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아침 도서관은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북적인다. 집 앞 도서관은 오후에는 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다. 책을 읽는 사람들뿐 아니라, 노트북으로 인강을 들으며 저마다의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 막 개장한 주식 시장의 그래프를 들여다보는 아저씨, 무언가를 열심히 노트에 쓰는 아주머니 (나도 여기에 포함된다),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까지. 나도 요즘엔 매일 도서관에 나가서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쓰거나 수업도 듣고, 가끔은 LP를 듣기도 한다.
어릴 적 일요일이면 엄마는 나와 동생을 시민 도서관에 데려갔다. 그래서인지 책도 좋아하지만 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를 무척 좋아한다. 한때는 가장 좋아했던 영화도 『러브레터』와 『귀를 기울이면』이었는데, 두 영화 모두 주인공들이 도서관 대출카드를 통해 서로 이어지는 점이 좋았다. 어린이실 한켠에서 엘리자베스와 제시카라는 쌍둥이 자매 이야기를 읽던 날들, 아르센 뤼팽에 빠져 처음으로 어린이실을 벗어나 일반 자료실의 전집을 빌려다 읽던 날도 떠오른다. 중고등학생 때 시험 기간이면 집에서 먼 그곳까지 굳이 버스를 타고 아침부터 공부하러 가던 날들도 그립다. 대공원이 내려다보이는 등나무 벤치와 매점에서 사 먹던 김치볶음밥,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던 중앙 계단은 여전할까.
회사를 다닐 땐 내가 낸 세금을 환급받으러 간다며 도서관을 더 열심히 이용했다. 동네 도서관에 없는 책은 다른 도서관에서 상호대차로 빌려 보기도 하고, 아직 어떤 도서관에도 들어오지 않은 책 ─ 주로 뜨끈뜨끈한 신간이나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은 보물 같은 책 ─ 을 읽고 싶을 땐 희망도서 신청을 해둔다. 한 달쯤 잊고 있으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가라는 연락이 온다. 방금 도착한 새 책을 가장 먼저 받아 들면 기분이 참 좋다. (물론 읽고 나서 소장하고 싶은 책은 직접 산다.)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읽으려고 책장 사이를 어슬렁거리지만, 결국 가장 많이 빌리는 건 800번대다. 소설, 시, 에세이가 모두 모여 있으니. 그다음은 100번대. 새로운 시각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해주는 철학책을 좋아한다. 최근엔 근처에 있는 심리학에도 관심이 간다. 600번대(예술)도 즐겨 보고, 가끔은 여행 대신 900번대의 여행책을 읽기도 하지만, 과학도임에도 이상하게 400번대는 잘 보지 않는다. 요즘에는 어린이실의 그림책 코너도 열심히 살펴보는 중이다. 이제는 가장 좋아하는 책이 해리 포터가 된 아이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최근에는 도서관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동아리 활동이나 수업도 참여할 수 있다. 항상 포스터만 보다가 이번 가을학기에는 처음으로 ‘그림책 읽기 수업’을 신청해 보았다. 언젠가부터 어른들도 그림책을 많이 읽는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어릴 때 이후로 그림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던 터라 궁금했다. 첫날 같이 읽은 책은 『종이 소년』이라는 책이다. 남들과 달라서, 다른 아이들의 괴롭힘에 힘들어하는 종이 소년. 엄마는 ‘네 모습 그대로 널 사랑한다’고 하지만 소년은 엄마의 말에 도리어 화가 나 숲으로 뛰쳐나간다. 숲에서 종이 소년은 자신을 접어 늑대가 되기도 하고 새가 되기도 하며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받아들인다.
주요 메시지는 ‘나는 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자’는 좋은 이야기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또 하나 중요한 내용이 있었다. 이러한 것은 누군가 가르쳐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종이 소년처럼 스스로 숲속을 헤매며 깨달아야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도움은 필요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답을 알려주지 않고 질문만 계속 던진 이유도 같은 까닭이다. 삶을 바꾸는 힘은 결국 스스로 깨달을 때 생겨난다.
