며 차를 마신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개운하게 샤워를 끝낸 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물을 끓인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지금은 선물 받은 다구로 정성스럽게 차를 우려내곤 한다. 올여름엔 너무 더워서 녹차와 냉침차를 즐겨 마셨는데, 요 며칠은 비도 내리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아껴둔 무이암차를 꺼냈다. 여전히 내가 차를 좋아하는 것인지, 차를 마시는 시간의 여유를 좋아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오늘도 차를 우려본다.



一碗喉吻潤 兩碗破孤悶 첫 잔은 목과 입술을 적시고, 두 번째 잔은 근심 걱정을 없애주네.
三碗搜枯腸 唯有文字五千券 셋째 잔은 몸속 깊숙이 퍼지니 오, 오천권의 책이 그 속에 있구나.
四碗發輕汗 平生不平事 盡向毛孔散 넷째 잔에 가벼운 땀이 솟아, 한평생 평안치 않았던 일들이 모두 땀구멍으로 빠져 나가네.
五碗肌骨淸 六碗通仙靈 다섯째 잔은 살과 뼈를 맑게 하고, 여섯째 잔에서 신선과 통하네.
七碗吃不得也 唯覺兩腋習習淸風生 일곱째 잔은 마시지도 않았는데, 양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솔솔 이는구나.

(七碗茶歌 칠완다가,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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