그나저나 소년이 엄마에게 화를 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나는 이렇게 힘들고 괴롭고 안 괜찮은데,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는 엄마의 말이, 안 괜찮은데 괜찮으라고 하는 것 같아서, 자신의 상처를 그냥 덮어버리는 것 같아서 속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라도 엄마로서 다른 말을 해줄 수가 없을 것 같다. 이제는 종이 소년도 알고 있겠지만, 엄마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때가 찾아온다. 나에게는 코로나로 모두가 힘들었던 2020년이 그러했다. 작은 파트지만 처음으로 리더를 맡아 잘해보려고 애쓰느라 나를 돌보지 못하던 그때, 남편까지 미국에 가게 되며 주말부부가 아닌 연간부부 생활을 해야 했다. 친정과 시댁에서 도와주셔서 육아와 집안일은 어찌 버틸 수 있었지만, 코로나와 연간부부 보다도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서로 섞이지 않는 여러 업무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굴러가게 만들라는 요구는, 처음 리더가 된 내게 버거운 일이었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을 따라 하듯 갑자기 생긴 원온원도 문제였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업무 얘기를 넘어 개인적인 고민까지 들어주고 있자니, 결국 에너지가 바닥이 났다.
마음이 우울할 땐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에게 소홀해진다. 그러다 보니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그저 일에 치여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잘하고 있다고,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누군가의 위로는, 너무 가볍게만 들렸다. 종이 소년에게 엄마의 말이 와닿지 않은 것처럼. 회사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서, 종종 점심을 거르고 회사 밖으로 나가 동네를 서성이다 돌아오곤 했다.
그때 나를 일으켜 준 건, 가족들과 산책, 그리고 도서관이었다. 일요일 아침,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편과 아이가 줌(Zoom)으로 노는 동안 잠깐 숨을 돌리고, 남편이 자러 가면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을 읽고 간식을 먹고, 바로 옆 공원에서 아이가 그네를 타는 동안 벤치에 앉아 광합성을 하고, 가끔은 서가 사이에서 나를 이해해 주는 문장을 만나기도 했다. 어느덧 마스크를 느슨하게 쓸 즈음에는 리더 역할에도 익숙해졌고, 내 안의 에너지도 차올라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빠가 일요일에 일하러 가실 때 엄마가 나와 동생을 데리고 도서관에 갔던 것도, 어쩌면 혼자서 아이 둘을 돌보는 게 힘드셨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는 도서관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학우분들을 마주치기도 한다. 그림책 수업 중에는 같은 책을 읽고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는 마주 이야기 시간이 있는데, 처음엔 조금 쑥스러웠지만 이제는 그 시간이 꽤 즐겁다. 날카로운 반박은 일단 접어두고, 모두를 응원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다정함이 좋다. 카페처럼 시끌벅적하지 않으면서도 책과 사람들에 둘러싸여 외롭지 않은 곳, 가끔은 오롯이 혼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지기도 하는 곳. 그곳에서 책을 읽다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아는 얼굴이 하나둘 생기니, 도서관에 가는 길이 더욱 기다려진다.
그나저나 너무 진지해지고 말았다. 차라리 대학생 때 학교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중 헌팅 당한 이야기나 쓸 것을. 꾸준히 글을 쓴다면 언젠가 또 하나씩 풀어놓고 싶다.
한 시민이 어떤 앎의 세계에 진입하려고 할 때 그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사회 전체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랄까. 또한 부유하든 가난하든 잘났든 못났든 늙었든 젊었든 장애가 있든 없든 간에 그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어렵지만 흥미진진한 실험이랄까. 도서관의 세계에는 그런 멋진 꿈이 있었다.
(도서관 여행하는 법, 임윤희)